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8. 11:22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서울포토클럽
『서울포토클럽』은 1991년부터 격년제로 클럽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가 한 번 끝나면 회원 몇 명은 꼭 빠져 나갔고 전시회가 열린 다음엔 상당수의 회원들이 들어왔다. 예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어디에 무슨 클럽이 있는지를 알 수가 없으므로 사진잡지에 광고가 나가는 클럽이 아니면 대학로에 와서 전시회를 보고는 물어서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어 전시회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회원으로 들어왔던 거였다.
전시회를 하면 거기 출품한 회원들이 자기들 지인을 초대하여 사진전을 보여주고 모임을 갖곤 하니까 그렇게 해서 저변이 확대되는 영향도 있었다. 1998년 1월에 우리가 네 번째 전시회를 할 적에 왔다가 우리 『서울포토클럽』에 들어 온 전 실장은 이화여대 미술과를 나와서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의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는 디자인 전문가였다. 전 실장이 우리와 함께 하게 된 것은 초, 중등학교 미술교과서와 관계가 있는 교육부 장학관 한 분이 우리 클럽의 회원으로 계셔 사진전을 보러왔다가 그 분의 권유로 『서울포토클럽』에 가입한 거였다.
전 실장은 나보다 한 살이 위라고 했는데 빼어난 미인이었다. 나는 나보다 위인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깍듯이 존대를 하는 사람이었고 또 처음엔 서먹해서 한참 거리를 두고 상대를 했는데 몇 번 술자리를 같이 해보니 서울 출신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뺀질한 사람이 아니어서 좋았다. 남자 같으면 한 살만 위여도 ‘형’이 아니면 ‘형님’이지만 여자에겐 ‘누님’이라는 호칭이 잘 나오지 않아서 그냥 ‘실장님’으로 부르며 지냈다.
그 장학관님의 힘으로 나이가 든 여자 몇 분이 계속 들어왔는데 대부분 나보다 위였고 내가 스스럼없이 대하기는 어딘가 불편한 분들이었다. 그나마 그 중에서 나은 게 전 실장이었고 전 실장은 우리가 마련하는 술자리에 빼지 않고 잘 어울려서 몇 번 술을 마시면서 조금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여자와 둘이 만나는 것을 극히 꺼려하는데 그건 혹 실수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하고 괜한 구설수에 오를까봐 염려해서였다. 내가 내 주량을 잘 알지만 기분에 크게 올라가면 그 이상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드물게 있었다. 나는 그게 여자 앞에서 그럴까봐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여자와 단 둘이 마시는 일은 삼갔다.
물론 전 실장하고도 그랬다. 그런데 여럿이 마시고서 나보다 먼저 취한 전 실장을 데려다 주려고 따라갔다가 다시 더 마시게 되면 대책이 없었다. 집 근처라고 한잔만 더 하자고 붙잡으면 내가 어떻게 미녀의 청을 거절할 수 있으랴!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한두 병을 더 마신 뒤에는 내가 집에 어떻게 왔는지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전전긍긍하다가 어렵게 전화를 해서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자기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편해질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두세 번 있다 보니 내가 전 실장하고 가까워졌다.
우리가 만나는 일이야 촬영을 나갈 때와 품평회를 할 때로 한 달에 두 번이 전부였지만 가끔은 가까운 사람끼리 종로에서 만나 술자리를 했는데 거기에 늘 함께 하는 분들이 지도교수님, 장학관 두 분, 병창이 형님, 동길이 형님, 광옥이 형님과 구원이 형님, 전 실장이었고 나고 항상 그 자리에 끼였다. 우리는 1차 먹고 마신 뒤에 노래방에도 가고 종로 3가역 4번 출구 앞에 있는 ‘천지클럽’에도 자주 갔다. 거기는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는 곳인데 전 실장은 노래도 잘하지 못했고 춤도 잘 추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래서 전 실장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전 실장은 미술을 전공으로 한 사람이라 디자인에서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전시회를 할 때에 만드는 사진집이 전 실장이 우리 모임에 오기 전과 온 뒤가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출간할 때도 표지를 신경 써 주어 전 실장이 손을 봐 준 것들이 훨씬 나았다. 나는 늦은 나이에 좋은 친구가 하나 늘었다고 늘 감사했으며 사진 모임이 아닌 곳에도 자주 불러서 함께 했었다.
1998년 6월에 우리가 동해 추암으로 일출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전 실장이 대학 1학년인 딸을 데리고 왔다. 딸이 쌍둥이라고 했는데 그날 처음 본 아이는 작은 애로 이름이 지은이였다. 지은이는 엄마를 닮아서 빼어나게 예뻤다. 나는 내가 아는 주변에선 그렇게 예쁜 애를 처음 본 거 같았다. 키가 훌쩍 컸고 날씬한데다가 큰 눈이 서글서글하고 얼굴도 하야서 어디 영화배우가 온 것 같았다. 나는 첫눈에 지은이에게 반했다. 서울에 와서 드림호프로 가서 맥주를 마셨는데 내가 한 잔 권했더니 자기 엄마에게 ‘이거 마셔도 되요?’하고 물었고 곁에서는 다들 마시라고 권해서 지은이도 맥주를 마셨다. 지은이의 그런 태도와 모습이 더 예뻐 보였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어른들이 권하는 술을 엄마에게 묻고 마신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거기서 지은이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리고는 우리 제자들과 만남이 있을 때는 지은이를 자주 불러냈다. 우리 애들도 다 지은이를 좋아했다. 지은이 남매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미국에 가서 지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서울에 와서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특례입학으로 둘 다 동국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 뒤에 만난 언니인 지영이는 경찰행정학과, 지은이는 경영정보학과였다.
지영이와 지은이는 많이 닮았지만 둘이 같이 있으면 쉽게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다른 면도 많다. 애교스럽기는 지영이가 더하고, 하는 행동은 지은이가 더 낫다고 하지만 둘 다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쁘다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착했다. 누가 지영이 보고 탈랜트 이승연을 닮았다고 했지만 지영이가 이승연보다 더 예쁘고 더 날씬하다. 지은이는 언니보다 조금 더 갸름한 편이었다.
지영이는 몇 번 안 만났지만 지은이는 자주 만났다. 지은이는 한참 배워야할 때에 미국에 가서 생활에 우리 말뜻을 잘 몰라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해마다 겨울에 가까운 제자들 몇과 친구 경후가 운전하는 승합차로 동해안 여행을 다녔는데 홍찬이, 종건이, 기은이, 민정이가 주 멤버였다. 거기다가 대학원에 다니는 영선이와 지은이도 함께 해서 동해안으로 2박 3일 여행을 갔었다. 해마다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영선이와 지은이가 함께 해서 더 좋았다. 가서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다음 해 여름에는 지은이를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셋이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당일 날에 한 아이가 빠져서 둘이 간 거였다. 완도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배를 탔는데 갈 때는 하루 종일 가는 거였다. 제주도에 가서 내가 찍고 싶은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지은이 사진도 많이 찍어서 사진을 8*10인치로 확대하여 앨범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때 제주도에 가서 미경이도 만났다. 저녁에 만나서 사진을 찍어주진 못했지만 이래저래 좋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나는 지은이가 우리 제자 성준이와 만나는 것을 괜찮게 생각했다. 우리 『서울포토클럽』이 다섯 번째 전시회를 할 때에 나를 도우러 대학로에 왔다가 만난 거였다. 성준이 말고도 지은이 좋아하는 애들은 많았는데 다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 중에 성준이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였다. 둘이 만나는 낌새는 알았는데 오래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지은이는 성준이보다 후배인 홍찬이, 종건이, 민정이, 구 등과 자주 어울려 다녔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니까 다들 자기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같이 어울리는 시간이 적어졌다.
지영이와 지은이는 전공과목에 들어가면서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무척 애를 먹었다. 한자어를 통 이해하지 못하는 거였다. 내가 지은이더러 ‘홍도’가 아름다운 섬이라고 했더니 ‘왜 아름다운 섬이 울었냐?’고 물어서 놀란 적이 있다. 지은이는 대중가요 ‘홍도야 울지 마라’의 홍도와 섬 홍도를 같은 걸로 본 것이다. 나는 지은이에게 우리말을 좀 더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은이와 지영이는 휴학을 하고 다시 복학을 하고 했지만 그 부분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대학을 쉽게 졸업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이 전 실장에게도 큰 스트레슬 주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전 실장은 미국으로 갔다고 했다. 한 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더니 풍문으로 그렇게 들려 왔다. 전 실장과 소식이 끊긴 뒤에 지은이하고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내가 삐삐를 너무 오래 쓰다가 사람들이 011, 017 등의 번호에서 010으로 바뀌는 과정을 놓친 거였다. 그래서 너무 아쉽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 실장과 지은이는 내가 지금도 좋아하는 사랑스런 모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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