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발칸 반도 여행(2020. 02. 14 ~ 02. 22)

2020. 11. 15. 18:17시우의 여행기

20. 02. 18. 화. 맑음.
트르기르 아침 촬영, 보스니아 네움, 스톤, 포르즐라

조금 피곤했는지 오늘 아침엔 다섯 시 45분에 일어났다. 춘식 선생이 여섯 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던 것 같다.
여섯 시 반에 아침을 가볍게 먹고서 사진기 들고 트르기르섬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 바다도 너무 맑고 깨끗했는데 어디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죽은 채로 떠다니고 있고 바닥에는 조금 큰 물고기도 있었다. 여기는 요트가 무척 많아서 항구에 많은 요트의 깃대가 보였다. 아침에 보니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 섬에 다리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토르기르'가 염소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염소가 섬으로 건너가서 많이 살았다고 한다.
나만 나온 것이 아니라 용주 선생, 소영 선생, 희정 선생도 같이 나왔길래 내가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 세 사람은 짐을 꾸리러 먼저 가고 나 혼자서 어제 봤던 곳을 가늠해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토르기르는 성채 도시이다. 2300년 이상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그리스, 로마, 베니스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중세 유럽 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인기 있는 관광명소라고 하는데 어제 어둑해진 시간에 수박 겉핥기로 조금만 돌아서 제대로 보지 못했고 오늘도 여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사진을 찍으니 이건 완전히 소가 빠진 만두였다.

 

 

트로기르의 대표 볼거리는 성 로브로 대성당이라고 했다. 종교적 인연이 없는 여행자들도 13세기 달마티아 조각가 라도반(Radovan)이 남겨놓은 대성당 입구의 조각 작품 앞에서는 탄성을 내지른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미안했다. 아담과 이브 조각상은 이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선 누드 작품이라고 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것들보다 300여 년이 앞선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여기서는 문을 잘 찾아 들어가야 한다고 어제 들었다. 육지에서 트로기르 올드타운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해당되는 것이 북문이라고 했는데 이게 우리나라 성이나 궁궐의 문처럼 크게 돌출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칫 그냥 지나치고 마는 곳이었다. 그래도 르네상스 양식의 석문 위에는 트로기르의 수호성인으로 통하는 성 이반 오르시니(St. Ivan Orsini)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북문을 통해 들어가는 트로기르 안길은 네모난 바닥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음을 증언해주는 듯 반질반질했다. 좁은 골목길 안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여행자들의 숙소가 숨어있고 기념품 가게들이 숨어있다고 했지만 아침이라 그런지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돌아보고 싶었지만 여덟 시 10분에 출발한다고 해서 서둘러 돌아가 짐을 챙겨서 나와 버스에 올랐다.
예정된 시간에 출발을 해서 09시 30분에 휴게소에 들러서 조금 쉰 뒤에 50분에 출발했다. 10시 50분에 보스니아로 들어갔다. 크로아티아가 아드리아해를 따라 길게 이어졌는데 한쪽에 보스니아 땅이 있어 그곳을 건너 뛰어 다시 크로아티아가 되는 거였다. 즉 크로아티아로 쭉 이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 끊겨져 있고 그 끊겨진 곳이 보스니아의 네움이라는 도시였다. 10시 50분에 보스니아국경을 넘어서 11시 03분에 네움에 도착해서 호텔 레스토랑에서 해물 레조뜨로 점심을 먹었다.



보스니아가 크로아티아보다 더 못사는 나라이고 세금이 저렴해서 크로아티아의 사람들이 여기 네움으로 시장을 보러 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와인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우리도 여기서 와인을 사라고 내가 얘기해줬다. 해물리조또를 먹으면서 레몬맥주를 시켰는데 알콜 도수가 2%여서 무슨 음료수 같았다.
점심을 먹고 12시 15분에 출발해서 다시 12시 27분에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어갔다. 여권검사는 앞의 여섯 사람만 해서 간편했다. 12시 45분에 스톤에 도착했는데 겨우 30분의 시간을 준 뒤에 다시 버스에 탔다. 스톤은 예전에 염전이 유명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산 위로 긴 성벽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감히 비교가 안 되지만 유럽에서는 산성으로 꽤 알려졌다고 한다.

 

거기서 출발하여 코르츨라 섬으로 가기 위해 바닷가에 가서 14시 20분에 배를 탔다. 연락선은 아닌 것 같고 관광선으로 보였는데 미리 연락하여 코르츨라 섬에서 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27명만 타고 갔다. 섬까지 15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바람이 불어서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코르츨라Curzola)는 코르츨라 섬 동부 연안에 위치한 옛 도시로, 구 시가지 주변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고 거리는 오늬(화살의 오늬 모양으로 서로 어긋나게 맞추어 놓은)무늬 형태를 띠고 있으며 바람이 잘 통하지만 강풍에 강한 구조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섬과 본토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지키는 곶 위에 도로를 세우면서 건설된 마을이다. 18세기까지 성곽 바깥쪽에 건물을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1863년 나무다리가 건설되면서 바뀌게 된다. 남동부에 있는 성곽을 따라 건설된 도로를 제외한 모든 도로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계단 걱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생각의 도로"라고 불린다고 했다.
마을의 역사 유적으로는 1301년부터 1806년까지 건축된 중앙부의 로마네스크 건축- 고딕 건축 양식 대성당인 성 마르코 대성당, 15세기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원과 베네치아 고딕 회랑, 시민 회의장, 옛 베네치아 행정관궁, 15세기와 16세기 현지 상인 귀족들의 궁전, 대규모 성벽 등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코르츨라는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태어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마르코 폴로가 실제 인물이었냐는 지금도 말들이 많지만 이 동네에선 자기네 사람인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바람도 많이 불고 기온도 내려가서 다들 구경보다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여름이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5시 50분에 우리도 커피를 마시고 아까 타고 왔던 연락선을 다시 타고 건너와 16시 10분에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아까 지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가였다.
나는 이 돌아오는 길에서 뜻밖의 일을 보았다. 우리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도로 보수공사가 있었다. 길이 좁아서 한 차로를 통제하면서 공사를 하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길 양쪽에 사람이 서서 수신호를 해서 차를 막거나 보낼 것인데 여기는 사람이 없고 대신 신호등이 이쪽과 저쪽 두 곳 길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신호등의 신호에 의해서 차가 서고 가는 거였다. 이들 나라가 사람이 사는 것은 우리나라보다 많이 못한 것 같은데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보다 훨씬 앞섰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러웠다.


보스니아를 여행하게 되면 당기츠라는 와인을 꼭 마셔야 한다는 얘기를 내가 들은 적이 있다. 보스니아는 땅이 척박해서 포도나무가 잘 자라지 않고 난장이라고 했다. 그 난장이 포도나무를 키우는 일이 아주 힘든 일인데 그 포도로 만든 당기츠와인이 매우 저렴하고 또 보스니아 사람들이 많이 가난하니 도와주는 의미에서 거기에 가면 꼭 ‘와인을 마시고 와야 한다는 얘기였다. 내가 낮에 이 얘기를 했더니 신해 선생이 상점에 가서 당기츠와인 여러 병을 샀다. 가격이 저렴한데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고 했다.


처음에 베네치아를 통해서 슬로베니아로 올 때에 바깥의 포도나무가 우리나라 것보다 키가 많이 작아서 나는 그것들이 ’난장이 포도나무‘인 줄로 생각을 했는데 오늘 낮에 보니 정말 여기 포도나무들은 분재 수준으로 작아서 보기에 애처로웠다. 쁠리바츠 말리(쁠라바츠의 난쟁이)라는 품종이라고 하는데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접경지역의 꽤 많은 곳에 이 포도나무들이 심겨져 있었다. 이런 포도나무를 심어서 포도를 따 와인을 만들기 까지 여기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얼마나 흘렸을까 생각을 하니 갑자기 와인을 많이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점심을 먹었던 네움에 있는 바프레 호텔 712호에 짐을 풀었다. 그간 여행 중에 신해 선생과 같이 자던 사모님이 신해 선생 코고는 소리에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다고 구원을 요청해 오늘부터 신해 선생과 내가 같이 자기로 했다.
저녁은 호텔 뷔페였는데 나는 간단하게 먹었다. 그리고 712호에 19시 40분에 모여 와인 파티를 했다. 엘비스 말에 의하면 이쪽의 와인은 이탈리아에 비해 형편없는 맛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아주 훌륭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꽤 많이 마셨다. 오늘은 좀 늦게 22시 20분에 헤어져 방으로 와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