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26. 20:40ㆍ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학교에 있기 때문에 방학이 있어 제가 많이 쉬는 줄로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방학을 그냥 쉬어 본 것은 지난 18년 동안에 단 한 번 뿐입니다. 예전에는 보충수업으로, 근래에는 특기적성수업으로 방학 중에도 계속 학교에 나가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되어도 1주일 이상 놀아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방학에도 수업을 하다가 설 연휴로 일주일을 쉬었습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난 뒤에 쉬다가 월요일인 오늘 나갔으니 8일을 놀은 것이 됩니다. 저는 서울에서 차례를 모시고 당일 아침에 광천으로 성묘를 갔다가 그 날 밤에 올라오기 때문에 명절이 되어도 바쁜 시간은 하루 뿐입니다. 밤에 늦게 와도 집에서 자니까 다음 날은 거의 한가하게 보냅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연휴는 정말 길었습니다. 집에서 하는 일이 컴퓨터 앞에 앉거나 TV를 보고, 지치면 낮잠을 자는 것인데 이것도 너무 지겨웠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소위 아침형인데 다른 식구들이 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니 혼자만 생각할 수도 없고, 또 늦게 일어나서 밥을 먹으니 오전 시간이 너무 짧은 것도 제가 못 견디어 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일요일에 경복궁에 나갔습니다.
눈도 없었고 특별히 찍을 것도 없었지만 나가자고 게시판에 올려 놓았더니 저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는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더니 경복궁 매표소에 이르니 작은 눈으로 바뀌어 기분을 설레게 했습니다. 눈이 내리면 뭔가 멋진 모습이 될 것 같아 기대를 잔뜩 했는데 종일 내려서 사진기를 꺼내들기가 곤란했습니다. 그래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향원정 앞 매점이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그 날 그 자리에 가져온 사진기들이 디카로 코니카 레비오 510K, 니콘 F5, 캐논EOS5, 펜탁스 Z-5P, MZ-S 그리고 제가 가지고 나간 펜탁스LX 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꺼내 놓고 이 사진기, 저 사진기를 잡아 보며, 초점 맞추기, 파인더 정보보기 등을 비교하게 되었는데 역시 비싼 것이라 그런지 니콘 F5가 가장 나아 보였습니다. 저도 펜탁스에서 나온 자동초점 형식인 Z-1P가 집에 있었지만 F5를 잡아보니 손에 잡히는 조작감이라든가, 파인더의 밝기, 자동초점 잡는 속도 등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들 누구나 자기가 가진 사진기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좋은 것은 좋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펜탁스 MZ-S가 만져보니 썩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니콘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을 살 리야 전혀 없는 일이지만 마그네슘합금으로 만들었다는 MZ-S는 그 기능이 Z-1P보다 많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신품 바디의 가격이 110만원 간다는데 그것을 사기는 사치이고 낭비라고 마음을 떨치고 싶어도 휴일 내내 그 사진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사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언제고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 펜탁스클럽 정보란에 있는 그 사진기에 대한 것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잘 만든, 견고한 사진기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 늘 가슴 한 쪽에 숨 쉬고 있는 욕망입니다.
어제 펜탁스클럽 장터에 비비타시리즈원 70-210/3.5 렌즈가 18만원에 나왔기에 연락을 해달라고 리플을 달았는데 연락이 없었습니다. 제가 삐삐 번호와 집 전화번호를 올렸는데 집에 있는 동안에 전화도 삐삐도 없었습니다. 제게 탐론 SP 70-210/3.5-4.0 렌즈가 있는데 이 렌즈도 아주 좋습니다. 다만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조금 길다는 것입니다. 구경이 58mm여서 다른 렌즈들과 필터를 공용으로 쓰는 점도 좋은데 비비타시리즈원에 대한 강한 향수 때문에 그것을 구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팔겠다는 분은 연락이 없고, 2차로 예약하신 분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연락이 안되어 2차 예약자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고... 조금 어이없었지만 2차 예약을 하신 분은 제가 만나지는 않았어도 인터넷 공간을 통해 아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구입하시라고 했는데 그 렌즈를 한번 보고는 싶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으니까 쓸데 없는 생각만 자꾸 늘어 아주 힘겹게 보냈습니다.
휴일은 3일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사치스런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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