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serendipity)

2021. 7. 18. 12:14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서울포토클럽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특히 과학연구의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실패해서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뜻밖의 즐거움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세런디피티(serendipity)''행운'의 다른 말로도 알려져 있다. 영국의 18세기 문필가였던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이 만든 이 단어는 우연히 예기치 않게, 운수 좋게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가리킬 때 쓰인다. 호레이스 월폴은 1754128일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렌딥(스리랑카의 옛이름)의 세 왕자]라는 동화에 나오는 왕자들이 '그들이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항상 우연하면서도 지혜롭게 발견'하는 모습에서 이 단어를 만들었다고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뜻밖의 즐거움’, 그래서 인생은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삶에서 이런 행복한 만남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내게 오랜 시간 가장 큰 즐거움을 준 뜻밖의 만남은 사진과 사진기였다. 나는 사진을 시작하면서 자연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뜻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는 정말 내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국문과 시절에 노강(蘆江) 박노춘 선생님을 모시고 탁본(拓本)을 다니면서부터였다. 탁본을 하기가 힘이 드니까 그걸 사진으로 찍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인데 알고 보니 사진은 탁본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탁본은 세밀한 손재주가 필요한 것임에 비해 사진은 사물을 보는 눈의 예리함과 순간의 직관이 필요한 거였다.

 

사실 탁본은 이미 만들어진 사물을 정밀한 수작업으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인데 비해 사진은 사진기라는 기계적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이 본 사물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거였다. 탁본의 도구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사진기는 매우 비싸고 부대비용이 무척 많이 들어간다. 사진기는 사진을 찍는 단순한 도구지만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겠다는 핑계로 사진기에 엄청 많은 돈을 쏟는다. 나도 그랬다. 사진기에 엄청 낭비한 것은 반성하고 있지만 내가 사진기를 사고 사진을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람들과 만났으며 내 식견을 크게 넓혔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사진과 사진기는 지난 30년 간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사진과 사진기는 내게 세렌디피티라고 생각한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뜻밖의 즐거움말 그대로였다.

 

사진을 찍으면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첫 번째가 찍으러 나갈 때의 기대감이다. 그 두 번째는 찍을 현장에 도착해서 사진기에 렌즈를 장착하고, 파인더 속으로 찍을 물체를 확인하며 셔터를 누를 때의 흥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필름이 현상되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설렘이 그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필름을 쓰지 않고 디지털저장장치를 사용하기 때문에 찍은 사진을 바로 볼 수 있어 필름을 현상할 때까지의 기다림은 없는 셈이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 모니터를 통해 봐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의 기다림을 즐기고 있다.

 

나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하는 즐거움이 있다. 맘에 드는, 꼭 갖고 싶었던 사진기나 렌즈를 어렵게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사진 찍으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흐뭇한 교류가 그것이다. 거기다가 직업이 아닌 취미이기에 오는 여유, 이런 것들이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얻는 또 다른 기쁨과 즐거움이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오랜 시간 논쟁이 되어 왔지만 나는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사진을 찍을 뿐인데 거기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사진 찍는 것이 즐겁다. 내가 찍는 대상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주로 찍는다. 그리고 예쁜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도 내가 찍기 좋아하는 대상이다.

 

사진의 소재 중 가장 일반적인 대상이 사람일 것이다. 천진무구한 아기의 미소, 동심의 세계를 보여주는 어린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어른들, 세월의 흐름을 안고 살아온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은 사진의 영원한 대상이고 본질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소재로 삼는 사진은 아는 사람들 빼고는 거의 찍지 않는다. 그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사진에서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상적이고 슬프고 초라한 사람들뿐인데 나는 그러한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인기 연예인의 얼굴 사진(portrait)이나 달력의 비키니 차림의 미녀를 빼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얼굴들이 대부분인 사람을 찍은 사진은 그들이 사진으로 찍혀서 공개되는 것을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것은 초상권(肖像權)의 문제를 떠나서 사진인 스스로가 아픈 상처를 몰래 찍는 비열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사진은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사진에 찍히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찍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찍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어두운 사진보다는 밝고 아름다운 사진을 더 좋아한다. 이것은 사람의 사진도 마찬가지여서 밝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진은 어둡고 슬픈 사람들의 사진보다 좀 낫게 생각된다. 그래서 내가 굳이 사람을 찍는다면 밝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주로 찍으려고 한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에 도시 사람보다는 자연을 가까이 접할 시간과 기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거기에 관심도 없었고 그것들이 싫어서 밖에 나가기보다 집안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라지만 예전에는 누가 취미를 물으면 책읽기라고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사진기를 손에 잡으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싫어했던 자연 속을 누비게 되고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다. 최남선 님이 그의 명저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말씀했던 것처럼, 이 땅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 애정을 쏟으면서 그것들을 신앙으로 생각하며 그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

 

꼭 사진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약간의 역마살이 끼여 있다고는 하지만 난 좀 심한 편이다.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잔다. 그러니 사진이 내게는 딱 맞고 또 즐거울 수밖에…….

 

사진을 찍으러 자주 나가지만 찍고 돌아와서 보면 마음에 꼭 드는 눈에 확 띄는 사진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나가는 즐거움 찍는 기쁨 설레는 기다림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