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중국 운남성 여행7, 따리2, 창산트래킹,

2017. 8. 27. 14:45시우의 여행기



  17, 08, 07, 화, 맑음








































  17. 08. 07. 월요일

오늘은 전 인원이 창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창산은 옛날 이름이 '점창산'이라고 한다. 무협지에서 많이 보았던 점창파가 있다는 창산이 운남 따리에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창산의 최고봉은 마룡봉으로 4112m라고 한다. 19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구름에 감춰져 있어서 그 봉우리들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창산은 따리의 병풍과 같은 역할을 하고 나무가 많아서 수량이 풍부해 따리 고성이나 그 주변 마을은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창산은 늘 구름에 가려 있어 정상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기는 4000미터가 넘는 고봉이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보다도 1000미터가 더 높은 산이니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이처럼 높은 산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따리 시 자체가 2000미터 정도의 고지대이니 우리는 지금 한라산보다 높은 곳에서 이틀을 보내고 있는 거였다.


오늘은 06시에 일어났다. 혹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일어났던 거였다. 그러나 우리 객잔의 문이 잠겨 있어 나갈 수가 없었고 4층 옥상에 올라갔더니 멀리 얼하이의 뒷산 쪽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엇서 배록 전깃줄이 있다해도 해돋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여섯 시 반 쯤 되니까 구름 속으로 해가 들어가 버렸다.


내려와서 김 실장님을 깨워서 나가서 아침을 먹자고 하여 고성 안으로 들어가서 국수를 먹었다. 다시 숙소에 와서 또 씻고 나갈 준비를 한 뒤애 08시에 모여서 100위안을 내고 빵차를 타고 창산으로 갔다. 창산에 오르는 케이블카는 세 군데 라고 하는데 우리가 간 곳은 '감통사' 코스로 편도로 올라가서 10klm 정도의 산길을 걷는 트레킹 코스라고 했다.


08시 40분에 감통사 주차장에 도착했고 거기서 잠깐 수속을 밟은 뒤에 케이블카를 타고 09시 30분에 타고 올라가 도착했다. 케이블카에서 밖으로 보니 산에 나무가 정말 좋았다. 소나무인데 우리 소나무보다는 멋이 없어도 산 전체가 큰나무 숲으로 덮인 것 같아서 부러웠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 올라갔는데 거기엔 크기가 말(斗) 만큼이나 해서 유명한 장기알과 그 판이 있었다. 처음 한 20분 동안은 계속 오르는 길이었으나 올라간 뒤에는 평지와 같은 산책로, 둘레길이었다.


 


 































































 이 길이 옥대로운유로(玉帶路云遊路), 즉 대리석 평지로 불리는 길이었다. 길이가 약 10km 라고 하는데 산 위에 그런 길이 있다는 것도 참 놀랍고 부러웠다. 우리 안산의 자락길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오니 칠용여지폭포(七龍女池瀑)라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는데 사간이 너무 일러서 점심은 아니고 옥수수를 10위안 주고 사서 먹고 다시 걸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 정도  내려 온 뒤에 풍한령에서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왔는데 그 아래 김용의 소설인 '찬룡팔부'의 찰영장이 있다고 했으나 길이 계속 계단으로 가파라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내려왔다. 주변에서 말을 타고 가라는 권유를 하는 마부가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걸어서 내려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과 지리산의 케이블카 설치 문제로 지자체와 환경단체 간의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데 중국에 가서 보면 케이블카가 설치가 안 된 산이 없다고 할만큼 무척 많다. 특히 심한 곳은 한 산에 여러 코스로 설치해 놓은 곳도 있다고 한다. 거기 가서 보면 케이블카 설치가 자연 환경을 더 훼손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정말 자신들의 사명감으로 여기지 말고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지 생각했으면 한다.





































 아래로 내려오는 길도 꽤 멀었다.

우리와는 반대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더 힘들 것 같은데 종종 보였다. 우리 생김이 중국 사람을 닮아서인지 우리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난감했다. 가끔은 휴대폰을 꺼내서 통역기능을 통해 알려주기도 했는데 사실 어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려와서 우리는 빵차를 타고 숙소에 와서 씻고 따리 고성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