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사진기

2021. 7. 25. 18:28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서울포토클럽

 

 

대통령의 사진기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사진과 함께 읽은 대통령 박정희이런 책이 과연 얼마나 팔릴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서점에 나와 있다. 저자는 안병훈’, 출판사는 도서출판 기파랑인데 저자가 출판사의 대표로 되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안병훈 님을 TV를 통해 두 번 보았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어 사진과 함께 읽은 대통령 박정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기에 이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mbn’‘TV조선에서 자리를 마련했던 모양인데 내가 두 번 다 볼 수 있었다.

 

안병훈 님의 얘기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은 사진 마니아이셨다. 사진을 찍기도 좋아하셨고 사진에 찍히기도 좋아하시어 박정히 대통령의 재임시절 사진은 무척 많다고 한다. 나는 사진과 함께 읽은 대통령 박정희는 아직 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사진이 실려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TV 화면을 통해 놀라운 사진을 몇 장 볼 수 있었다.

진해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서 취재기자단들이 웃통을 벗고 박정희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는 사진이 있었다. 대통령께서 반팔 남방을 입으시고 입에 담배를 물고 계신데 취재기자들은 전부 상의를 벗고 있는 장면이다. 대통령과 함께 하는 자리에 옷을 벗고 즐기는 일을 지금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대통령께서 수행원들을 사진 찍는 장면, 대통령께서 경찰학교 운동회에 참석하시어 학생과 손을 잡고 달리기하는 장면, 대통령께서 시골집의 허름한 옷을 입은 형님께 담배에 불을 부쳐주는 장면…….

 

많은 사진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이면(異面)을 보여주어 놀랐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사진을 잘 찍으시고 사진기에도 관심이 많으셨다는 얘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나도 사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누가 사진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관심이 가는 거는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기를 보기 위하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에 갔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도로가에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있다. 2012221일에 개장했는데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기념관이 아니고 왜 도서관이라고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가 둘러 본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관한 전시실이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最貧國) 수준의 우리나라를 경제개발계획, 새마을운동과 수출증대산업 등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박정희대통령의 기념관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전시실은 박대통령의 유품을 보여주는 곳인데 거기에서 나는 박대통령께서 사용하셨던 사진기와 쌍안경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박대통령께서 쓰시던 사진기는 135롤필름 사진기로 니콘 F, 니코마트, 모델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니콘(FM 혹은 FE 중 하나일 듯)과 케이스만 보이는 캐논 콤팩트사진기 그리고 120롤필름 사진기로는 마미야 C330이 있고 120롤필름 스테레오 사진기인 듀플렉스 수퍼(Duplex Super) 120이 있었다.

니콘 F1959년 니콘 최초의 SLR 사진기로 필름 사진기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니콘의 전문가용 사진기이다. 특히 월남전에서 많은 종군기자들이 사용하여 그 이름을 날렸다. 40여 년간 약 100만대가 넘게 팔린 니콘의 명기로 알려져 있다. 이 사진기를 박 대통령께서 직접 구입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니콘 F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사진기를 잘 아는 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다.

니코마트와 니콘 FE는 니콘 F의 보조 사진기로 쓰시지 않았을까 싶다. 니콘에서 정면에 모델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사진기는 FMFE가 유이한데 니콘 F와 니코마트가 다 기계식이어서 이름이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 사진기는 FE가 아닐까 싶다. 그게 FM 기종이라면 셋 다 기계식이라 굳이 필요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기는 세 대가 다 50mm 표준 렌즈를 장착한 걸로 보여 다른 교환렌즈는 구비하지 않으셨던 거로 추정된다. 주변에서 사진기에 대해 잘 아는 분이 계셨더라면 광각 계열과 망원 계열의 교환 렌즈까지 갖추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똑 같은 화각의 렌즈가 세 개씩이나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미야 C330도 렌즈가 교환되는 120롤필름 사진기이다. 이안반사(TLR) 사진기는 일안반사(SLR) 사진기보다 편리한 점도 있지만 렌즈 교환은 구조상으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럼에도 렌즈가 교환되는 모델이 두세 개 있는데 그 중 상당히 진보된 게 C330이었다. 마미야 C33055mm 광각 렌즈에서 250mm 망원 렌즈까지 일곱 개의 렌즈를 교환해서 쓸 수 있는 전문가용의 고급 사진기였다.

박 대통령께서 가지셨던 사진기에 장착된 렌즈는 105mm/f3.5였다. 6×6판에서 105mm 라면 인물 사진에 관심을 두고 구입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진기를 구입할 때 보통 따라오는 렌즈가 80mm/f2.8인데 다른 렌즈가 없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인물 사진을 염두에 두고 구입하시지 않았나 싶다.

 

스테레오사진기는 입체 사진을 찍는 사진기이다. 사진기 정면에 사람의 눈처럼 양쪽에 렌즈가 장착되어 있다. 1800년대 후반기부터 유행하다가 1950년대 이후에는 별로 쓰이지 않은 사진기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도 스테레오사진기는 써 본 일이 없다. 이런 사진기를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진인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놀랍게도 박 대통령께서는 이탈리아에서 나온 듀플렉스 수퍼 120 사진기를 가지고 계셨다.

듀플렉스 수퍼 120 사진기는 1950년에 이탈리아의 ISO사에서 나온 듀플렉스 120 사진기의 고급 버전으로 120롤필름에 스테레오 리얼리스트의 화면 크기로 쌍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기다. 초점 조절이 되는 이리아(Iriar) 35mm/f3.5렌즈에 B, 1/10 ~ 1/200초까지 여섯 개의 셔터 속도를 가졌다. 이 사진기는 스테레오 촬영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레버 조작으로 싱글 촬영도 가능했다.

 

유품전시관에서는 볼 수가 없었지만 박 대통령께서는 폴라로이드사진기도 가지고 계셨던 걸로 알고 있다. 대통령께서 육영수 여사와 휴가를 가셨을 때에 손에 폴라로이드사진기를 들고 계신 모습이 사진으로 나와 있어 볼 수가 있다. 대통령께서 사진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 중에는 니콘 SLR사진기가 아닌 RF 방식의 콤팩트사진기가 보이는데 이 사진기가 캐논이지 않을까 싶다. 유품전시관에 캐논 케이스에 들어 있는 사진기가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 있다.

 

박정희대통령에게 라이카사진기가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박정희대통령은 196411월에 서독을 방문했었다. 서독에 파견한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방문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독일정부로부터 차관을 얻기 위해 가셨다고 한다. 독일을 방문하는 국가원수들에게는 독일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라이카사진기를 선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니 그쪽 정부에서 박정희대통령에게 라이카사진기 하나 선물하지 않았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그들에게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을 것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물론 그 당시의 라이카사진기는 무척 비쌌다. 서울 중심부를 벗어난 곳에서 기와집 한 채를 살 정도의 가격이라고 했으니 당시에 한국에서 라이카사진기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부자는 넘었을 거였다. 그래도 대통령인데 독일까지 다녀오면서 라이카사진기 한 대 안 들여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나라가 가난하다해도 최고의 사치를 누리는 대통령이나 소위 민족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건 외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남에게 보여주기 아까운 귀금속이나 명품을 바리바리 소장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70년대 우리나라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어느 장군의 집에는 세계 각 국의 특산품이 없는 게 없어서 그것들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도 못하는 게 태반이라고 들었다.

 

물론 대통령께서 그런 거에 욕심을 낸다면 더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만 사진기를 좋아하는 대통령께서 라이카사진기나 콘탁스사진기, 혹은 핫셀블라드나 롤라이플렉스가 없다는 거는 충격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거다. 사진기를 전혀 모르는 분이시라면 어느 게 더 좋고 못하고에 관해서 관심도 없겠지만 사진기에 관심이 있고 아는 분이라면 누구나 독일제 사진기를 갖고자하는 게 바람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께서 독일제 사진기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분의 검소한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유품 전시관에서 보면 박 대통령께서 쓰셨던 쌍안경이 세 개나 된다. 하나는 차이스 이콘이고 둘은 모델 이름과 제조업체를 알 수가 없는 조금 부피가 큰 거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박 대통령께서 광학기기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께서 취임한 뒤에 바로 국토개발을 시작했으니 여러 곳을 둘러보기 위해 쌍안경이 필요했을 거였다.

쌍안경 역시 독일제를 최고로 친다. 칼 차이스와 라이카, 스와로브스키가 최고의 쌍안경으로 이름이 높은데 박 대통령께서 가지셨던 칼 차이스 쌍안경은 고급은 아니고 일반 보급기종으로 보였다. 다른 두 개는 쌍안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어 보였는데 유품 목록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어느 제품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19933월에 방한했던 독일의 헬뮤트 콜 수상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라이카사진기를 선물했대서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사진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신경을 쓸 일도 아니지만 사진인들은 대통령이 선물로 받았다는 모델에 대해서 궁금해할만 했다. 라이카사진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레인지파인더 형식인 M시리즈와 일안반사 형식인 R시리즈가 있는데 R보다는 M을 더 고급으로 얘기한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받은 선물은 유감스럽게도 M모델이 아닌 R시리즈의 R-E사진기였다.

 

라이카사진기를 독일 수상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거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얘기이지만 그게 M이 아니고 R이었다는 것은 역시 우리나라 대통령을 조금 우습게 본 것이 아닌가 싶다. 라이카사진기 선물이 대통령의 품격과 관계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라이카 MR의 품격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R을 받은 김영삼 대통령의 품격이 M을 받은 다른 나라 대통령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