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에 서서

2003. 3. 2. 06:35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요즘 디지털사진기의 열풍이 대단합니다.
사진기점마다 디지털사진기를 찾는 사람이나 전화가 무척 많고 펜탁스클럽 장터에도 보면 오래 쓰고 아끼던 사진기나 렌즈를 통 째로 내어 놓는 분들이 많습니다. 디지털사진기로 가겠다는 얘기들입니다. 게다가 사진관을 하는 분들도 디지털로 가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잡지 지상에 오르내립니다. 그러다보니 스튜디오를 처분한다는 매물 광고가 연일 게재되고 있습니다.
이런 전환기에 아직도 필름사진기를 고수하는 것은 문제가 될지 모르는데,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동사진기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필름사진기를 고수하는 뒤떨어진 사람 중의 하나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엊그제는 거금 70만원을 주고 펜탁스 LX사진기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수첩을 정리하다보니 열 개의 똑딱이 사진기(레인지파인더가 다섯 쯤은 되는), 35mmZLR이 하나, 35mmSLR이 여섯, 여기에 따르는 교환 렌즈가 29개, 중형이 67하나에 렌즈가 여덟, 69에 렌즈가 셋이나 됩니다.
이런 장비를 모으면서 보낸 세월이 벌써 16년에 접어들고 이제 사진에 대해 조금은, 아주 쬐끔 안다고 할 만큼 자신을 얻었는데 다시 디지털로 가야한다면 그 길이 너무 멀 것 같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앞으로 35mm필름은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광고 사진 때문에 중형이상은 어떻게든 필름이 나오겠지만 35mm는 디지털에 밀려 필름이 생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애써 부인하고 싶습니다. 칼라필름이 처음 나왔을 때, 흑백필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흑백필름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디지털사진기가 아무리 빨리 또 널리 보급된다하더라도 필름의 생산이 중단이야 되겠느냐고 애써 자위하지만 그 위기의식은 저도 느끼지 않을 수야 없겠지요...
사진을 하는 세 가지 재미 중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설렘에 못지않게, 사진이 나오기 까지 기다리는 기대감도 무시못할 것인데 디지털사진기는 그런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발효식품을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발효식품은 숙성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이 더 깊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진도 이런 것에 비교하자면 필름사진이 발효식품과 같은 것이 될 것이고, 디지털사진은 인스턴트식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일장일단이야 있는 것이지만 변화를 따라가기가 힘에 겨운 사람들은 역시 디지털사진보다 필름사진에 더 매달릴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저 역시 그런 사진인중의 한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언제나 불확실성이 아닌 확실성의 사회가 올 지 모르지만,사진의 미래도 불확실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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