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를 한다는 것

2003. 2. 8. 22:45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누가 말하기를 '노고단에서 제대로 된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다'라고 했다는데 사진에서 만큼 날씨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어제 덕유산으로 다시 촬영을 가려다가 그 쪽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와, 너무나 포근할 것이라는 기온 얘기를 듣고는 진로를 태백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거기도 마찬가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사진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단양의 도담 3봉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도담 3봉 앞에서 사진기를 꺼내들고 30여 분간 씨름했더니 이번엔 진눈깨비가 내려 더 이상 사진기를 꺼내 놓는 것 조차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간 사람 중에 누구 탓이냐를 놓고 반 농담으로 설왕설래했지만 모든 것이 다 제 불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시회를 한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니까 예전에 우리 회원이었다가 다른 곳으로 간 어떤 분이 "전시회를 왜 하느냐?' 묻습니다. 전시회를 왜 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내가 다시 반문하자, '무슨 목적으로 전시회를 하느냐?'고 정색을 하고 묻습니다. 글쎄 전시회가 무슨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내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진 전시회는 매 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하는 연례행사인지도 모릅니다. 이름있는 화랑에서도 하지만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예총회관, 후지포토살롱, 코닥의 연강홀 등에서 쉴 새 없이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어떤 전시회는 초대를 받아 열리고, 어떤 전시회는 후원을 받아 열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 전시회는 회원들이 주머니를 털어서 하는 자기들만의 전시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서울포토클럽의 전시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번 전시회를 열기 위해 참가하는 회원들의 부담금을 사람 당 50만으로 했고 그것으로 부족하여 회원들 중 사업하는 분들에게 다시 50만원의 후원금을 더 내게 하였습니다.
돈만 있다고 전시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작품으로 내걸만한 사진이 있어야 하고, 전시실 임대, 작품 인화, 작품집 등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이것을 소흘히 하면 돈은 돈대로 들어가면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사진을 찍는 자체도 돈이 들어가는 소비적인 일인데 거기다가 전시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것인데 꼭 남에게 보여줘야 하느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보여주는 의미도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노력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전시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해도 필름 속에 들어만 있다면 그것은 사진이 아닙니다. 자신은 늘 자신의 사진이 좋다고 흐뭇하게 생각해도 막상 전시회를 하려고 사진을 골라 내려면 1,2년 간 자아도취에 빠졌던 자신의 사진들이 헛점 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도 교수님과 여러 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환등기를 돌리며, 이것은 무엇이 부족하고, 저것은 그래서 안되고 하며, 자신이 생각했던 사진들이 하나 둘 낙첨될 때 정말 식은 땀이 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3,4점을 골라 내면, 비로소 '아! 내 사진에도 쓸만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있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쉽니다. 저는 이 긴장감이 좋아서 전시회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4점을 골르라고 할 때, 열 점 정도 골라 놓고 정말 어떤 사진을 빼야할 지 자신도 결정하지 못할 때 오는 기쁨... 이런 것이 전시회를 여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한달 용돈이 다 들어가, 한달을 거지로 지낼 망정 전시회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서울포토클럽이 다음 주에 전시회를 엽니다.

서울포토클럽 여섯 번 째 전시회 "아름다운 강산"
전시 일시 : 2월 13일(목)부터 16일(일)까지
초대하는 날 : 2월 13일(목) 18시
전시 장소 : 대학로 예총회관 제 1전시실

*일체의 화환이나 화분 등은 사양합니다.

보잘 것 없는 자리이지만 존경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무로에서  (0) 2003.02.23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0) 2003.02.18
섣달 그믐에  (0) 2003.01.31
시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0) 2003.01.27
시간은 그렇게 빨리 가는데...  (0) 200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