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중국 운남성 여행6, 따리1. 얼하이호

2017. 8. 24. 21:15시우의 여행기


 5일 밤 열한 시에 쿤밍역에서 기차를 타고 아침 일곱 시에 따리역에 도착했다.

중국의 기차역들은 정말 크고 넓다. 우리나라 70년대 설이나 추석에 명절 쇠러 고향에 가는 인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타고 내리니 역이 아무리 크다고 해서 항상 사람이 꽉 차 있어서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3층칸의 상층표였는데 거기로 올라가는 것이 너무 어려워 중층표를 가진 김 실장님께 양보를 받아 중층에 탔다. 거기도 힘이 들기 마찬가지여서 간신히 기어 올랐는데 바로 잠이 들었다가 새벽 세 시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한 번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러고는 도착했다고 깨우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차가 역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0710분에 역을 나선 것 같다. 역 밖에는 미리 연락해 둔 빵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빵차는 우리나라 봉고차보다 작은 다마스 같은 크기의 작은 차로 최대 7명이 승차할 수 있다고 하는데 보통 6명이나 5명이 탈 때에 쓰는 차였다.

 

한 사람 당 10위안을 내고 따리 고성 부근에 있는 '태양화객잔'으로 갔다. 그 시간이 08시였으니 아직 잠을 자는 사람도 있고 짐을 싸서 나오는 사람도 있어서 우리는 방을 배정 받을 수가 없었다. 짐을 1층 식당에 두고 밖으로 나가 아침식사를 했다. 그 시간이 0830분이었는데 음식 이름을 몰라 차림판에 있는 것을 짚어가면서 시켰다. 서로 말이 안 통하지만 눈치로 상대가 알아듣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는 거였다.


나는 간단하게 볶음밥을 시켰는데 10위안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상의한 것이 아닌데 울산 두 부부와 김 실장님과 함께 늘 여섯이서 움직이고 있었다. 김 실장님과 울산 재양 씨가 우리와 달리 비싼 것을 시켰는데 그게 잘못 전달이 되어 34위안이 아니라 20위안 짜리가 나와서 웃고 말았다. 밥을 먹은 뒤에 다시 숙소로 갔는데 마침 방이 나와서 103호실을 배정 받았다.


  오늘은 각기 팀으로 나누어 자기들 좋아하는 코스를 택하는 걸로 했는데 우리 여섯은 빵차를 대절해서 '얼하이'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배를 타고 호수에 가서 '남조풍경도'를 보러 가신 분들이 많았고 또 다르게 움직이는 팀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티비에서 여러 번 보았던 남조풍경도는 안 가기로 마음 먹고 온 거였다.


 한 사람 당 100위안 씩 내서 400위안은 차비로 쓰고 남은 것으로는 먹는 것에 쓰기로 했다.

빵차 기사가 오더니 내가 생각했던 반대로 한 바퀴 돌자고 하면서 먼저 '얼하이공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길이 가파라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주 높은 곳은 아니라 쉬엄쉬엄 올라갔다.

날이 맑았다면 호수 주변을 아주 잘 보았을 것인데 흐리고 비가 오고 해서 조금 아쉬웠다. 따리는 앞에 얼하이가 있고 뒤에는 창산이 있어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도시였다.


 얼하이, 사람의 귀를 닮은 바다라고 해서 귀(耳)와 이(二)가 같은 음이라 '얼'이 되고 바다 해(海)가 하이가 되어 '얼하이'라고 한다는데 요즘은 그 말 뒤에 호수 호(湖)를 붙여 '얼하이호'로 부른다고 한다.




































































 


호수를 제대로 보려면 산에 올라가야 하고 산을 제대로 보려면 그 산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오늘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호수 속에 들어가면 호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호수 밖에서 더 잘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비가 갑자기 소나기로 내리다가 다시 그치곤 했는데 그것도 여행의 멋을 더 진하게 해준 운치였습니다.


저는 중국에선 민물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그 고기를 키운 곳을 보면 물이 다 썩어 있는 곳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이 얼하이에서는 오늘 새우구이와 생선구이를 몇 번 먹었습니다. 우리처럼 기름에 튀기지 않고 꼬치에 끼워서 불에 굽는 방식인데 큰 생선도 먹었고 작은 생선도 먹었습니다. 다른 곳보다는 얼하이가 덜 오염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갑자기 제 사진기 렌즈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제대로 찍었는데 사진의 가장자리에 배치한 인물이 사라진 것입니다. 혹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여러 장의 사진을 다시 찍으며 확인했더니 파인더에서 본 장면이 그대로 나오질 않고 사방으로 잘려서 나옵니다.


 위의 기종 님 부부 사진도 그렇게 되서 옆이 잘린 겁니다.

렌즈를 가져 갈 때에 풀사이즈 렌즈들은 주문한 후드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아쉬운대로 크롭사진기 렌즈를 가져 간 것인데 이게 보급품으로 저렴한 것이다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때부터 렌즈에 대한 우려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많이 위축이 되어었고 광각렌즈보다는 망원렌즈를 더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사보토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는 계속 달려서 저우창마을로 갔습니다.

여기는 백족 사람들이 천연 염색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마을 전체가 다 염색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농사 짓고 염색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해서 장사하는 곳인 것 같았습니다.


 우린 여기서 한 집에 들어갔는데 우리 차의 기사가 안내해 준 곳입니다.

거기서 보니까 우리 기사는 이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이 마을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더 싸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데다가 염색한 천이나 옷을 살 사람이 없어서 우린 그냥 한 바퀴 돌고 나왔는데 나와서 출발하다가 지나가던 차를 들이받아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우리 빵차의 앞 부분이 조금 손상이 갔고, 상대 차의 옆 부분도 찌그러져 적지 않은 손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참 난감했습니다. 뭐라 말이 통해야 얘기를 들을 것인데 서로 통하는 말은 '부통(不通)' 아니면 '팀부동'이니 갑갑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를 보고 반기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신 관광객인데 우릴 보더니 무척 반가워 하면서 운남에 와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정은 웃고 즐길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쪽 가이드는 한국 사람으로 거기 산다고 하는 분인데 그 분이 와서 우리 형편을 확인하더니 차를 불러 줄테니 숙소로 돌아가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는데 우리 기사가 반대해서 그분들은 떠나고 우리만 남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ㅎ한 30분 뒤에 경찰차가 오더니 우리는 우리 차에 타고 그쪽은 그쪽 차에 타고서 20여 분 정도 가니 교통경찰서였습니다. 거기서 10분 정도 지난 뒤에 다시 우리 기사는 우리를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들르기로 했던 마지막 코스로 가자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시간도 늦었고 지금 운전할 마음이 아닐테니 그냥 숙소로 가자고 해서 돌아왔습니다(이 얘기는 말로 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겁니다.....)


 오늘 하루 번 돈 다 날리고 더 피해를 본 것 같아서 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못갔다고 해서 투덜거리거나 속 상할 일은 전혀 아님을 마음으로 전했고 오늘 계약한 400위안에다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라고 조금 더 얹어서 기사에게 주고 저는 기사와 포옹까지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우리는 다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갔습니다.

따리 고성 안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