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터키에 가다(2015, 01, 17)

2015. 1. 28. 16:04시우의 여행기

 

 

학교에서 몇몇 선생님과 함께 매 월 적금형식으로 적립을 해서 해외여행을 다니기로 한 게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간 중국여행을 두 번 다녀왔고 이번에 세 번째로 터키의 일부를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지역보다 중국 여행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중국의 유명 도시보다는 변방의 소수 민족이 사는 모습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우리 여행 팀에서 이미 실크로드 9박 10일, 귀주성 7박 8일 등을 다녀왔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북경, 서안, 상해 코스, 내몽골 여행 등을 다녀왔습니다. 남들은 음식이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음식에 대해서는 어딜 가나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 해외여행을 오히려 즐기는 편입니다.

 

 이번에 방향을 터키로 잡은 건, 중국처럼 꾀죄죄한 곳은 피하자는 젊은 친구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 방학 중에 날을 잡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행사와 보충수업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기 때문에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시간을 정하는 게 어려웠지만 다행히 올 겨울에는 설이 뒤로 많이 쳐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1월 17일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터키에 갔다가 거기서 1월 24일 토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아침 여덜 시 반에 도착하는 8박 9일이지만 7박 8일같은 여행이었습니다.

 

 1인당 경비, 220만원을 내면서 두 가지 선택관광이 포함이 되어 있었고,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관광은 개인별로 170유로를 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여행경비로 70만원 정도를 더 가지고 있어서 열기구를 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행 이틀 전에 갑자기 사진기 렌즈를 하나 바꾸느라 50만원이 넘게 들어가서 열기구 타는 건 좀 망설이게 됩니다.

 

 저는 여행사진 전문가가 아닌 사진여행 전문가를 지망하다보니 여행을 떠날 때에 늘 사진기와 렌즈를 한 보따리 챙겨 나갑니다. 이번에도 펜탁스 K-3 디지털사진기와 12-24/4.0, 17-135/4.0-5.6, 55-300/4.0-5.8 렌즈, 그리고 탐론 반사망원 500/8.0 렌즈 해서 네 개의 렌즈를 준비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16-45/4.0 렌즈를 15만원에 계산하여 내어 놓고 68만원 달라는 12-24/4.0 렌즈를 바꾼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인데 여행 전에 펜탁스클럽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그 렌즈가 가격이 많이 내린 걸 보고 욕심이 났던 것입니다.

 

 12만 원을 환전하여 10$ 다섯 장, 5$ 열 장, 1$ 스무 장으로 바꿨습니다. 매 번 여행을 나갈 때마다 30만 원 정도를 환전해서 갔는데 갔다가 오면 그 1/3 정도도 안 쓰고 들어왔기 때문에 제가 여행을 가서 쓰는 돈은 하루에 우리 돈으로 1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은 바꾸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여행 전전날에 필요한 거 준비하라고 집사람과 딸 아이가 10만 원씩을 줘서 받기는 했지만 환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필요한 것은 이미 다 준비를 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편리한 복장이 되려면 패딩조끼가  필요할 거 같아서 뱅뱅매장에서 할인판매하는 걸로 하나 샀습니다.

 

 저는 여행을 떠날 적에 사진기와 렌즈, 필름을 챙기는 일만 하고 다른 건 다 집사람이 챙겨주기 때문에 제가 따로 준비할 것은 별로 없습니다. 중국에 갈 때의 습관으로 여행용 티슈와 물 티슈를 준비하고 터키 호텔에서는 실내용 슬리퍼를 안 준다고 들어서 그거 준비하는 걸로 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거기는 많이 춥다고 연락이 와서 캐리어에 겨울옷만 잔뜩 넣고 제 사진기 가방에는 필름사진기 대신에 디지털사진기만 챙겼습니다. 지난 여름에 필름사진기와 디지털사진기를 다 가지고 갔다가 그 무게와 중복되는 사진이 문제여서 이번에는 그냥 디지털사진기로만 챙긴 건데 가서 보니 500/8.0 렌즈는 딱 두 컷을 찍는데 그쳐 다음에는 그냥 자동초점 렌즈 세 개만 챙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월 17일 아침에 네 시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세 시에 잠이 깨어 그냥 일어나 준비했습니다. 대형 캐리어 하나, 등에 메는 사진기 배낭이 전부였고 캐리어 속에는 1회용 밴드와 통풍 약, 고혈압 약, 감기 예방할 갈근탕 팩으로 여섯 개, 상처에 바를 연고 하나 등의 비상약과 세면 도구, 옷이 들어 있고, 사진기 배낭에는 선글라스와 사진기, 렌즈, 사진기 밧데리와 충전기가 들어 있는데 둘 다 무게가 꽤 나갑니다.

 

 홍제역 앞에서 다섯 시 58분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일곱 시 3분으로 약속시간보다 3분을 지각했습니다. 모두 열 네명인데 저보다 늦게 온 사람은 단 두 사람이고 2, 3분 뒤에 도착하여 어렵지 않게 수속을 밟아 출국장으로 나갔습니다. 70대 선생님 한 분과 60대 초반 한 분, 그리고 오십 대가 네 명, 40대가 여덟 명으로 총 열네 명에 남자가 열이고 여자가 넷인 괜찮은 팀이 터키로 가기 위해 출국장을 나선 것입니다.

 

  아홉 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인데 아마 여덟 시 45분 경에 탑승했을 겁니다. 아시아나 비행기였고 탑승객의 90% 가까이가 한국인이어서 놀랐습니다. 그래도 터키에 가는 국제선인데 다 한국인이라니,,,, 열두 시간 비행이 시작됩니다.

 

 기내식이 두 번 나왔고 간식이 한 번 나왔는데 기내에서 제공이 되는 음료는 물만 마셨고 주류는 일체 안 마셨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에 가 본 적이 없고, 제가 주류를 입에 대면 화장실에 자주 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동안은 주류를 안 마시는 게 제 기본 방침입니다.

 

 그래도 중간에 화장실에 한 번은 갔습니다. 뒤에 앉아서 보니, 식사가 끝나고 나면 많은 여자분들이 칫솔을 들고 화장실 앞에 줄을 서고 있던데 조금은 생소하고 황당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용변이 급한 사람도 있을 건데 이를 닦기 위해서 비행기 안에 줄을 선다는 게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허나 늘 이를 닦는 게 습관인 사람들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홉 시 반에 출발하여 열두 시간이 걸리면 한 밤 중에 도착해야될 거 같은데 터키와 우리는 일곱 시간이 시차가 있어서 제가 이스탄불 공항에 내린 건 현지 시간으로 두시 반입니다. 그거 신기했습니다. 한 밤중이어야 할 건데 한 낮이라니,,, 도착하여 짐을 찾고 나가니 krt여행사의 최해성 가이드가 현지 가이드 한 명과 함께 나와 있습니다. 중국 가서도 놀란 거지만 거기도 대부분 여행사를 끼고 온 단체 손님들이라 많은 여행사의 가이드들이 간판을 들고 서 있는 진기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30인승 리무진 버스에 타고 드디어 파키스탄의 이스탄불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스탄불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 붙어 있는 줄로 알고 있다가 가이드의 설명에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아시아 땅에 내린 줄로 아는데 우리가 차를 타고 움직이는 공간이 유럽이고 아시아는 내일 부터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이스탄불에서 하루 자고 버스로 아시아 땅으로 이동했다가 마지막 날 하루 전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터키 여행의 대부분은 유럽 땅이 아닌 아시아 땅에서 이뤄지는 것이지요. 뭐 어쨌거나 터키에 왔고 이스탄불이라고 하니 눈이 휘둥그래져서 사방을 보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유럽과 아시아가 좁은 바다를 놓고 마주보는 보스포러스 해협입니다.

이스탄불은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둘을 함께 아우르는, 즉 양 대륙에 걸쳐 있는데 그 가운데를 나누는 게 보스포러스해협입니다. 처음에 제가 버스에서 내려 보니 다리 세 개가 서로 가깝게 있기에 놀라서, 내가 알기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다리는 하나 뿐이고 그게 완공이 된지 오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보니 우리가 있는 곳은 유럽이고 이스탄불으 '골든 혼' 이리고 부르는 곳으로 작은 만이었습니다. 즉 양 대륙을 연결하는 다리가 아니라 유럽 쪽의 이스탄불이 가늘게 갈라진 곳이라는 겁니다. 그때서야 이해가 갔고 조금 뒤에 유람선을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올라가다보니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현수교가 웅장하게 걸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현수교는 하나가 아니라 뒤에 우리나라 현대건설이 놓은 다리가 하나 더 있어 두 개였습니다.

 

보스포러스해협은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입니다. 길이는 30 km이며,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 m라고 합니다. 깊이는 36m 에서 120 m 사이로 대형 선박이 통과합니다. 오랫동안 군사적인 요충지로 알려져 왔고, 18세기 이후에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함께 해협의 항행권(航行權)을 둘러싼 '해협문제'로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곳입니다.

 

해협 양쪽으로 이스탄불 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1973년에 완성된 해협 횡단의 유라시아 대교(大橋:일명 보스포루스교)는 세계 유수의 현수교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국제간선도로입니다. 현재는 해협을 횡단하는 두 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있으며, 바다 아래로 기차 터널이 건설이 되어 곧 개통이 될 것으로 얘기하고 있으며, 한국의 SK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2층 구조의 자동차 도로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5.4Km의 거리이며 2016년에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합니다.

 

 유람선을 타고 골든 혼을 빠져 나가다보니 다리 위에 빽빽하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모두 낚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고기를 잡기 위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여기에서 낚시를 하려면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 무슨 고기를 잡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럽 쪽 바다에 '돌마 바흐체'라는 거대한 궁전이 바다를 따라 길게 들어서 있습니다. 놀라운 건 바다가 폭풍이나 태풍어 없어서인지 바닷가에 바로 건물이 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돌마 바흐체는 내일 아침에 다시 보러 오기 때문에 그냥 간단하게 바다를 한 바퀴 돌아서 내렸습니다.

 

 저는 음식 사진을 찍는 건 좀 쫀쫀한 일인 거 같아서 음식은 찍지 않습니다. 유람선에서 내려 걷는데 거기가 고등어햄버거를 파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티비에서 방영이 된 적이 있는데 사 먹고 싶었지만 아무도 동조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더니 마침 뒤에 오던 여자 분들이 하나 사오셔서 조금 맛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습니다. 고등어가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이라 다들 선입관이 안 좋던데 빵 사이에 야채와 함께 끼워진 구운 고등어는 썩 좋았습니다.

 

 터키에서는 모든 음식을 다 케밥이라고 한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케밥은 꼬챙이에 고기를 잔뜩 끼워서 구워 놓고 큰 칼로 앏게 잘라주는 건데 그것도 케밥이지만 모든 음식을 다 케밥이라고 하고, 돼지고기는 안 먹지만 햄은 잘 먹으며, 제일 비싼 건 양고기, 그 다음이 쇠고기, 가장 싼 게 역시 닭고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어느 으슥한 골목의 식당에 가서 했는데 기대했던 케밥이 아니라 콩죽(녹두)에 밥 몇 숟가락과 닭고기 꼬치와 바케트 맛인 빵이 나왔습니다. 다들 시장하다고 하면서도 입맛에 안 맞아서 닭꼬치를 안 먹어서 저만 횡재했습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라고 하는데 처음에 물이 나와서 그냥 준 걸로 알았더니 그 물도 밥값에 포함된 산 거였습니다.

 

 밥을 먹고는 이스탄불 시내를 통과하여 우리가 머물 호텔로 가는데 차가 많이 막히어 무척 힘들게 나갔습니다. 이스탄불에 숙소를 정하면 가격이 많이 비싼 탓인지 우리가 묵을 숙소는 이스탄불에서 꽤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ESER DIAMONDS HOTEL이었습니다. 차가 막히지 않았다면 아홉 시 정도에 도착했을 거라고 하는데 우리는 열 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출발 전에 개인 별로 소주 두 팩과 컵라면 두 개 씩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저는 술과 음식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빈 손이었습다마는 다들 준비를 해와서 열 시 반이 된 시간에 한 방에 모여 간단하게 한 잔하는 자리를 했고 돌아와서는 룸 메이트인 두꺼비 선생님과 짐을 줄이기 위해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 잤습니다.

 

 

 아침 기상 시간이 다섯 시 반이었고 여섯 시에 식사를 시작했는데 치즈 종류가 많아서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그 치즈 맛은 제가 기대했던 게 아니고 대부분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침 식사는 빵 종류와 요거트 시리얼, 샐러드, 밥과 콩죽이 나왔는데 저는 빵을 무척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호텔에서 일곱 시 반에 출발하여 다시 이스탄불로 갔고 첫 코스가 돌마 바흐체였습니다.

돌마 바흐체를 한 시간 정도 돌아보고는 버스를 타고 유라시아 대교를 건너 아시아 땅으로 향했고 이후 이스탄불은 떠나기 전 날 오후에 도착하여 저녁 시간과 밤 시간,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돌아봤으니까 다 해도 하루가 안 되는 시간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스탄불 관광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도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운 세대에 속하고 세계사에 대해 조금 아는 척을 하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솔직히 중국이나 유럽의 역사가 아닌 터키에 디해서는 많이 알지 못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티그리스, 유포라테스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세계 최초 철기문화를 사용한 힛타이트족이 살았던 곳, 여러 문명이 휩쓸고 지나가서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가 오늘날 터키의 근본은 튀르크족이라는 것 정도.

 

 튀르크는 투르키족이라고 하는데 현재 중국 서부에 투르판이라는 지역과 종족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토번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 초기에 토번국에서 낙타를 보내와서 수교를 청했는데 태조임금이 그 낙타를 굶겨 죽인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터키의 오랜 시간 수도였고 이미 서기 전 800년 경부터 도시로 성장한 곳이 이스탄불입니다. 한 때는 비잔틴, 한 때는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15시기 이후에는 이스탄불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돌마 바흐체의 모습입니다. 

 

 

 

 

 

 

 

 

 

 

 

 

 이스탄불은

흑해 어귀에 있는 구릉성 3각형 반도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양쪽에 걸쳐 있어서 유럽·아시아 양 대륙에 속한다. 비잔티움은 BC 8세기말경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한 곳으로서 BC 512년 페르시아 제국으로 넘어갔고, 그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치하에서 자유도시였다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재위기간(69~79) 동안에는 로마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수도로 채택되면서 '신로마'(New Rome)로 개칭되었다. 330년에는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에서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도교 도시로 포고되었으며, 그리스도교 세계의 종교 중심지가 되었다. 6~13세기에는 페르시아인·아랍인·불가리아인·러시아인들에게 자주 포위당했다.

 

1203년 제4차 십자군에게 점령당해 이들에게 약탈당하고, 로마 가톨릭 지배하로 들어갔다. 1261년 다시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에게 또다시 넘어갔다. 메메드 2세 치하에서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1453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뒤 1922년까지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가 지속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고, 콘스탄티노플은 1930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칭되었다.

 

 

 아래 사진들은 돌아오기 전날인 23일 저녁 때 들른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르의 모습입니다.

 

 

 

 

 

 

 

 

 

 

 

 

   이스탄불을 한 마디로 얘기하라고 하면 시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가는 날 오후에 두어 시간, 돌아오기 전날 저녁에 다섯 시간, 돌아오는 날, 다섯 시간 정도 둘러 보았는데 가장 큰 게 시장입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에 의하면 이스탄불에서 2박 3일 정도 시간을 갖고 돌아봐야 된다고 하는데 다음에 간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한 그랜드바자르를 들러 보았는데 여기는 원래부터가 중개무역으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시장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랜드바자르 말고도 바자르가 여러 곳에 존재한다고 하는데 정말 무엇이든 다 팔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스탄불은

유럽 지구에 전체주민의 3/4 이상이 거주하며, 주요 상사·호텔·사무실 등이 집결되어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도시(Stamboul) 안에는 비탈이 가파르고 꼭대기가 평평한 7개의 구릉이 있는데, 이곳은 가장 중세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좁은 해협인 골든혼(Golden Horn) 건너편에 자리 잡은 베욜루는 이스탄불 시의 현대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구역으로, 극장과 수많은 터키 정부청사들이 들어서 있다. 이스탄불의 기후는 아열대 및 지중해성 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은 14, 연강수량은 760~900이다.

 

   아래 사진들은 성 소피아 성당의 외관과 내부 입니다.

 

 

 

 

 

 

 

 

 

 

 

 

 

 

 

 

 

 

 이스탄불은 두 번째로 얘기하면 하면 종교의 도시입니다.

서울의 교회탑 만큼이나 이슬람사원 첨탑이 많이 보입니다. 이슬람사원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불루모스크인데 그 바로 앞에 있는 성 소피아성당을 본 떠 만든 거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성당은 오스만 투르크가 점령한 뒤에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안에 보수공사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상당히 놀라온 물리학과 건축학, 수학 등이 동원된 현재의 건축술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지진으로 몇 차례 붕괴되기도 했으나 완전 망가진 적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성 소피아성당 맞은 편의 불루 모스크의 외관과 내부 모습입니다.

 

 

 

 

 

 

 

 

 

 

 

 

 

 

 

  외형은 상당히 닮았지만 내부는 많이 다릅니다.

여기는 현재도 이슬람사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메카에 있다는 사원 말고는 가장 크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서 들어야 하며, 미니스커트와 반바지 차림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부에 그린 그림이 서로 다른데 성당은 성화(聖畵)로 장식되어 있으나 여기는 우상숭배를 금하기 때문에 문양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톱카프 궁전에서 찍은 것입니다.

 

 

 

 

 

 

 

 

 

 

 

 

 

 

 

 

 

 

 

 톱카프 궁전입니다.

 이 궁전을 보면 우리의 왕에 해당이 되는 술탄의 생활이 검소한 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랜 시간을 여거서 거주하다가 오스만튀르크가 망하기 직전에 바닷가에 돌마바우체라는 호화 궁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온 왕자가 베르사이유궁을 보고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에 바로 망합니다.

 

이스탄불은 

수세기 동안 터키의 문화 중심지였다. 철도를 통해 동서 유럽 및 중동의 시리아·이라크와 연결된다. 이스탄불 시의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잇는 보스포루스 다리(길이 1,073m)는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 현수교들 중의 하나이다. 서쪽으로 27지점에는 예실쾨이 국제공항이 있다. 이스탄불의 항구는 터키의 수출입품목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면적 254, 인구 1500(2014년 추정)

 

 

  아래 사진들은 이스탄불의 가장 번화가라 할 수 있는 탁심 시가지의 야경 모습입니다.

 

 

 

 

 

 

 

 

 

 

 

 

 

 

 

 

 

 

   이스탄불을 세 번째로 얘기하면 사람의 도시였습니다.

 

신시가지인 탁심이라는 곳을 가봤더니 우리나라 12월 31일 밤 종로 거리보다 12월 24일 밤 명동거리보다 더 붐비는 게 사람인데 1년 365일 항상 그렇다고 합니다.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러 그렇게 사람이 모이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