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8. 12:11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서울포토클럽
나는 펜탁시안(pentaxian)이다. 지난 30년 간 내가 주로 선택하고 사용한 사진기는 펜탁스였다. 나는 국산 사진기를 쓰지 않는 것이 늘 죄스런 마음이지만 현재 내가 마음 놓고 쓸 만한 국산 사진기는 나와 있지 않다. 내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국내 사진기업체들은 전문가들이 마음 놓고 구입할만한 사진기를 내어 놓지 않고 있다. 한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사진인들이 삼성카메라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대를 다 접은 상태다.
나는 펜탁스를 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갖고 싶은 사진기는 라이카다. 그러니까 ‘라이카파일(Leicaphile)’를 꿈꾸는 ‘펜탁시안(pentaxian)’이다. 내가 라이카를 장만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사치이고 실현 가능하지 않은 꿈같은 얘기지만 내게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아도 실망할 일은 아니다. 내가 비록 라이카를 갖게 된다고 해서 더 좋은 사진을 찍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사치가 내게 당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라이카는 많은 사진인들의 로망(roman)이라고 한다. ‘로망’이라는 말 자체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오직 감성과 무의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욕망 그 자체, 또는 그 대상이다.’의 의미라고 하니 사진인들이 라이카를 갖고 싶은 바람은 라이카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일 것이고 나도 그런 사진인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나는 일제 사진기를 쓰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국산이 아니라면 독일제인 라이카를 갖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처음 사진기로 펜탁스 SLR 형식인 ‘ME-SUPER’를 구입했다. 1980년대엔 일제 사진기 하면 니콘, 캐논, 펜탁스, 미놀타, 올림프스가 유명했다. 당시에 사진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니콘이나 캐논을 선호했지만 나는 펜탁스가 다른 일본 것보다 일본 냄새를 덜 풍겨서 펜탁스를 갖게 된 거였다. 펜탁스는 원래 아사히 펜탁스(Asahi Pentax)였으나 동원산업과 제휴해서 ‘동원 펜탁스’란 이름으로 나왔다. ‘아사히’란 이름은 일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사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어원(語源)은 우리말에서 비롯된 거로 보고 있다.
아사달은 단군왕검께서 도읍은 정한 곳이다. ‘밝은 땅’의 의미라고 한다. 이 밝은 땅에서 살아 온 우리가 배달민족이다. ‘배달’이라는 말은 ‘ᄇᆞᆰᄃᆞᆯ’ 즉 ‘밝은 땅’에서 온 것이다. 아사는 빛, 밝음 등의 뜻을 가진 옛 우리말이다. 펜탁스의 모 회사인 ‘아사히 광학’에서 ‘아사히(旭)’는 아침 해, 빛날 등의 의미를 갖는데 이 말의 어원은 우리나라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 진다.
이름 때문에 펜탁스를 선택했다고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일본이 자랑하는 니콘이나 캐논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다 같은 일본 사진기인 것을 그런 것을 왜 따지느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민족 자존심이 걸린 일로 생각되어 일본이 자랑하는 것들은 절대 쓰지 않으려는 알량한 각오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나는 펜탁스에 나온 사진기는 아주 초창기 것만 빼고는 대부분 손에 넣었었다. 내가 처음 구입했던 펜탁스 사진기는 ME-Super였다. 그 후 프로그램 노출 방식의 '프로그램 A', '슈퍼 A', 기계식인 'MX', 'KX' ‘LX’, 자동초점 방식인 ‘SFXn’, ‘Z-5’, Z-1P, ‘MZ-3’, ‘MZ-S’ 등으로 계속 바꾸어 사용했다. 사진기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 더 고급스런 기종으로 교체하느라 계속 새로 나올 때마다 바꾼 거였다.
나는 35mm 사진기만 펜탁스를 쓴 것이 아니라 120롤필름을 쓰는 중형 사진기도 펜탁스를 썼다. ‘펜탁스 645’와 ‘펜탁스 67’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 보내고 쓰지 않는다.
사진기를 펜탁스를 쓰면 렌즈는 필연적으로 펜탁스를 쓰게 된다. 지금 갖고 있는 렌즈는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많이 펜탁스 렌즈를 가졌던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펜탁스 렌즈를 많이 가졌었다.
필름사진기 시절에 펜탁스 17mm 어안렌즈를 비롯해서 20mm, 24mm, 28mm, 35mm, 50mm, 85mm, 100mm, 120mm, 135mm, 200mm, 300mm 등의 단일 초점렌즈를 K, M, A, F, FA, DA 등의 시리즈로 안 써 본 것이 없다고 할 만큼 거의 다 써봤고, 디지털사진기로 오면서 12-24mm, 16-50mm, 17-70mm, 18-135mm, 55-300mm 등의 DA 줌 렌즈를 사용해봤다.
필름사진기에서 20-35mm, 24-50mm, 24-90mm, 28-80mm, 28-105mm, 35-70mm, 35-105mm, 70-150mm, 70-210mm, 80-200mm 등의 줌렌즈도 다 써봤다. 이들 렌즈를 사면서 들어간 돈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서 쓰다가 더 좋은 게 있다고 하면 가진 것을 팔고, 사고를 몇 백번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사진기를 구입한 것은 1987년인데 내 사진기와 렌즈의 변동 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였다. 1992년 3월 이후부터의 사진기와 렌즈 거래는 모두 기록을 하고 있다.
디지털사진기로 넘어 오면서 펜탁스 K-7, K-5, K-3를 거쳐 현재 가진 기종은 펜탁스 유일한 35풀사이즈인 K-1이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렌즈는 F 28/2.8mm, F 50/1.7mm, F 135/2.8mm, FA 24-90/3.5-4.5mm, F 35-105/4.0-5.6mm가 펜탁스 오리지널 렌즈들이다.
거기다가 펜탁스 사진기에 호완이 되는 탐론(TAMRON) 렌즈로 17/3.5mm, 90/2.5mm, 300/5.6mm, 500/8.0mm, 70-210/3.5mm, 70-300/4.0-5.6mm를 가지고 있다. 나는 시그마(SIGMA) 렌즈나 토키나(TOKINA) 렌즈보다는 탐론 렌즈를 더 선호한다.
사진기와 렌즈를 사고팔면서 처음에는 당연히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줄로 알았다. 내가 산 것을 가지고 나가면 잘해야 50% 정도로 계산하는 것이 사진기점포였다. 그래서 그게 맞는 줄로 알았다가 인터넷 거래를 하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터넷 중고장터를 이용하면 살 때 가격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고 거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산 뒤에 다시 파는 것은 언제나 손해를 가져오기 마련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허망한 욕심을 자제하기 위해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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