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가? 사진기였던가?
2003. 3. 23. 08:13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아래 글은 펜탁스클럽 게시판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유저팁 게시판
안녕들 하신가.
나는 지방에서 40년 넘게 사진업을 하다가 얼마 전에 정리한 사람이외다.
늘그막에 사진이나 찍으며 보내려고 맘 먹었는데, 아 글쎄 큰아들이란 놈이 지 애비 평생 맡은 약 냄새 더 이상은 안된다며 뭐 디지탈을 한 대 사서 줍디다.
뭐 솔직히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타자나 몇자 치는 것도 힘든데, 디지탈이 가당키나 하오? 그래서 그 놈은 우리 큰손주 놈한테 앵겨주고, 나는 필림 돌아가는 소리 정겨운 수동을 쓰기로 했다오.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이것이 아니라,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때문에 한마디 하겠소이다. 늘그막에 할 일도 없고 잠도 없어지니 시작한 것이 인터넷인데, 카메라 관련 사이트 찾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이렇게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서, 카메라 구경도 하고, 글도 보고, 참 재미가 있더란 말이오. 헌데, 하나 걸리는 것은 남들 욕을 왜 그리도 많이들 하시는지.....
내가 보니 다 좋은 물건들 가지고 내 것이 더 좋다면서 싸워대니, 이 노인네가 안타까워서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다오.
카메라는 말이오, 값이나 기능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외다. 나는 단 한번도 카메라를 기계라고 생각한 적이 없소. 물론 이놈들로 지금은 이세상에 없는 내 아내와 내 자식들 입에 먹을 거 넣어주고 입을 거 내어주고, 공부시켜 준 탓도 있지만은, 나와 내 가족들, 내 친구들과의 추억을 함께 했고, 그 순간을 담아서 기억할 수 있게하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라 생각하오.
여러분은 친구를 돈으로 따질 수가 있소? 친구를 능력으로 따질 수가 있소? 내 분수에 맞게, 마음에 드는놈을 골라서 잘 쓰면 어떤 카메라가 부럽겠소?
여러분이 나중에 옛 사진들을 꺼내서 볼 때 무었을 볼 것 같소? 화질일 거 같소, 아니면 여기 자주 올라오는 숫자놀음일 거 같소?
아니오. 여러분들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로 머리속은 가득 찰 것이오. 어떤 카메라를 쓰던 그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란 말이외다.
나도 사진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내 손으로 완성 시키는 거 같아서 참 즐겁게 일을 했다오. 특히나 아주 연세 높으신 어른들이 부끄러워하며 오래된 사진을 맡길 때면 나는 돈도 받지않고 완벽하게 복원할 때 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했다오.
그리고, 내 카메라가 비싼 것이 아니라 해서 기 죽지 마시오. 추억을 담아내는 데는 비싸고 다루기 힘든 수동보다, 빨리 찍는 값싼 놈이 더 좋은 법이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네그려.
이 늙은이 말에 공감한다면 지금 가진 놈으로 인생의 흔적을 많이 남겨 놓으시구려들. 사진한다는 이 늙은이는 정작 변변한 영정 사진도 없으니 원....
아이쿠, 어느새 이렇게나 길어졌네그려.
그럼 이 늙은이는 이만 물러가외다.
저는 사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치스런 말로 '취미'라고 하지요. 누가 '사진작가'운운하면 부끄러워 합니다. 저는 그냥 '수준있는 아마추어' 정도의, 스스로 '사진인'을 자처합니다.
이 어르신의 글을 읽으며(쓰신 분의 동의를 얻지 않고 맞춤법과 띠어쓰기를 손대서 죄송한데 내용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늘 스스로 생각하는, 제가 지금 사진을 하고 있는가? 사진기에 매달려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하던 때의 '월간사진'에서 읽었던 '나르킷소스의 죽음'이란 글도 자주 생각하는 화두의 하나입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킷소스'는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사냥을 했습니다. 보잘 것 없던 장비로 사냥을 하다가 나르킷소스는 사냥을 더 잘 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둘 씩 마련하고, 나중엔 그 도구들로 먹고 살기 위해 사냥을 한 것이 아니라 장비 자랑과 폼으로 사냥을 즐기다가 신의 노여움을 받아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처음엔 렌즈 교환이 되는 사진기 하나에 달랑 렌즈 하나로 시작한 것이 10여 년의 세월속에 더 좋은 장비, 더 멋진 장비를 마련하느라 사진찍는 일엔 정작 소흘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반성이 새롭게 보는 렌즈나 사진기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나르킷소스가 사냥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그 장비를 자랑하기 위해 사냥을 했던 것처럼, 필요한 사진기와 렌즈를 쓸데 없이 많이 마련해 놓고 그것들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지...
다 쓸데 없는 장비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나 내어 놓으려고 하면 그것을 살 때를 생각하게 되고, 너무 아까워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다시 가방에 넣어둡니다. 사진을 찍는데는 하나의 사진기와 렌즈 두얼이면 더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열장에 나와있는 렌즈들이나 장터에 올라오는 장비를 보면 또 사고 싶어지니 이 병은 약도 없나 봅니다...
그간 우리 회윈님들의 따뜻한 성원으로 여기 '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에 100번 째의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만 '칼럼'이고 거의 다 제 푸념이고 넋두리라는 것 아시면서도 성원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루 올림
출처 : 디시인사이드 유저팁 게시판
안녕들 하신가.
나는 지방에서 40년 넘게 사진업을 하다가 얼마 전에 정리한 사람이외다.
늘그막에 사진이나 찍으며 보내려고 맘 먹었는데, 아 글쎄 큰아들이란 놈이 지 애비 평생 맡은 약 냄새 더 이상은 안된다며 뭐 디지탈을 한 대 사서 줍디다.
뭐 솔직히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타자나 몇자 치는 것도 힘든데, 디지탈이 가당키나 하오? 그래서 그 놈은 우리 큰손주 놈한테 앵겨주고, 나는 필림 돌아가는 소리 정겨운 수동을 쓰기로 했다오.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이것이 아니라,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때문에 한마디 하겠소이다. 늘그막에 할 일도 없고 잠도 없어지니 시작한 것이 인터넷인데, 카메라 관련 사이트 찾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이렇게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서, 카메라 구경도 하고, 글도 보고, 참 재미가 있더란 말이오. 헌데, 하나 걸리는 것은 남들 욕을 왜 그리도 많이들 하시는지.....
내가 보니 다 좋은 물건들 가지고 내 것이 더 좋다면서 싸워대니, 이 노인네가 안타까워서 두서없는 글을 쓰고 있다오.
카메라는 말이오, 값이나 기능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외다. 나는 단 한번도 카메라를 기계라고 생각한 적이 없소. 물론 이놈들로 지금은 이세상에 없는 내 아내와 내 자식들 입에 먹을 거 넣어주고 입을 거 내어주고, 공부시켜 준 탓도 있지만은, 나와 내 가족들, 내 친구들과의 추억을 함께 했고, 그 순간을 담아서 기억할 수 있게하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친구라 생각하오.
여러분은 친구를 돈으로 따질 수가 있소? 친구를 능력으로 따질 수가 있소? 내 분수에 맞게, 마음에 드는놈을 골라서 잘 쓰면 어떤 카메라가 부럽겠소?
여러분이 나중에 옛 사진들을 꺼내서 볼 때 무었을 볼 것 같소? 화질일 거 같소, 아니면 여기 자주 올라오는 숫자놀음일 거 같소?
아니오. 여러분들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로 머리속은 가득 찰 것이오. 어떤 카메라를 쓰던 그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란 말이외다.
나도 사진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추억을 내 손으로 완성 시키는 거 같아서 참 즐겁게 일을 했다오. 특히나 아주 연세 높으신 어른들이 부끄러워하며 오래된 사진을 맡길 때면 나는 돈도 받지않고 완벽하게 복원할 때 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기도 했다오.
그리고, 내 카메라가 비싼 것이 아니라 해서 기 죽지 마시오. 추억을 담아내는 데는 비싸고 다루기 힘든 수동보다, 빨리 찍는 값싼 놈이 더 좋은 법이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네그려.
이 늙은이 말에 공감한다면 지금 가진 놈으로 인생의 흔적을 많이 남겨 놓으시구려들. 사진한다는 이 늙은이는 정작 변변한 영정 사진도 없으니 원....
아이쿠, 어느새 이렇게나 길어졌네그려.
그럼 이 늙은이는 이만 물러가외다.
저는 사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치스런 말로 '취미'라고 하지요. 누가 '사진작가'운운하면 부끄러워 합니다. 저는 그냥 '수준있는 아마추어' 정도의, 스스로 '사진인'을 자처합니다.
이 어르신의 글을 읽으며(쓰신 분의 동의를 얻지 않고 맞춤법과 띠어쓰기를 손대서 죄송한데 내용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늘 스스로 생각하는, 제가 지금 사진을 하고 있는가? 사진기에 매달려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하던 때의 '월간사진'에서 읽었던 '나르킷소스의 죽음'이란 글도 자주 생각하는 화두의 하나입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나르킷소스'는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사냥을 했습니다. 보잘 것 없던 장비로 사냥을 하다가 나르킷소스는 사냥을 더 잘 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둘 씩 마련하고, 나중엔 그 도구들로 먹고 살기 위해 사냥을 한 것이 아니라 장비 자랑과 폼으로 사냥을 즐기다가 신의 노여움을 받아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처음엔 렌즈 교환이 되는 사진기 하나에 달랑 렌즈 하나로 시작한 것이 10여 년의 세월속에 더 좋은 장비, 더 멋진 장비를 마련하느라 사진찍는 일엔 정작 소흘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반성이 새롭게 보는 렌즈나 사진기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나르킷소스가 사냥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그 장비를 자랑하기 위해 사냥을 했던 것처럼, 필요한 사진기와 렌즈를 쓸데 없이 많이 마련해 놓고 그것들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지...
다 쓸데 없는 장비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나 내어 놓으려고 하면 그것을 살 때를 생각하게 되고, 너무 아까워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다시 가방에 넣어둡니다. 사진을 찍는데는 하나의 사진기와 렌즈 두얼이면 더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열장에 나와있는 렌즈들이나 장터에 올라오는 장비를 보면 또 사고 싶어지니 이 병은 약도 없나 봅니다...
그간 우리 회윈님들의 따뜻한 성원으로 여기 '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에 100번 째의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만 '칼럼'이고 거의 다 제 푸념이고 넋두리라는 것 아시면서도 성원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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