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가겠지만

2021. 7. 18. 11:21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서울포토클럽

 

서울포토클럽200534~ 6일의 일곱 번째 전시회를 끝으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도교수이신 성낙인 선생님을 모시고 최운철, 이동근, 이영주, 윤태일, 박병창, 정동길, 최광옥, 허준배, 정구원, 혜진, 정희, 박종린, 경숙, 영아가 참여한 自然15人展을 끝으로 더 이상 전시회를 열지 못하였다. 14명이 참여했는데 15인이 되었던 것은 참여하기로 했던 분이 마지막에서 빠져서 그렇게 된 거였다.

 

우리 몇 사람은 전시회는 더 열지 못했어도 계속 모임을 이어나갔다. 한 달에 한 번 촬영과 품평회를 가졌는데 지도교수님께서 병환으로 함께 하지 못하면서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다가 20111126일에 돌아가신 뒤에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지금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은 최운철 사장님과 구원이 형님, 경숙이와 대하, 광옥이 형님, 영아 정도이다.

 

경숙이와 영아는 2004년에 우리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회원인 준배가 자기 사무실 근처에 근무하는 아가씨들이라고 같이 와서 처음 만났고 준배하고는 만난지 오래 되었어도 경숙이와 영아는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서울포토클럽의 마지막 여자회원인 셈이다. 나는 앞으로 서울포토클럽에 새로운 회원을 더 늘일 생각도 없고 예전처럼 사진에 열정을 보일 생각도 아니어서 이 두 사람이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언젠간 다 갈 거라고 생각한다.

 

영아는 집이 화곡동이라 내가 주로 활동하는 종로와 광화문과 거리가 멀어서 자주 볼 수 없지만 경숙이는 근무처가 종로라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는 편이다.

 

경숙이는 사진을 하면서 캘리그라피(calligraphy)를 배우러 다녀 웬 만한 경지에 올랐고 등산에서도 전문가급 수준이라고 들었다. 나는 경숙이와 같이 산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암벽등반까지 할 정도라고 하니 내가 따라다닐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진모임이 없는 휴일에는 주로 산에 다니는데 해외등산도 몇 군데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제빵 기술을 배우러 다닌다고 들었는데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경숙이에게 내가 지어준 호가 소금(素琴)’이다. ‘素琴아무런 장식이 없는 수수한 거문고를 의미하는 말이다. ‘소금은 우리 식생활에 필수 요소인 소금과도 음이 같다. 의사들은 소금이 건강에 해롭다고 많이 먹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소금은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이고 소금이 없는 세상은 죽음의 세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소금을 너무 섭취해서는 안 되겠지만 생존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나는 경숙이가 그런 소금 같은 존재로 내 곁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경숙이에게 素琴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평소에 별로 말이 없으며 언제나 소박한 모습과 꾸밈없는 생활에서 기인한 거였다. 소금은 남들이 묻는 말 외는 먼저 얘기할 때가 아주 드물고 산에 다닌다고 해서 무슨 유명 아웃도어를 걸치고 다니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육류도 잘 먹지만 나물 종류를 훨씬 더 좋아하는 식성도 그렇다. 다만 마른 멸치를 무척 좋아하는 것은 내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예전에 멸치 때문에 열 받은 일이 있어서 마른 멸치를 가급적 먹지 않기 때문이다.

 

소금이 우리 모임에 나온 뒤로는 내가 할 일이 확 줄었다. 총무 겸 재무의 일을 다 맡아서 해주니 언제나 고마울 뿐이다. 예전에 연숙이가 하던 역할을 지금은 소금이 다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지금 열 사람도 안 되는 모임이라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모임은 숫자가 많거나 적거나 꼭 취해야할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 소소하게 신경을 쓸 일들이 항상 생기고 그럴 때마다 소금이 알아서 다 해준다.

 

거기다가 소금의 술자리에서 모습도 아주 마음에 든다. 주로 소주를 마시는 것도 그렇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자리가 파할 때까지 늘 같이 마시고 빼지 않는다. 내가 취한 적은 있어도 소금이 취한 적을 본 적이 없으니 주량이 나보다 소금이 더 세다는 것은 마음에 조금 걸리는 일이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도 남에게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남보다 먼저 취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이미 한 수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자리가 파한 뒤에는 인사불성이 되더라고 남들 앞에서는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지만 내가 소금 앞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금과 마실 때는 마음 편히 마신다. 나는 술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반만 믿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다 취해 정신이 없는데도 정말 끝까지 멀쩡히 버티는 사람은 몇 보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소금이었다.

 

내가 소금을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30대 중반에 만났는데 이젠 40대 후반의 나이가 된 거였다. 물론 나도 40대 후반에서 이젠 갑년이 되었으니 세월은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말이 없고 상냥하지도 않고 애교도 없는 소금이 곁에 있다는 것은 내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자에게 약하고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 사람이지만 말이 많은 여자는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냥하고 애교 많은 여자에가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건 남자가 아닐 것이다. 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예쁜 여자에게 넘어가 큰 기밀을 넘기거나 파멸하는 남자들을 종종 볼 수 있고 또 그런 남자들을 비난하는 소리를 듣지만 남자라면 어떻게 예쁜 여자에게 안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내게 그런 기회가 안 오는 것이 정말 다행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술에 취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소금이 마지막 애인이라는 거다. ‘애인이라는 말은 오해가 소지가 많을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애인이 아닌가? 내 나이 예순이 넘어 더 이상 다른 여자와 가까워질 리도 없겠지만 지금 소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 육체를 탐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내가 자신들을 좋아하는지를 알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 좋아서 좋아할 뿐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세계일주이다. 그냥 수박 겉핥기가 아닌 현지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 여행에 동행했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이 구원이 형과 소금이다. 소금은 관광학과를 나왔으니 나보다 여행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고 정보 파악도 더 잘 할 것이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을 하면 될 것이고 구원이 형은 언제나 내게 좋은 조언을 하는 분이니 셋이 함께 움직이면 멋진 팀이 될 것 같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재형으로 살고 싶다. 아직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멀쩡하게 살아있으면서 왜 추억으로 살겠는가?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한 거다. 내가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떠나고 소식이 끊기고 했지만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언젠가는 다 헤어지는 것이 순리라고 믿고 있다. 어떻게 끝까지 같이 갈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 곁에 영원히 남아 있어주기를 바라니 이것이 사람의 부질없는 욕망이라고 본다. 부질없는 욕망이겠지만 우리 소금은 늘 그대로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