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군번의 한마디

2002. 7. 1. 06:39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요즘 시골에 가면 마을마다 경로당이 하나씩 있습니다. 마을마다 다 있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아마 복지 차원에서 하나씩 지었나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경로당이 많다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마을을 통합해서 하나만 있어도 괜찮을 것이 마을마다 있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마을마다 경로당이 있다보니 노인의 수가 그만큼 될 리는 없고 나이가 조금 든 사람은 다 경로당에 모인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자식 뻘이 아니라 손자 뻘이 되는 젊은 사람들과도 어울려 같이 놀고 술도 마시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노인들이 이해한다해도 어른들이 보기엔 예의 없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들을 탓하면 오히려 노인이 왕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이 어울릴 수 밖에...
내 나이 올해 마흔 다섯, 흔히 말하는 불혹의 나이지만 아직 철이 안 들은 탓인지 여전히 미혹 속에 헤매고 있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내가 경로당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저도 이 세계에서는 경로당 군번으로 통합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제가 나가는 고등학교 동문 카페에서 저를 경로당 군번이라고 불러서 받은 이름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보면 요즘 20대가 대부분인데 그들에게 저같은 40대 중반의 사람은 완전히 경로당에서도 뒷전 노인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30대 후배들이나 형님 찾고 선배님 찾지 그 아래 동문들에게는 40대 중반은 아예 존재 가치도 없는 모양입니다.
제가 다음 동창회에 우리 국민학교 동문 카페를 개설해서 운영 중인데 여기는 30대가 주류입니다. 30대라면 저와는 얼마 차이가 안 나는데도 생각의 차이는 보이지 않게 크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386세대와 475세대의 사회적 지위가 현저히 다른 만큼 제가 그들과 같은 사고를 가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피부로 느낄 만큼 현저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우리 동문이라면 적어도 성장 배경은 큰 차이가 없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로당 대접을 받는 심정은 참으로 참담합니다.
그래 가는 세월이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경로당의 노인들도 예전에 새파란 청춘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 젊다고 큰 소리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허리 굽은 백발의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로당, 경로당이라고 놀리지 마십시오, 젊은이여. 사람은 누구나 다 늙어가는 것이고 여러분 또한 경로당에 가서 설움 받을 날 오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주제 넘게 칼럼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나이를 먹는 동안 사진기를 다루며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에 사진기를 사면서 시작한 취미가 어언 14년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돈을 허비했고, 많은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런 자리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분들은 드믈거라 생각하여, 보잘것 없는 것들이지만 많은 분들과 같이 생각하고 같이 연구하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앞으로 좋은 관계와 좋은 사진을 위해 즐거운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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