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

2003. 12. 27. 11:47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이제 2003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지난 1년 간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더 좋은 장비를 갖추기 위해서 또 많은 돈을 없앴습니다. 사진 때문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들어가는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연간 수백 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특히 충동구매나 불필요한 것을 샀다가 파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지출이 꽤 됩니다.


작년 가을에 린호프69를 괜히 샀었습니다. 가지고 싶기는 린호프45였는데 그게 여의치 않아서 그냥 69로 샀던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보이틀랜드에서 나온 컬러스코파 렌즈가 장착되어 있다고 샀고, 거기다가 65/8.0 수퍼앙구론 렌즈를 구입하고 노출계까지 사느라 250만원의 돈이 들어갔습니다. 그냥 욕심을 안 내고 105/3.5 표준렌즈로 사진이나 찍었으면 좋았을 것을, 수퍼앙구론 렌즈를 구입했더니 너무 어두워 파인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 떨어져서 그 사진기 자체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몽땅 처분한 것이 올 4월 8일입니다. 제가 받은 돈이 207만원이니 그래도 크게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사고 팔고 하는 동안 머리를 쓴 것을 생각하면 다시는 할 짓이 아닙니다.


몇 년간 잘 썼던 캐논 T90사진기와 렌즈를 4월에 펜탁스클럽 장터에 내어놓아 5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조금 생각했더라면 10만원은 더 받을 수 있는 것을 제가 살 때 준 돈보다 더 싸게 내어놓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던 터라 싸게 팔고도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그것을 팔 때 끼워 주겠다고 한 라이카R 마운트 어댑터를 제가 전해주지 않았는데 그것을 달라는 메일을 여러 통 받았습니다. 사진기를 사러 왔던 사람이 아주 흡족해 하면서 사갔으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고, 또 너무 싸게 팔았다는(산 사람과 같이 온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고, 거기에 그냥 끼워준 접사링이 10만원 정도 하는 캐논 정품이라 그 정도면 되었지 않나 싶어) 아쉬움도 있어. 다시 보내기가 싫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껄꺼롭게 메일을 주고받았고, 약간의 감정 문제까지 겹쳐 끝내 주지 않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캐논 T90을 내어놓고 보니 또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구하기도 힘들 거라는 생각도 들고, 모터드라이브가 내장되어 아주 편리했던 생각이 나서 다시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보에서 다시 T90을 40만원에 구입을 했고, 20-35/3.5 L렌즈를 65만원, TL300플래시를 15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개의 탐론렌즈에 PD아답톨만 구입하여 장착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렌즈는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캐논 L렌즈의 성능을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지만 편리성 때문에 다시 구입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져다 놓으니까 쓸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135필름을 쓸 때는 주로 라이카를 쓰게 되고, 풍경 위주의 사진을 찍을 때는 67을 쓰게 되니 사진기를 사서 필름을 한 롤도 찍을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들 디지털사진기를 사느라 필름사진기의 가격이 너무 떨어진다고 걱정을 하길래 다시 이것을 처분하고 싶었습니다. 캐논메뉴얼클럽에 들어갔더니 거기는 다행히도 T90이나 20-35/3.5L렌즈, TL300플래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렌즈와 플래시는 살 때의 가격보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고 팔았는데 T90사진기는 나가지 않아서 가보에 30만원에 내어놓았습니다.


렌즈와 플래시는 손해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진기에서 다시 10만원은 손해를 본 것입니다. 이것을 팔고 나니까 약간의 돈이 마련되어 100여 만원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 것이 호스만45FA대형사진기였습니다.


충무로에 있는 대진월드에서 150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저렴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것을 사려고 마음을 굳히고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내려보려고 여러 번 드나들면서 흥정을 해봤는데 그 가격에서 조금도 빼주질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사진기를 살 때 조언을 구하는 최구조 님과 상의를 했더니, 굳이 호스만을 쓸려고 하지말고 가격이 더 저렴한 도요필드45나 위스타SP45 등을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언젠가 포토빌 벼룩시장에서 보았던 위스타SP가 생각나 검색을 하고 전화를 했더니 아직 안 팔렸고, 표준 150/5.6 아포짐마를 장착해서 70만원이라고 하길래 당장 만나기로 하고 보았던 조금 낡았지만 사용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여 그 사진기를 샀습니다. 가져와서 작동을 해보니 이 SP45가 호스만45FA보다 기능면에서 크게 앞서 있었습니다. 다만 무게가 900g이 더 무겁고, 부피가 조금 더 크다는 것 외는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사진기를 살 때, 45홀더가 두 장 따라왔고, 집에 있던 두 개와 월드에서 1만원을 주고 하나를 더 사서 다섯 개의 홀더를 만들었고, 가보에서 미놀타 스폿노출계를 27만원에 가져와 이 사진기를 사느라 들어간 돈은 총 98만원입니다. 그리고 암백을 2만원 주고 샀으니 100만원이 든 셈입니다.
슬라이드를 찍기 전에 먼저 네거 필름으로 시험을 하려고 열 장 한 세트를 사다가 여섯 장을 찍어봤습니다. 거리연동식도 아니고 줌파인더도 없지만 사진이 흡족하게 나와서 흐뭇했습니다. 오랫동안 꿈 꿔 왔던 린호프45의 꿈을 접었고 이젠 이 사진기로 찍을 것입니다.


남대문 남영카메라에 아주 깨끗한 라이카 SL2가 90만원에 나와서 한동안 팔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98%라고 하는데 제가 가진 것보다 훨씬 깨끗한 것이 아주 욕심이 났습니다. 카메라점포를 믿느냐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남영카메라도 믿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98%의 SL2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제가 전에 구입한 SL2는 노출 문제로 한번 손을 봤는데 뒷마무리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남영에서 그 사진기를 87만원에 구입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은 그것을 샀던 종로 4가 대광카메라에 가서 R7과 교환을 했습니다. 거기서 살 때는 바디 가격이 130만원이었는데 R7가격이 90만원 정도 하는 것을 그냥 교환을 했으니 무려 40만원을 손해본 것입니다. 가보 같으면 적어도 20만원 이상은 손해보게 하지 않았을 것인데 역시 장사는 장사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오래된 기기를 두 개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신형인 R7로 바꾸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꾼 것인데 이제 거기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것말고도 사고 팔고 하면서 나가고 들어온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나가는 이런 일은 이제 정말 그만두고 싶은데 새해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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