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2003. 2. 23. 10:27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40년의 역사를 가진 가보카메라가 종로 시대를 마감하고 충무로로 옮겼습니다.
제가 누차에 걸쳐 가보카메라와의 인연을 얘기했지만 저와 가보카메라는 단골손님과 단골가게의 관계를 넘어서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진기와 렌즈를 사고 팔았고, 또 사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가보카메라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정말 우연히 만나서 필연적인 관계로 유지가 된 것은 가보카메라 사장이신 최운철 님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사진에 발을 들여 놓은지 16년 차에 접어드는데 지금까지 제가 사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가보카메라에서 무한으로 사진기와 렌즈를 내어줬기 때문입니다. 가보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제가 가져다가 쓸 수 있었고, 언제든지 내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보카메라의 최운철 사장님은 20대 초반부터 가보카메라에서 점원으로 시작하여 40대 초반에 가보를 인수했고 거기서 모든 청춘을 다 보내셨습니다. 저도 종로에서 15년을 같이 했는데 이제 함께 충무로로 옮겨갑니다.
가보카메라 덕에 알게 된 분들도 많고 종로 3가, 4가의 여러 음식점, 술집도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이미 주인이 여러번 바뀐 술집이나, 자리를 여러 차례 옮긴 술집도 다 단골로 지냈는데 이제 그들과의 만남들도 다 접어야하고 다시 충무로에서 개척해야할 것 같습니다.
가보카메라는 충무로 극동빌딩과 쌍용빌딩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길 이름은 모르는데 그 라인에 한국카메라, 충무양행, 신세대카메라, 반도카메라, 보성카메라, 대승카메라가 줄지어 있고, 후지직매장, 21세기, 인포카메라 등이 맞은 편 라인에 있습니다.
종로보다 충무로가 건물세가 휠씬 싸다는 것을 요즘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종로는 귀금속상가가 들어서부터 건물세가 천정부지로 올라 다른 업종들은 살아남기가 너무 어렵게 되었고, 모든 상점이 다 귀금속으로 바뀌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충무로에 사진기점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일업종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오히려 소비자에게나 판매자에게 더 유리한 점이 많다고 하니까, 가보가 충무로로 이전한 것은 시의적절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저의 근거지도 가보를 따라서 충무로로 옮겨갑니다. 우선 술집부터 두어 곳 확보하고 음식점도 두어 곳을 찾아보려 합니다.
정든 것들과의 작별은 항상 마음이 아프지만 새로운 것들과 만나는 것도 가슴 설레는 일이라,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번 쭉 둘러보니 충무로의 사진기점들은 고급사진기만 진열한 곳들이 많던데 가보는 그런 곳들과 경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종로에서처럼 가격이 저렴하고 쓸만한 중고 사진기와 렌즈를 주로 취급하게 될 것이고, 이젠 디지털사진기도 취급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가보를 사랑해주신 사진인들께 감사말씀 드리고 이젠 충무로에서 뵙기를 희망합니다. 가보카메라와 같이 있던 월드포토도 같이 이전했습니다. 단 시간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저도 충무로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두 가지 재주  (0) 2003.03.09
불확실성의 시대에 서서  (0) 2003.03.02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0) 2003.02.18
전시회를 한다는 것  (0) 2003.02.08
섣달 그믐에  (0) 200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