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요리사의 죽음

2002. 7. 21. 18:02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요즘은 복요리가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만큼 어디 가나 복집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제 고향에서는 지금 같은 복어 요리는 상상도 못하고 복어라고 하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제 집안 할아버지께서 복을 드시고 들아가셨다는데 한분이 아니라 같이 드신 세 분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는 복을 그냥 먹지 못하고 바짝 말려서 두었다가 요리하기 전에 물에 하루 쯤 담가 놓았다가 끓여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위험하다고 주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위험하면서도 그 맛은 기가 막혀 사람들을 유혹했나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 복어가 요리로 등장한 것은 일제 때 부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먹지도 않던 복어가 고급 요리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복어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그냥 먹었다가 세상을 뜬 사람의 수가 부지기수이며, 간혹 병마로 시달리던 사람들이 자살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어를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복어는 맛이 기가 막히게 좋지만 그 피 속에 치명적인 독이 있어 피를 빼지 않고 먹으면 100% 죽는다고 할 만큼 독성이 강하답니다. 그리고 음식점에서 버린 복어알을 동태 알로 잘못 알고 먹었다가 죽은 사람들 이야기는 제가 어릴 때 라디오 뉴스에서 자주 듣던 얘기였습니다.
복어 요리는 전문가가 합니다. 복어의 피를 얼만큼 뺄 것인가가 관건인데,피를 많이 빼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맛이 적어지고 피를 덜 뺄수록 맛이 좋지만 위험이 따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류 요리사라고 하면 사람이 죽지 않을 만큼의 독만 있도록 해야하는데 이것이 그리 쉽지가 않겠지요. 그래서 점점 피를 덜 빼면 요리사의 명성은 올라가는데 그러다가 십중 팔구는 죽음으로 간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치사량을 넘기는 것이지요...
오늘 김제에 다녀왔습니다.
청하산에 있는 청운사의 하소 백련이 한참이라길래 지난 주 부터 가고자 하다가 못 가고는 오늘 아침에서 떠난 것입니다. 어제 저녁 뉴스에서 남부 지방에 호우주의보가 내렸다고 하고, 비가 많이 온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가보자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어서 산이라고 부르기는 좀 뭐하지만 청운사의 스님이 가꾸었다는 백련이 아주 좋았습니다. 천안 부근에 있는 인치사에도 스님이 가꾸어 산 위에 백련이 있는데 여기는 남쪽이라 비닐 하우스 없이도 연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서울 세운상가 앞에서 5시 30분에 출발했는데 거기 도착하니 7시 40분이었습니다. 우린 넷이 갔는데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오대산에 가서 찍다 남은 필름 여남은 컷 하고, 오늘 새로 넣은 36컷 필름을 다 찍어서 50컷 가까이 찍은 것 같습니다.
연이 보기에 좋다고 하나 사진을 찍으면 보는 것만큼 나오지 않습니다. 연꽃과 연잎이 넓고 큰 데다가 잎이 녹색에 가까운 칙칙한 빛이어서 살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PL필터를 끼우고 돌려봐도 별 효과가 없음이 눈에 보입니다. 다들 부지런히 찍고들 있던데 아마 현상해보면 생각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래서는 안되는데 저는 사진찍는 현장에 가면 남들이 찍는 모습을 눈여겨 보게 됩니다. 사진기, 렌즈, 찍는 모습, 자기들 끼리 얘기하는 내용... 다 신경을 쓸 일이 아닌데도 자꾸 그런 쪽에 관심을 갖게 되서 순간 순간 보고 듣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이 앞에서 얘기한 복요리사의 죽음입니다.
더 좋은 사진기, 더 좋은 렌즈를 가지는 것이 대부분 소망이던데 그것을 다 갖추면 더 이상 장비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까요? 아무리 맘에 드는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더 이상 더 좋은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을 까요? 아마 죽을 때 까지 버리지 못할 병일 것입니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최신형 자동 초점 사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반사식 노출계를 목에 건 사진인들입니다. 요즘 최신형 사진기에 장착된 반사식 노출계는 별도의 노출계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성능이 뛰어난데 굳이 손에 반사식 노출계를 들고 잴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노출계 없이도 노출계가 장착되지 않은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사진인은 다시 쳐다보지만,노출계가 장착된 사진기 들고 다른 노출계로 노출을 재는 사진인을 보면 연민의 마음이 생깁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은 모든 사진인의 소망이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요리사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면 아니 한것만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아마 다시 한번 김제로 갈 것 같습니다. 우리 서울클럽 8월 정기 촬영을 전주 덕진공원의 연꽃으로 잡았는데 이왕이면 김제에 들렀다가 전주로 가자고 얘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과유블급이라고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한 것만도 못하다고 했는데 욕심은 왜 끝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