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 19. 13:22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지난 주에는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요일에는 춘천에 촬영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다시 하늘 공원으로 촬영을 나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월요일에 작은어머니 부음을 듣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화요일에 늦게 올라와서 수요일 새벽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금요일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주를 이미 네 번이나 다녀왔지만 제주에 가서 사진다운 사진을 제대로 찍은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 3학년 시절에 국문과 답사로 6박 7일 여정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는데 그 때는 사진기도 없었고, 30여 명 되는 팀을 맡은 책임자로 일정 조정과 식사, 잠자리 등을 일일이 챙기느라 개인적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넉넉하던 터라 웬만큼 이름이 있는 곳은 다 돌아보았습니다. 우도는 가지 못했지만 마라도까지 다녀왔는데 이제 기억에서 가물가물합니다. 영실에서 야영을 하다가 떨어진 기온에 얼어죽는 줄로 생각할 만큼 추위를 느끼기도 했고 한라산 정상까지 수박을 들고 올라가서 잘라먹은 엽기적인 기억도 있습니다.
두 번 째 간 것은 결혼한 다음 해였는데 신혼여행을 설악산으로 갔었기에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집사람과 친구 둘 해서 넷이 5박 6일 코스로 돌았습니다. 제주에는 처외숙이 두 분 사시고 처이모도 한 분 계시어 많은 덕을 보면서 즐겁게 여행을 했습니다. 한라산 등반을 성판악으로 올라갔는데 무려 일곱 시간 가까이 걸어서 올라갔고 가면서 짐이 무거워 쌀을 다 버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배낭도 안 메고 가방에다 챙겼고,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올라갔다가 발가락을 다쳐서 피가 흐르는 발로 올라갔었습니다. 내려 올 때는 막차를 못 탈까봐 달음박질로 내려왔고 성산포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조바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사진기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제자 둘과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간 것인데 사진기를 산 지 3년째인 해였습니다. 그때 까지는 슬라이드필름을 쓸 줄 모르던 때라 컬러 필름으로 여러 롤을 찍었는데 제대로 된 사진은 거의 없었습니다. 산방굴사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만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는데 그 사진과 필름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영실로 해서 한라산에 올랐는데 백록담에는 물도 하나 없었고 내려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어서 그냥 내려왔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갔다기보다는 그냥 한바퀴 돌면서 기념사진을 찍으러 갔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여름에 벼르고 별러서 다시 갔습니다. 펜탁스645 사진기에 45mm f/2.8, 75mm f/2.8, 120mm f/2.8macro, 150mm f/5.6, 200mm f/4.0, 300mm f/4.0ED, 500mm f/5.6반사 렌즈를 챙기고, 같이 간 아이 사진을 찍어주려고 35mm K2사진기에 24-50mm /4.0, 70-210mm f/3.5렌즈까지 챙기고 짓죠 328M 삼각대를 준비했으니 그 중량과 부피가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땡볕과 무더위는 사진기를 메고 다니는 자체를 힘겹게 했고,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습니다. 택시를 대절해서 다녔는데 아주 친절한 분이었지만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안내할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같이 간 아이가 몸이 탈이 나서 돌아다니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진다운 사진 하나 찍지 못했습니다. 성산 일출봉에 올라서 사진기를 펴놓고 기다렸더니 해가 구름 속으로 올라오고, 한라산 모습을 영실에서 잡으려고 했더니 구름이 끼어서 도와주질 않고... 완전 실패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제주도로 사진을 찍으러 가겠다는 얘기를 꺼낼 수도 없었는데 이번 가을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간다고 해서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생각하며 짐을 꾸렸던 것입니다. 무슨 사진기를 가져갈까 고심, 고심했는데 괜히 무겁게 67을 가져가기보다는 기동력이 앞서는 35mm를 가져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35mm 사진기 하나와 올림프스 IS2000을 하나 가지고 가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삼각대를 챙겨야하고 사진기 가방이 둘이나 되고, 옷가지를 챙기려다보니 아무래도 짐이 너무 많은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라이카에 19, 28, 35-70, 135mm 로 챙기려다보니 바쁜 시간에 렌즈를 바꿔 끼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줌렌즈로 갖춰진 캐논 T90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떠나려고 하다보니 바디를 두 개 가져가는 것이 나을 것 같고 그렇다면 펜탁스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펜탁스 Z-1P와 Z-20 사진기 둘에 20-35mm f/4.0, 35-135mm f/3.5-4.5, 200mm f/2.8ED, 300mm f/4.5ED로 한 가방에 꾸렸습니다. 필름은 슬라이드 5롤과 컬러 필름 4롤, 그리고 삼각대로 맨프로트055를 챙겼습니다. 옷가지도 최소화해서 양말과 저녁에 갈아입을 체육복만 챙겼는데 그래도 사진기가방, 옷 가방, 삼각대해서 들어야할 짐이 셋이나 되었습니다.
제주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이 한림식물원과 협재 쌍용굴이었는데 여기서는 사진기만 꺼내 들었을 뿐 찍을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산방산이 있는 용머리해안으로 갔는데 물때가 맞지를 않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고, 산방굴사는 시간 관계로 올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간 곳이 지삿개와 천지연폭포입니다. 예전에 누가 지삿개를 얘기할 때 거기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서 제대로 보고 감탄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앵글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저는 처음 본 경관이었습니다. 재작년에 갔을 때, 외돌개에서 바라본 것이 지삿개로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주 좋았습니다.
그 다음에 간 곳이 천지연폭포입니다. 여기는 여러 번 왔었는데 사진을 제대로 찍은 적이 없어 마음먹고 대들었지만 사방에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제 모습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줌렌즈라서 화각을 정리하는데는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좋은 사진은 기대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다음 날 함덕해수욕장으로 간다기에 철 지난 바닷가는 왜 가나 했는데 가보니 아주 멋이 있었습니다. 속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에 잔잔한 모래, 그리고 검은 돌들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진을 찍은 다음에 성산포로 갔는데 저는 일출봉에는 올라가지 않고 주차장근처에 있는 코스모스꽃을 부지런히 찍었습니다. 아주 넓은 밭에 코스모스가 심어져 있는데 한창 피어 있어 멋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섭지코지에서도 만족스러웠는데 제일 기대를 걸었던 산굼부리에 가서는 정작 빛이 없어 제대로 찍지 못했습니다. 종일 날이 좋아서 기대를 한껏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구름이 넓고 짙게 끼어 전혀 빛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서울로 왔습니다.
제주도는 정말 언제가도 너무 좋은 곳입니다. 다시 갈 때가 있겠지만 좀 더 멋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큰 수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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