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로망, 라이카(Leica)

2021. 7. 18. 12:07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서울포토클럽

 

 사진기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사진기의 대명사로 캐논(canon)을 얘기할 것이다. 스포츠의 현장이나 뉴스거리가 되는 곳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사진기가 캐논이다. 캐논은 디지털사진기로 발 빠르게 변화를 시도하여 오늘날 어느 곳에서나 사진기하면 캐논이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이를 보면서 가장 배가 아픈 사진기는 니콘(nikon)일 고라고 생각한다. 니콘은 디지털사진기가 일반화되기 이전에 전 세계를 주름잡던 사진기였다. 그러나 캐논과 니콘이 자신들의 명함을 꺼내기가 민망한 사진기가 있으니 그게 바로 35mm 사진기의 지존 라이카(Leica)이다.

 

라이카가 어떤 사진기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진인들도 많겠지만 사진기의 살아있는 전설은 라이카이다. 라이카 앞에 사진기 없고 라이카 뒤에 사진기 없다는 말을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라이카, 라이카는 사진기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신화로 살아남아 있을 사진기의 최고봉이다. 필름을 쓰든 저장장치를 쓰든 라이카 앞에 설 사진기는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거다. 그래서 라이카는 로망이고 비싸다.

 

라이카는 필름을 쓰던 시절에 35mm 사진기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거였다. 프랑스의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사진 기술에 대한 발표로 특허를 획득하여 공식적인 사진술이 시작된 지 정확히 10년 후인 1849년에, 독일의 수학자 칼 켈러(Cal Kellner)가 베츨러((Wetzler)에 현미경과 렌즈 등을 연구 생산하는 ʻ광학연구소ʼ를 설립한 것이 라이카의 시작이다. 켈러가 죽은 뒤 1869년에 이 연구소에 근무하던 에른스트 라이츠(Ernst Leitz, ?1920)가 회사를 이어받아 그 회사 이름도 ʻ에른스트 라이츠ʼ로 바뀌게 되었다. 라이카는 라이츠의 카메라에서 온 합성어였다.

 

칼 차이스(Carl Zeiss)의 광학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오스카 바르낙(Oscar Barnack, 1879~1936)1911년에 라이츠에 합류해 일을 하면서 1913년에 최초의 라이카 모델을 만들었다. 그는 35mm 영화 필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사진기를 만들었고 그 결과 꽤 큰 확대가 가능한 고품질의 네거티브를 얻게 되었다. 이 시작이 그 유명한 라이츠의 명구(名句) ʻ작은 네거티브 큰 인화ʼ의 연원이 된 것이다. 바르낙은 오늘날 라이카의 명성을 만든 라이카의 선구자였다.

 

라이카를 이야기할 때 빼어 놓을 수 없는 다른 한 사람이 막스 베렉(Max Berek, 1986-1949)이다. 베렉은 라이카의 핵심이라고 할 라이카 렌즈를 설계하여 라이츠’, ‘바르낙과 함께 라이카 성공의 3총사로 불린다. 베렉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라이카 렌즈를 설계했고 현재의 라이카 렌즈도 베렉의 처음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초창기는 라이카의 렌즈가 콘탁스의 렌즈에 못 미친다고도 했지만 현재의 라이카 렌즈는 명실 공히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사진기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진기로 평가되는 라이카 M31954년에 등장하였다. 이 사진기는 종래의 사진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종으로 이전까지의 라이카를 실용적인 방향으로 재설계했던 모델이다. 하이리치 장케(Heinrich Janke)M3의 설계를 담당했으며 Mr. Uhl은 생산과 품질관리를 총지휘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뛰어난 창의력과 지식을 M3 카메라속의 금속과 유리로 변환시켜 넣었다. 이들은 이전에 바르낙이 구축한 기초위에 찬란한 라이카의 꽃을 피웠다. 아마도 이들이 없었다면 전 세계의 사진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형편없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본의 니콘과 캐논이 1950년대 초반에 독일제 사진기와 라이카를 따라 잡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다가 라이카의 M3가 나온 뒤에 거리계 연동(레인지파인더 : RF) 방식의 사진기를 접고서 일안반사(SLR)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할만큼 라이카의 M3는 사진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고 라이카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라이카는 M3의 성공과 이어진 M2, M1, M4, M5의 성공에 도취되어 일본 사진기업체들이 새롭게 일안반사 방식의 사진기를 발전시킬 때에 이를 등한시하다가 사진기의 왕좌를 일본의 일안반사(SLR) 사진기에 내주고 말았다.

 

1970년대는 거리계 연동(RF) 방식의 사진기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일본 업체들이 연합전선을 편 일안반사(SLR) 방식의 사진기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라이카는 뒤늦게 일안반사 방식의 사진기인 라이카플렉스와 라이카 SL, SL2, R3, R5, R6, R7, R8, R9 등을 내놓았지만 이미 일본 업체에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러면서 다시 M6, M7 등의 모델을 내놓아 라이카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시 그 이름을 사진인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라이카는 1974에 에른스트 라이츠에서 스위스 회사인 Wild Heerbrugg AG Switzerland에 흡수합병 당하여 이름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경영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현재 라이카에서 생산중인 디지털사진기는 콤팩트 사진기와 레인지 파인더 사진기로 나뉜다. 라이카는 2006년에 첫 디지털 거리계 연동(RF) 방식 사진기인 Leica M8을 출시했으며, 이후 20104, 35mm필름 풀사이즈 사진기인 Leica M9, 그리고 20133Leica M, Leica M-E, Leica M Monochrom을 출시했다. 콤팩트 사진기로는 2010년 출시한 X1, 2012년 출시한 X2, 2013년 출시한 X Vario가 있으며, 20144월 첫 미러리스 렌즈 교환식 사진기인 라이카 T 타입을 공개했다. 또한 라이카 최초 풀사이즈 콤펙트 사진기 라이카Q를 발표했다. 라이카Q는 주미룩스(SUMMILUX) 28mm f1.7 ASPH 렌즈를 탑재하고 있으며, 최신 편의 사양이 적용된 동급 최고 사양의 사진기다.

 

이후 라이카는 계속해서 레인지파인더 방식의 풀사이즈 사진기 MP와 풀사이즈 렌즈교환 미러리스 방식인 SL, 디지털 645중형사진기 ‘S’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대중용 카메라 시장의 또 다른 선구자인 이스트만코닥(Eastman Kodak Co)은 카메라 사업을 접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때 대단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폴라로이드(Polaroid Corp)도 더 이상 사진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라이카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긴 했으나 수익성 높은 틈새시장을 찾아냈다. 라이카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 타임스퀘어의 키스등을 촬영한 클래식 M 모델을 닮은 네모난 소형 사진기를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오늘날 네모난 소형 사진기는 필름을 쓰는 사진기가 아닌 디지털사진기지만 라이카는 언제나 최고의 사진기를 만들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매그넘 소속 사진가 콘스탄틴 마노스는 라이카가 여전히 어필하는 건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잃지 않으면서 최신 기술과도 보조를 맞추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라이카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로버트 카파, 로버트 프랭크 등 사진계의 거장들 뿐 아니라 영국 여왕으로부터도 사랑받았다. 사진역사학자 나오미 로젠블럼은 라이카가 “20세기 사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1960년대 들어 라이카는 문화 아이콘이 됐다. 소형 빈티지 M 중고는 지금도 수천 달러를 호가하며, 일부 프로 사진가들은 더 크고 성능 좋은 사진기들보다 라이카 사진기를 선호한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2010년 아이폰4라이카의 옛 카메라처럼 아름답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라이카는 여전히 비싸다. 비슷한 일제 사진기와 렌즈보다 보통 두세 배는 더 비싸다. 그럼에도 모든 사진은 라이카를 꿈꾸고 있다. 정말 허망한 로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