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의 차이

2003. 3. 23. 19:28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지난 수요일에 제가 잘 아는 분께서 큰 행사가 있다고 사진을 부탁해왔습니다
아니 부탁을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자청을 했다고 하는 것 더 바른 표현입니다. 그 분께서 회장으로 취임을 하시는데 사진을 찍을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전문가를 한 분 초빙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제가 보조로 찍겠다고 한 것입니다.
수업이 5시 20분에 끝나는데 식이 장충동 앰버서드호텔에서 6시에 시작한다기에 택시를 타면 그런대로 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바로 택시를 탔습니다. 처음엔 잘 빠지는듯 싶더니 강변북로에서 막히기 시작하니까 별 방법이 없었습니다. 무려 한시간 20분이나 걸리고 택시비가 17,700원이나 나와서 도착한 시간이 6시 55분. 헐레벌떡 뛰어들어갔더니 다행이도(?) 아직 시작하기 전이었습니다.
차가 너무 막혀 오실 분들이 반도 도착하지 않아 한시간이나 늦춰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안도의 숨을 쉬고 사진기와 렌즈, 플래시를 준비하여 사진찍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제 사진기에 쓰던 필름이 열두어 컷이 들어 있었고 필름은 36컷 두 롤을 가지고 갔고, 렌즈는 28-70mm와 70-210mm 두 개, 플래시는 메츠 32CT7을 가져갔습니다.
저 말고 따로 부탁하신 분은 최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이 넘으셨지만 사진기 두 대에 렌즈가 여럿이고 플래시도 메츠45CT1을 가지고 찍으셨습니다.
결혼식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면 두 롤 찍기가 어려울 만큼 식이 빨리 끝나는데 여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공식행사가 한시간을 넘게 진행되었는데 사람소개가 많다보니 사진찍을 일도 많았습니다.
처음엔 막 찍었는데 갑자기 필름 여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마음이 조급해져 여유있게 찍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공식행사가 마무리 되어갈 언저리에 필름을 다 소진하고 앉아서 쉬었는데 최선생님은 계속 자리를 옮기어 가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공식행사가 끝난 뒤에 여흥이 있을 때도 저는 필름이 없어 더 찍을 수가 없었는데 최선생님은 계속 찍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여쭈어보니 36컷 7롤을 찍으셨다고 하시었습니다.
사진을 현상인화를 해서 보니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할 만큼은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흐뭇하게 생각했는데 어제 최선생님이 찍으신 것도 비교해보니 제가 찍은 것들은 플래시 광량이 부족하여 검게 나온 것들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찍으신 것은 빛이 부족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가이드넘버 32와 45의 차이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게도 메츠45의 플래시가 있지만 부피가 크고 무겁다는 이유로 잘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냥 가지고 다니기 편리한 32CT7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중요한 자리에 가서 찍은 사진이 광량 부족으로 나온 것을 보니 이런 점이 바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장비도 귀찮아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늘 새로운 장비를 욕심내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기가 가진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