롤라이 35, 하프사이즈를 보내버린 작은 거인

2012. 4. 9. 20:38The 35mm Camera(마루 엮음)

 

 

 

 

 

 

 

1965년에 독일 포토키나에서 발표된 롤라이 35는 사진 분야에 특별한 기여를 한 사진기로 기억될 것이다. 롤라이 35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풀 프레임 35mm 사진기로 가장 오랫동안 생산되었다. 이 사진기는 1966년에 생산되기 시작하여 롤라이가 싱가포르 공장의 문을 닫은 1982년에 끝이 났다. 롤라이 35는 수동 사진기에서부터 최초의 마이크로 전자 기술을 조합한 자동 모델로까지 진보되었다.

 

롤라이 35 사진기의 역사를 보면, 롤라이 35가 태어난 연도는 해설서에 따라 1966년부터 1968년까지로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그것은 발표되었을 때와 실제로 발매가 되었을 때, 그리고 일본에서 발매가 시작되었을 시기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 당시 롤라이 35는 세계의 사진기 업계에 충격을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1959년에 발표된 올림퍼스의 하프사이즈 사진기 올림퍼스 펜 시리즈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가 35mm 풀사이즈이면서 하프사이즈 사진기보다 작은 롤라이 35의 등장이 하프사이즈 시대를 끝내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롤라이 35는 청성파의 추운권(追雲拳)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추운권은 손쉽게 익힐 수 있지만 경지에 들어서면 그 파괴력이 무척 큰 권법이다.

 

롤라이 35가 크기가 작다는 것만으로 관심을 모은 것은 단연코 아니다. 현재까지도 인기가 높은 고품질의 차이스 걸작 렌즈인 뎃사 40mm/f3.5 렌즈를 장착하였고, 당시 최고의 셔터인 젝켈의 콤파 셔터, 거기에다가 고센의 노출계 등 당시 독일 사진기의 최고급 부품으로만 만들었다는 것이 이 사진기의 이름을 높인 첫 번째 조건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을 당시의 하프사이즈 사진기보다도 작은 몸체 안에 결집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유례없이 독창적인 설계가 고안되어 결과적으로 ʻ응축의 미학ʼ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롤라이 35의 외관은 사진기 앞의 중앙에 침동 방식 렌즈가 장착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 셔터 스피드를 설정하는 다이얼, 왼쪽에 노출을 설정하는 다이얼이 부착되어 있다. 셔터 스피드 다이얼에는 필름의 종류를 표시해주는 마크가 있지만 단지 표시만 해줄 뿐이다. 노출 다이얼에는 필름의 감도를 설정하는 표시가 있고 노출계와 연동되며, 노출 다이얼 아래에는 잠금 레버가 있다.

 

렌즈는 침동 방식으로 하여 사진을 찍을 때는 경통을 돌려 빼어서 쓰고, 찍지 않을 때는 몸통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렌즈가 밖으로 튀어나오면 사진기의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쓴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진기의 외관에서 또 다른 특징은 필름을 감는 레버가 왼쪽에 있다는 것이다. 즉 일반 사진기와는 반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내부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필름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나온 해답일 것이다. 설명으로 들으면 어색할 것 같지만 손에 잡고 사용해 보면 크게 불편하지 않다.

 

경통을 꺼내 촬영 모드로 만들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셔터 스피드 다이얼과 노출 다이얼 둘레에 쓰여 진 숫자를 볼 수 있으며 셔터 스피드는 B(벌브)1/2~1/500, 노출은 f3.5~22로 되어 있다. 거리계 연동 형식이 아니라 경통 앞쪽의 초점 링에는 거리 눈금이 있어, 찍히는 물체와의 거리를 눈짐작으로 판단한 후 이것을 돌려 초점을 맞춘다.

 

이렇게 눈으로 짐작하여 초점을 조절하는 것을 목측식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 사진기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최단 촬영 거리는 0.9m로 조금 멀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진기 윗면에 두 개의 바늘로 조절되는 노출계가 장착되어 있다. 이 노출계는 조리개 수치나 셔터 스피드를 조절하여 맞추는 구식이지만 보기보다는 매우 정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기가 작다보니 플래시를 장착하기 위한 액세서리 슈가 사진기 아랫면에 부착되어 있어 조금 불편하다. 이것은 익숙해지지 않으면 사용하기가 많이 어색하다. 사진기 아랫면의 좌측에는 필름 되감기 크랭크가 조그맣게 접혀있으나 펼치면 꽤 크기 때문에 사용하기 편리하다. 중앙은 삼각대용 나사 구멍으로 그 둘레에는 필름의 촬영 매수를 나타내는 카운터 창이 있다.

 

초점 조절을 목측식으로 하고 거리계가 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작게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목측식이라고 해도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상이 뚜렷하게 맺히기 때문이다. 피사계 심도를 이해하는 사진인이라면 미리 심도를 계산해두면 된다. 이 사진기는 대부분 40mm 렌즈이니 조리개 값을 f/8.0, 거리를 3m로 두면 대부분의 스냅 사진은 초점이 맞게 된다.

 

롤라이 35는 단지 외형이 좋은 사진기여서가 아니라 그 성능도 우수했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진기가 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롤라이 35는 렌즈, 셔터, 노출계 모두 최고의 부품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차이스의 렌즈는 단연 우수함이 돋보이는 존재였다.

 

롤라이 35의 렌즈는 4종류의 40mm 렌즈들이 다양한 계열 모델에서 사용되었다.

 

f/3.5 Triotar

f/3.5 Tessar

f/3.5 S-Xenar

f/2.8 Sonnar

 

트리오타(Triotar 40mm/f3.5)는 싱글 코팅된 칼 차이스 디자인으로 Cooke Triplet을 기반으로 한 33매 방식을 채용한 렌즈였다. 칼 차이스로부터의 정확한 생산 연도를 알 수 없지만 사양은 1800년대 후반으로 생각된다. 칼 차이스에서 유사한 초점 거리의 고가 렌즈들의 대체를 목적으로 보다 간소화시킨 저가형 렌즈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한 렌즈 디자인이다. 3매 디자인은 수차에 훨씬 민감하기 때문에 롤라이의 저가형 모델에 사용되었다.

 

뎃사(Tessar f/3.5) 렌즈 또한 싱글 코팅된 칼 차이스 디자인으로 34매를 사용하고 있다. 뎃사의 디자인은 폴 루돌프 박사에 의해 1902년에 디자인되었고 원래는 대형 뷰 사진기용으로 사용되던 거였다. 차이스의 뎃사 렌즈는 1902년에 탄생하여 세계 사진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굴지의 렌즈로 이름이 높다. 차이스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여러 업체들이 이 34매 타입을 모방하게 되어 뎃사 타입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롤라이 35 사진기의 뎃사는 40mm/f3.5의 오리지널 차이스 렌즈였다.

 

초기에 독일 롤라이 35는 칼 차이스에서 생산된 뎃사를 사용했다. 후에는 롤라이가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한 뎃사 렌즈를 사용했다. 칼 차이스 렌즈 이름을 사용하는 라이선스 허용은 드믄 일이었다. 수집가들은 칼 차이스 뎃사 기종을 선호하겠지만 재질이나 품질 또는 광학 성능에 있어 롤라이와 칼 차이스 모델 사이의 차이점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소형 사진기에서는 f3.5급의 33매 트리플레이트 타입을 사용했지만 롤라이에 사용한 뎃사 렌즈는 34매의 구성이었다. 따라서 롤라이 35는 일반 사진기보다 한 단계 상위 클래스의 렌즈를 사용하는 셈이다.

 

에스-제나(S-Xenar f/3.5) 렌즈는 롤라이 35 기종에서는 보기 드문 렌즈이다. 1972년에서 1973년까지 2년간 생산된 기종에만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 렌즈는 슈나이더­크러즈나의 싱글 코팅된 뎃사의 복제품이다.

1970년대 롤라이가 생산 원가 절감을 원하고 있었고 에스­제나는 보다 저가였다. 슈나이더는 롤라이가 생산하는 제품들의 스케줄을 따라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롤라이는 에스-제나를 버리고 칼 차이스 라이선스로 제작되는 뎃사로 다시 돌아간 거다.

 

소나(Sonnar f/2.8) HFT 렌즈는 롤라이 35에 장착된 렌즈 가운데 가장 좋고 밝은 렌즈이다. 칼 차이스의 45매 디자인으로 롤라이의 HFT 멀티 코팅 기술이 적용된 렌즈이다. 소나는 20세기 최상급 렌즈 가운데 하나로 1930년 루드위그 베르텔레(Ludwig Bertele)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소나 렌즈는 원래 차이스 이콘, 콘탁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36매 형식의 50mm/f2.0 코팅이 안 된 렌즈였다가 1932년에 37매의 50mm/f1.5로 재설계되었다. 차이스 이콘의 콘탁스 a/a 사진기가 1961년 생산이 중단된 시점에서 소나 렌즈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45매에 다소 어두워진 f/2.8 렌즈로 또다시 재설계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소나의 본질적인 디자인 요소는 오리지널 조나와 동일하다. 칼 차이스 소나는 다양한 35mm 사진기들에서 고급 렌즈로 사용되었다. 뎃사와 같이, 1960년대부터 그 후의 소나는 f/2.8 45매가 일반적이다.

 

롤라이는 상위 롤라이 35 기종을 위한 보다 밝은 렌즈를 원했다. 그리하여 칼 차이스는 소나 렌즈를 롤라이 HFT 멀티 코팅을 사용하여 45매의 40mm/f2.8 렌즈로 재설계하였던 것이다. 이는 매우 놀라운 렌즈였다. 평면상에서 제로에 가까운 수차를 갖고 있으며 성능 저하가 거의 없고 해상력과 높은 콘트라스트가 주목할 만했다.

 

모든 속성들이 일류 렌즈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후기 뎃사와 같이 소나 HFT 역시 칼 차이스의 라이선스 아래 롤라이에서 생산하였다. 뎃사와 비교하면 소나는 보다 좋고 밝지만 제조하기가 더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소나는 구성물의 형태와 공간에 있어서 극도로 작은 관용도를 갖고 있고 그 디자인에서 시대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계적 수준의 렌즈이며 오늘날의 렌즈에 비해 손색이 없다.

 

롤라이 35의 파인더는 배율이 0.75배라 밝고 보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0.4배가 대부분인 최근의 콤팩트 사진기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밝은 파인더를 자랑한다. 파인더 안은 매우 심플하여 촬영 범위를 나타내는 하얀 프레임이 희미하게 보일 뿐 거의 투명한 거나 다를 바 없다. 다만 1971년 이후에 생산된 모델에서는 배율이 0.6배로 떨어져서 조금 아쉽다. 정면에서 보면 배율이 낮은 모델은 파인더가 조금 오목하게 보여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자동 노출(AE 또는 EE)이 없는 수동 사진기이자 렌즈 셔터 사진기로서 가진 장점은 플래시의 동조 범위가 넓다는 점이다. SLR 사진기의 경우 고급 기종이 1/250, 보급 기종일 경우 1/125 또는 1/60초가 플래시 동조의 최대 속도지만 롤라이 351/500초까지 모두 동조한다. 자동 노출이 붙어있는 콤팩트 사진기의 경우 플래시를 장착할 경우 자동적으로 셔터 스피드가 1/60초나 1/30초에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 대부분인 것과 비교하면 촬영의 자유도가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독일에서 생산되던 롤라이 35는 단가 상승에 의한 문제를 견디다 못해 싱가포르에 공장을 건설하고 이전 생산하게 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이 당시에 그 공장이 우리나라에 왔었더라면 하는 거다. 물론 당시의 우리 공업 기술력이 뒷받침이 안 된 것도 문제였겠지만 롤라이 공장이 한국에 왔더라면 우리나라 사진기 제조 기술의 발전이 그만큼 빨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싱가포르에서 제조된 사진기의 렌즈는 차이스와의 라이선스에 의해 롤라이에서 제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이 롤라이 35 사진기가 붐을 일으켰고 현재도 그 인기는 대단하다.

 

내가 처음 롤라이 35S를 구입했던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그 시기에는 싱가포르에서 만든 것이 8만 원 정도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나온 롤라이 3550만 원을 줘야 살 수가 있었다. 내가 샀던 35S10만 원에 넘기고 독일에서 나온 롤라이 35클래식을 70만 원에 구입했다. 나중에 보니 놀랍게도 35S의 가격이 30만 원 가까이 올라 간 것이 아닌가?

 

하기는 나도 그냥 가지고만 있던 35클래식을 90만 원에 팔았으니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35클래식을 사려면 130만 원 이상을 주어야하니 남는 장사를 한 것도 아닌 셈이다.

 

엊그제 옥션에 35클래식이 저렴하게 나왔길래 입찰하려고 준비했다가 시간을 놓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귀한 분으로부터 오리지널 롤라이35를 선물로 받아, 지금 내가 가지고 있으니 세상 인연이란 참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