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관한 ? 가지 진실

2002. 7. 1. 16:21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저는 코니카 필름을 주로 씁니다.
그 첫 이유와 둘 째 이유가 같은데 그것은 가격이 싸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진인들의 믿음 가운데 하나가 필름에 관한 편견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미국사람들은 90% 이상 코닥필름을 씁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99% 이상 코닥필름을 씁니다. 미국에서 나온 잡지나 사진서적에 코닥필름이 아닌 것으로 찍은 사진은 없다고 단정합니다. 그것은 코닥필름이 다른 필름보다 더 나아서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그냥 필름하면 자연스럽게 코닥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은 70% 이상이 후지필름을 쓴다고 합니다. 나머지 30%가 코닥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나머지 중의 20%는 일본제 필름이고 다른 10%가 코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전문가 중의 70% 정도는 후지필름을 쓰고 30%는 코닥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유럽사람들은 대부분 아그파필름을 쓴다고 합니다. 보통사람들이 즐겨쓰는 칼라필름은 아그파지만 전문가들은 코닥입니다.
필름에 대해서 코닥이 좋으니 후지가 좋으니 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곧잘 논의되는 논쟁 중의 하나입니다.
저도 사진을 시작하고 오랫 동안 코닥을 써 왔습니다. 코닥필름이 어디가 어떻게 좋아서가 아니라 사진기는 일제를 쓰니까 필름만이라도 미제를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필름 값도 만만치 않아서 요즘은 주로 코니카필름을 씁니다.
월드포토에서 코니카 컬러 네가필름 36컷 한롤에 1700원하는데 후지는 1800원 코닥은 2000원이 넘습니다. 게다가 조금 고급 필름을 쓰면 2300원, 2500원으로 올라갑니다.
슬라이드필름은 후지를 써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코닥 E100S 36컷 한롤에 7500원, 코니카 슬라이드 36컷 한롤에 3000원합니다.
거의 반 값이면 코니카를 쓰는데 굳이 코닥을 쓸 필요가 없어서 요즘은 전부 코니카를 씁니다. 한 때 렌즈값 아까운 줄은 알았어도 필름값 무서운 줄 몰랐는데 요즘은 이렇게 변한 제 모습이 조금은 우울합니다.
필름이 사진을 좌우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진은 사진기와 렌즈 필름이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진인들이 의외로 많지만 그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기와 렌즈는 물리학으로 얘기해야 되고, 필름은 화학으로 얘기해야 되는데 이렇게 되면 전문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저도 깊이 있게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만 필름은 그 자체의 성능보다 현상과 인화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는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현재 나와 있는 필름 중에서 가장 좋다는 코닥크롬은 우리 나라에서 현상하지 못합니다. 일본에서도 할 수 없고 하와이로 가야 가능합니다. 지난 88서울 올림팩 때, 서울에서 코닥크롬을 현상한 적이 있지만 얼마 뒤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특정한 필름을 현상하는 것은 그 필름을 현상할 때 필요한 약품을 지시대로 혼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똑 같은 약품으로 현상해도 더 나은 곳이 있고, 더 떨어지는 곳이 있는 것은 현상이 단순한 공정이 아니라 큰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울이나 일본에서 코닥크롬을 현상하지 못하는 것은 이 필름의 현상 과정이 까다로운데다가 필름의 보관에 매우 엄밀한 주의를 요하고, 결정적으로 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데이터를 잡을 수가 없어서 라고 합니다. 즉 코닥크롬을 하루에 수 백 롤 이상씩 찍어와야 되는데 잘해야 몇 롤 정도이니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코닥크롬필름을 쓰는 사람들은 꼭 그 필름만 쓰고 하와이로 보내어 현상을 해온다고 들었습니다.
코닥크롬을 제외한 코닥액타크롬이나, 후지크롬, 아그파크롬, 코니카크롬은 그 현상 약품이나 방법이 다 같습니다. 물론 인화지는 차이가 있지만 서울서 하는 현상은 다 코닥약품을 써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필름의 제조 과정이 다 그 업체만의 비밀로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스판 위에 유제를 올리는 것인데 거기서 어느 색이 더 강하게 나올 것인지를 조절하겠지요.
우리 나라 사진인 중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기술과 장비를 습득한 분들이라 일본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을 따라합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거의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나라는 알게 모르게 일본 사진과 사진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기는 니콘이어야 되고 필름은 후지라야 된다는 생각 가지신 분들 다 일본 사진인에게서 받은 영향이라고 봅니다.
요즘 웨딩사진에서 캐논이 자리를 잡은 것은 젊은 사람들이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덕분에 캐논이 니콘을 앞지르는 약진을 가져온 것입니다.
일제 사진기 일본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고 호언하는데 일제 필름 또한 일본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코니카필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1992년에 영국에서 비교분석한 컬러 네가필름을 보면 종합 점수 1위에 코닥, 2위에 코니카가 올라 있습니다. 그 뒤로 그런 분석이 나오질 않아 제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큰 차이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진기, 좋은 렌즈, 좋은 필름까지 갖추어야 좋은 사진이 된다는 것 저도 압니다. 그러나 물감과 도화지가 좋아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은 조금 듣기에 거북하지 않으십니까?
필름은 물감과 도화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화지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요즘 기술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중요한 사진을 찍을 때는 가장 고급스런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일상으로 찍는 필름은 가격이 저렴한 것을 써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장황한 얘기를 하였습니다.
필름은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어서 누가 말할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막연하게 남이 하는 말을 듣고 낭비하시지는 마시라는 당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