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촬영을 다녀와서

2003. 3. 19. 17:12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찍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진에 찍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과 여행을 간다거나 무슨 기념식에 참가한다면 거기서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낯 선 사람들은 자신이 남의 사진기에 찍히는 것을 두려워 한다. 무슨 범죄나 고발을 위해서 찍는 것도 아닌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 사진기로 사람을 찍으려면 무척 조심스럽다.
나는 그래서 풍경 사진이나 자연 생태계 사진을 주로 찍는다. 자연은 아무리 찍어도 그 자신이나 남이 시비를 걸어 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진가로 활동중인 문순화 님, 송기엽 님도 사람 사진을 찍었다가 문제가 되서 지금은 생태계 사진만 찍는다고 들었다.
사람을 찍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때는 돈을 내고 참여하는 모델 촬영대회이다. 나도 사진을 시작한 초창기엔 모델 촬영대회에 여러 번 나갔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잘 찍었다고 생각한 사진도 출품을 하면 입선이 안되기에 지금은 나가지 않는다. 상을 받은 사진들이 별스럽지 않은데도 뽑히고 더 잘 찍었다고 생각되는 사진은 탈락하여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이젠 그런 곳에 사진을 내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모델 촬영을 나가면 필름을 엄청 소비하게 된다. 자기 앞에 있는 모델의 한 표정, 한 동작이 바뀔 때마다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전에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파인더를 들여다보면 안 찍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 보다 필름 소비가 더 심한 것이 누드 촬영이다.
나는 누드 촬영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필름 소비가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누드 촬영을 나갈 때는 아예 필름을 많이 가져 가지 않는다. 없어야 안 찍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누드 촬영을 다녀왔다. 우리 서울포토클럽에서 정기촬영을 누드 찍는 곳으로 가기로 해 오랜 만에 누드를 찍은 것이다.
사진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 묻는 것이 누드를 많이 찍는가이다. 많이 찍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안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얘기하면 그 때 꼭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을 누드 촬영에 데려가고 싶지는 않아서 갈 때는 얘기하지 않고 찍은 뒤에 말한다.
이번에 누드 촬영을 간 곳은 가평 명지산 계곡 안 쪽에 있는 허수아비마을이었다. 처음에 야외가 아닌 실내 촬영이라고 알려 줬다면 삼각대와 플래시를 준비했을 것인데 가보니 실내 촬영이 주가 되고 야외 촬영은 시원치 않았다. 실내는 모슨 모임이나 공연 등을 하는 곳이었는데 누드를 배치하는 무대가 정리가 되지않아 렌즈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모델에게 초점을 맞추면 뒤에 있는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이 눈에 거슬렸다. 다들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면 상당히 실망할 것이다.
누드 모델은 남녀 1명씩이었는데 여자는 키가 너무 작고 남자는 너무 커서 너무 언밸런스였다. 특히 여자 모델은 얼굴이 모델로서 너무 떨어지고 몸매가 빈약한데다가 표정도 영 마음에 안 들어서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영 안 들었다....
촬영 참가비가 3만원에 점심 제공이면 무척 싼 편이어서 갔지만 역시 싼 것이 비지떡이라고 형편 없었다. 누드모델도 얼굴이 예쁘지 않으면 모델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게다가 몸매도 8등신으로 잘 빠져야 되는데 우리 나라에선 누드모델에 대한 선입감이 안 좋아서 제대로 된 모델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주 멋진 누드모델이 하나 있다면 썩 괜찮은 사진이 나올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음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