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
2003. 3. 15. 16:41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오늘 저는 소문난 잔치에 갑니다.
누가 초대한 것은 아니지만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떠올리면서 하동으로 갑니다. 섬진강을 끼고 다압면 매화마을에 매화를 찍으러 가는 것입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을 저는 믿습니다. 실제 잔치도 그렇고 사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벌써 부터 전국 각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겠지만 가봐야 티비나 잡지에서 보던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갑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들은 대개 올 해 찍은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찍은 잘 나온 사진을 올려 놓기 때문에 그런 것을 믿고 갔다는 실망만 큽니다.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것은 맞겠지만 아직 만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주에 가면 이제 지기 시작할 것이고 시드는 꽃은 힘이 없어 사진에도 좋지 않습니다.
매화로 유명한 곳이 섬진강 매화마을과 해남 보해 농장입니다. 매화마을은 이번이 두 번 째이고, 보해농장도 두 번 다녀왔습니다. 농장은 나무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찍기는 좋지만 어딘지 주변 풍광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풍경사진으로는 조금 떨어집니다. 그래도 예전에 가서 흐뭇한 사진을 몇 장 건져 지금도 그 때의 기분이 생생합니다.
다압면에 먼저 갔을 때는 조금 늦게 가서 이미 매화가 바람에 날릴 때였습니다. 그래서 별로 건진 것은 없지만 섬진강변을 끼고 구례로 올라오는 길과 쌍계사 들어가는 이십리 길, 구례 산동의 산수유꽃 등을 찍고 왔는데 그 때 비로소 봄이 왜 전라도로 온다고 하는지를 실감했습니다.
저는 오늘 펜탁스67을 가지고 갑니다.
50mm, 80mm, 135mm, 180mm, 200mm, 500mm반사 등으로 짐을 꾸렸습니다. 180mm와 200mm는 중복되어 망설였지만 180mm가 f/2.8로 무척 밝기 때문에 조금 무거워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여기에다 30mm어안과 300mm 망원도 함께 챙겼는데 막상 가져가면 별로 쓸 일이 없어 이번에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갑니다.
풍경을 찍을 때 사람이 많이 몰려오면 참 난감합니다. 여기저기 사람 때문에 앵글 잡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게다가 그냥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는데 알록달록 색색으로 조끼를 입은 상춘객들은 사진속에서도 영 어색합니다. 거기다가 삼각대를 들쳐 맨 사진인들은 더 거슬립니다.
그래도 가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비록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해도 가봐야만 먹을 것이 정말 없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진 동호회에서는 다음 주말에 가는 일정으로 잡혀 있다고 합니다. 혹 같이 가실 분이 잘 짜여지지 않으면 그런 팀을 따라가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봄입니다.
다시 내년에 봄이 온다고 미루지 말고 이번 봄을 그냥 보내시지는 마십시오. 한번 지난 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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