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뚫고...

2005. 5. 6. 17:19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오늘은 우리 학교 소풍가는 날입니다. 학사 일정이 이미 정해졌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때문에 많이 망설이다가 그냥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그냥 강행을 강력히 원했습니다. 소풍을 가는 날, 부담임들은 하루 쉴 수 있는데 쉬는 날을 이용해 사진촬영을 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20년전에 소풍을 처음 따라 갔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2학년 세 반이 함께 가서 담임교사 세 분과 부담임 교사 세 분이 가는데 저도 끼었습니다. 가서 보니 고급 양주가 20여 병이고, 국산 양주는 아예 세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캔 맥주가 흔할 때가 아닌데 미제 캔 맥주가 몇 박스가 와 있고, 생 고기, 익힌 고기, 양념한 고기, 켄터키 치킨에 도시락, 마른 안주가 정말 차로 몇 차가 되게 쌓아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다닐 때에 2년 반장을 했는데 선생님 도시락 때문에 얼마나 부담이 되었던지... 그 때는 선생님께 맥주 한 병 사드릴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교사가 되어 서울서 보니 그렇게 천양지차였습니다... 정말 시골 쥐와 서울 쥐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옛날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애들이 자기 도시락도 안 가져오는데 무슨 선생님 도시락을 가져오겠습니까? 술 선물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데 더 황당한 것은 어머니가 보낸 술을 즈덜끼리 다른 곳에서 마신다는 것입니다. 보낸 줄 알아야 고맙다는 인사라도 할 것인데 받지 않았으니 전화하기도 그럴 겁니다. 그러면 술을 보낸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애 담임에게 술을 선물했는데 전화도 없더라는 얘기를 하고 다닌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부담임 교사는 따라가지 않는 것이 덜 민망한 일로 되서 저도 갈 생각을 하지 않했고, 어제 밤에 빗속에 경북 청송에 있는 주산지로 촬영을 갔습니다.

 

집에서 아홉 시 반에 나갔는데 주왕산 입구에 닿으니 한 시 반이었습니다. 서울서 둘이 갔고, 천안에서 한 사람이 와 합류하여, 여섯 시에 일어나 주산지에 갔더니 계속 이슬비가 내려 제대로 찍지도 못했습니다. 안동을 거쳐 풍기 부석사에 갔는데 거기도 비가 와서 제대로 찍지는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눈으로 본 우리 산하는 정말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며, 연속 정말 이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여유있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다시는 담임을 하지 않고 이렇게 정년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흐뭇한 하루를 보낸 영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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