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과 외공

2002. 7. 9. 21:03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진을 찍는데도 내공과 외공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무협지를 즐겨 읽어서 동네 책방에 읽지 않은 무협지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다 읽었다고 한다면 과장이겠지만 몇몇 작가의 것은 거의 다 읽었다고 자신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와룡생, 김용, 운중악 등의 중국 작가와 용대운, 금강, 진산, 고명윤 등 한국 작가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작가가 와룡생과 용대운입니다.
외공이 뛰어난 고수는 동네 수준의 무사이고 내공이 뛰어난 고수가 진정 군림천하할 수 있다는 것은 무협지의 기본입니다. 그 내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년간을 고행으로 닦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수 십년을 벌기 위해서 천년 묵은 인삼이나, 만년 설삼, 하수오, 두꺼비의 내단들이 나오고, 그 내공이 이루어진 다음에 선대의 기인이 남긴 명검과 이름있는 도를 가지고 역시 기인이 남긴 검법이나 도법으로 고수가 됩니다.
그런 고수들은 약관의 나이에 천하를 제패하고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무협지의 기본 틀입니다.
무협지를 읽으면서 그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며, 그렇게 될 수 있는 무공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 대부분 독자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아마 사진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가진, 좋은 사진을 찍는 좋은 사진기만 가지면, 나도 그렇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좋은 사진기를 갖고자 하는 것이 모든 사진인들의 꿈일 것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좋은 사진기가 대체 어느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누구다 다 자기가 쓰는 사진기가 제일 좋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사진기를 가지고 찍어도 좋은 사진이 안 나오니 말입니다. 누구는 니콘이 좋다고 말하고, 누구는 라이카가 좋다고 말하고, 누구는 핫셀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사진기를 사서 찍으면 좋은 사진이 나오던가요?
지난 일요일에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 있는 자생 식물원에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 저도 오랜 만에 가는 서울포토클럽 정기 촬영이라서 라이카 렌즈와 라이카 마운트로 개조한 펜탁스 LX 사진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24mm, 35-70mm, 100mm Macro, 180mm, 300mm 반사, 500mm 반사 등 해서 여섯 개의 렌즈를 챙겼더니 한 짐이 되었고, 삼각대를 둘러메니 그것도 큰 짐이었습니다.
식물원에 도착하니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간신히 온실로 들어갔는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많은 렌즈를 가지고 온실에서나 찍자니 참 아니어서 밖으로 나가봤습니다. LX사진기가 방수 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렌즈도 방수가 되는 것이 아니어서 속수무책이라 몇 컷만 찍고는 다시 온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밖에 나간 것은 저 뿐이고 다들 사진기가 비에 젖을까봐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모습들이 우스웠지만 어쩌겠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오랜만에 나온 회원들이 자기 사진기 조작 방법을 다 잊어버려 여기에 묻고 저기에 묻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진기의 기본 작동도 숙지하지 못하고, 필름이 들어 있는지도 몰라서 작동이 안되는 것을 고장이 났다고 생각하고, 전지가 없어서 안되는 것을 사진기 탓을 하고...
오래 기다리자니 배가 고퍼서 밖으로 나왔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상원사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돌아나와 진부에 있는 부일식당에서 산채 정식으로 아침겸 점심을 때웠습니다.
부일식당은 산채 정식으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자리가 없어 밖에서 한동안 서 있어야 했습니다. 진부에 산채 정식을 하는 곳이 어디 한두 집이겠습니까만 늘 부일식당만 붐빕니다. 오대산 아래에 있는 식당들이야 어디나 다 같은 산채를 쓸 것이고, 오대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밥을 짓고 나물을 무칠 것인데 왜 맛이 다 다를까요?
그것이 바로 외공과 내공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똑 같은 재료로 만든 나물이 어떤 집은 더 맛이 있고, 어떤 집은 그만 못한 것은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솜씨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린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사진에서는 좋은 사진기 타령만 하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내공 부족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내공 닦는 일에 더 노력해서 사진기 타령은 남의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