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12. 15:55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해마다 일월이 되면 연례행사로 다니는 것이 일출 촬영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들도 일출을 보겠다고 동해안으로, 동해안으로 몰려서 12우러 31일에는 동해안 가는 길이 다 막힌다는 것은 벌써부터 알고 있는 사항이라 그런 사람들 하고 같이 돌아 다니는 것은 얘기가 안 되지만 저도 해마다 한두 차례는 일출을 찍으러 동해로 갔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재 작년부터 일출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제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가 왔습니다.
동해로 가려면 아침에 출발해서 보기는 무리라 늘 무박 2일로 갔는데 서해로 가면 아침에 출발을 해도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 되었습니다. 요즘 해 뜨는 시간이 보통 7시 50분 전후라고 하는데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 있다기에 아침에 출발하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당진 왜목항과 서천 마량포구, 그리고 다른 한 곳 등 해서 세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진은 거리 상으로는 가깝지만 해가 뜨는 주변이 지저분하여 사진적 소재로는 조금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서 서천 마량포구를 생각했습니다.
서천에 가면 마량포구에서 해돋이를 찍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강 하구언의 철새, 영화 공동경비구역 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이 있다고 들었기에 일출이 신통치 않아도 뭔가 찍을 거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쪽으로 잡았습니다.
처음에 생각은 여러 사람이 가면 관광버스를 대절하려 했는데 경비를 5만원으로 책정했더니 너무 비싸서 그런지 희망자가 너무 적어 스타렉스 9인승에 아홉 명이 가는 것으로 했습니다. 가는 인원이 20명 정도만 되면 하루 코스에 3만원 회비로 대형버스를 빌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저녁까지 먹고 올 생각으로 회비를 높게 책정했던 것입니다. 이왕 나간 김에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가서 해넘이까지 찍고 오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는데 그럴 경우 저녁 식사를 해야하고, 지방에 가면 서울 같지 않아서 그냥 간단하게 밥을 먹을 곳이 없어 해물 매운탕이라도 시켜면 한 사람에게 1만원 정도가 더 소요되서 회비를 조금 높게 책정했는데 다들 부담이 간 것 같습니다.
종로 3가 세운상가 앞에서 5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조금 지체가 되었고, 중간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조금 더 지체가 되었습니다. 9인승에 아홉 명이 타니까 많이 불편했지만 한가롭게 불평이나 털어 놓을 여유도 없이 무섭게 달렸습니다. 저는토요일 밤에 술을 많이 마셔 몸이 정말 힘이 들었지만 뭐라 얘기할 처지도 아니고 그냥 앞 자리에 앉아 도로에 장치된 사진기만 확인하면서 시속 160km의 속도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다른 촬영 같지 않고 일출은 해가 뜬 뒤에 도착을 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 해가 뜨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자칫하다가 그 시간을 놓칠까봐 정신 없이 달려간 것입니다.
다행이 한번도 찍히지 않고 목적지까지 도착했는데 해 뜨는 시간보다 15분 정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나간 뒤에도 국도에 두 곳이나 사진기가 있었는데 마침 먼저 도착한 회원이 휴대폰으로 알려주어 걸리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량포구에 도착해서 보니 사진을 찍는 사람도 수십 명이 넘었지만 일반 관광객들도 버스로 와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파제 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기 삼각대를 세울 공간도 없을 정도여서 위치 선정에 고심을 했습니다. 저는 300mm f/4.5 렌즈와 350mm/5.6 반사 렌즈를 망원으로 가져 갔는데 거기서 렌즈를 장착하려고 보니 반사 렌즈는 마운트가 라이카였습니다. 렌즈를 챙길 때 아답톨을 바꿔서 장착해야 했는데 깜박하고 그냥 렌즈만 가져 온 것입니다. 어제 많이 마신 술탓을 했지만 이런 일이 요즘 너무 잦은 것 같아서 아찔했습니다.
350mm나 300mm나 차이가 날 것을 별로 없지만 반사 렌즈와 일반 렌즈는 그 묘사력이 다르기 때문에 아쉬움이 컷습니다. 구름이 얕게 깔려 있어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바다에서 그물을 걷는 배들이 있어 해만 제대로 떠 준다면 아주 근사한 모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기다렸습니다. 36컷 필름이 들어 있었는데 16컷은 이미 찍은 것이라 20컷 정도의 여유가 있어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출 때에 흥분하면 필름만 허비한다는 교훈을 되씹으며 주의 깊게 보고 있는데 드디어 빨간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떠오른다고 소리를 치면서 한 컷, 한 컷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습니다. 해를 찍은 지가 오래 되어 갑자기 감이 떠오르지 않아 브라켓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심했습니다. 남들이 부라켓팅을 이야기하면 필름 낭비라고 얘기했던 제가 감을 잊어 버려 부라켓팅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한 컷, 한 컷 찍는 동안 해는 점점 떠 올랐고,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된 해돋이를 보았다는 만족감이 흘렀습니다. 저 뿐이 아니라 그 곳에 온 사람들은 아마 다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동해안에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마음에 드는 해를 별로 보지 못했는데 설마하고 온 서해안에서 그런 뿌듯한 해돋이를 보았다는 것이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해를 찍고 나니까 같이 가신 분들이 다른 것은 더 관심을 두지 않아 해넘이는 보지 못하고 올라왔습니다. 새해안에 처음 왔다는 분이 동해안만 좋은 줄 알았더니 서해가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 줄 몰랐다고 연신 감탄을 했습니다. 필름을 현상해 보아야 하겠지만 아주 흐뭇한 해돋이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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