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난한 생각

2003. 12. 18. 12:50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덧없이 시간만 흐르는 것 같아 심난합니다.
지난 11월 셋 째 주 일요일에 촬영을 나가고는 이렇다할 촬영 한번 못 나가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요일마다 결혼식이나 모임이 있어 멀리 나갈 수도 없었지만 그냥 여러 휴일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는 것이 찜찜합니다.


한동안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디지털사진기를 검색하느라 정신 없이 보냈지만 요즘은 생각을 접어서인지 마음이 무척 홀가분합니다. 여러 지인들이 충고하고 걱정해주시어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제가 디지털사진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그냥 아무데서나 꺼내어 쉽게 찍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늘 가방에 사진기를 넣어서 가지고 다니지만 그것을 꺼내어 렌즈를 장착하고 플래시를 써 가며 차안에서 찍는 것이 조금 그래 보여 그냥 손쉽게 쓸 수 있는 것을 하나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디지털사진기에 대한 마음을 접고 나서, 야후경매에서 미놀타콤팩트 사진기를 하나 낙찰 받았습니다. 28-70mm줌 렌즈가 장착된 것이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중국제였고, 렌즈 밝기가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f/10이 넘어갈 것 같았습니다. 광각에서 중망원 까지 망라되게 나온 줌렌즈 콤팩트사진기들은 대부분 최대구경이 f/10이 넘어갑니다. 그래서 자동카메라용 필름이라는 것들이 감도 200이나 400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샀던 것입니다.


한번 보고는 그냥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친구는 승용차 안에 비치해 둘 똑딱이 사진기를 찾고 있었는데 그 얘길 듣고서 내어주었습니다. 제가 찾는 것은 그래도 국산이나 일제로 28-70mm 정도의 줌 렌즈가 달린 것으로 f/5.6이상은 넘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저의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늘 내 마음을 충족시킬 완벽한 사진기는 없다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가는 것은 제가 어리석은 탓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들이 그런 것을 바라면 잘못된 것이라고 알면서도 저 스스로는 왜 잘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SMC-A 50/1.2렌즈를 펜탁스클럽 장터에 내어놓았더니 짧은 시간 내에 나갔습니다. 그 렌즈는 정말 구하기 힘든 렌즈였는데 집에 놔두고 전혀 쓸 일이 없기에 한번 내어놓아 본 것입니다. 일본에서 신품이 7만엔을 한다고 하고, 중고도 4만엔에서 5만엔 정도 한다니까 꽤 비싸게 거래되는 렌즈임에는 틀림없지만 쓰지 않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25만원에 내어놓았더니 바로 팔렸습니다. 그 렌즈가 2003년도에 마지막으로 팔아버린 렌즈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팔 것도, 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마음이 언제 또 바뀔지는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종린이 형님이 주신 펜탁스LX는 많이 낡았지만 놀랍게도 후기형이었습니다. 피사계심도 보기와 미러업 연결장치가 문제가 있지만 손을 보면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펜탁스 기기로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오히려 LX보다도 K2DMD입니다. 펜탁스클럽 장터에 K2DMD와 그 모터드라이브가 나왔었지만 저는 모터드라이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진기가 있으니 모터드라이브까지 갖춘다면 그런 대로 좋은 세트가 될 것 같은데 평소에 모터드라이브를 안 좋아하다 보니 사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진기를 꼭 필요한 것만 남겨 두고 다 정리한다고 벼른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닌데 아직도 여러 개가 남아 있어 또 팔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펜탁스 것만 SLR이 4대인데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보니 내어놓을 수가 없다는 생각과 가지고만 있는 것, 더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정리하자는 생각, 이 두 생각 중에서 고심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입해서 금방 팔아버린 것도 있지만 2003년도에 제 손을 떠난 사진기와 렌즈가 30여 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살 때보다 팔 때가 조금이라도 싸야하니까 샀다가 그냥 팔아도 항상 손해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늘 머릿속에는 더 좋은 사진기를 갖고 싶은 욕망뿐이니 이게 대체 어디서 오는 병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조금 들어오면 그것으로 필름을 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진기나 렌즈 쪽으로 마음이 가니 이렇게 무서운 중독도 드물 것입니다. 장비병이라고 얘기했더니 어떤 사람이 듣기 좋으라고 학구열이라고도 합니다. 이 병은 떠나는 해와 더불어 가버리고 새해에는 정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