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을 저질러 놓고...

2004. 1. 31. 19:10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지난 수요일에 영화 '실미도'를 보았습니다.

저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고, 역사를 다룬 것은 별로 보지 않는 편인데 실미도가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는데 일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명퇴하신 선생님과 그 사모님들을 초대하고 후배 교사 셋 등 해서 모두 14명이 함께 보았습니다. 젊은 분들은 대부분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하지만 저는 주로 허리우드극장에서 봅니다. 거기는 크게 붐비지 않을 뿐더러 표를 끊기에도 항상 여유가 있는 곳이라 어른들과 함께 볼 때는 허리우드극장을 이용합니다.

 

 영화는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작원들이 부대를 이탈하여 여자를 범하는 장면과 나중에 그 섬을 탈출하는 것이 조금 어색했지만 다른 부분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진행이 되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실미도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든가, 가까운 곳에 섬이 있어 물이 빠지면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없었는데 학교에 들어가서 여자를 범하는 장면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조금 갸우뚱해지는 부분이었고, 거기서 배를 뺏어 타는 장면이 없었는데 갑자기 버스를 탈취하는 것은 실미도가 육지에 붙어 있는 섬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 장면에서 눈물이 나와 눈물을 닦느라 허둥거렸습니다.

 

훈련을 받다가 떨어져 죽는 장면이라든가, 부상자가 돌아갈 수 없다고 절규하는 장면, 중정에서 그들을 정리하라는 명령에 고심하는 부대장의 모습, 서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장면, 마지막 자폭 장면 등 여러 곳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실미도를 기억하는 것은 1980년에 월간 잡지 '신동아'에서 실미도 기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이 있던 해는 1971년인가 였는데 역사 속에 묻혔다가 3공화국이 무너지면서 그런 얘기들이 붓물처럼 흘러 나왔는데 그 때에 실미도 사건을 보았던 것입니다.

 

 실미도 사건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그 사건이 북괴 공작원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특수부대라는 사실을 국회에서 폭로했다가 중정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전 신민당 국회의원 이세규 님의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세규님은 육군소장 출신의 야당 의원이었는데 국회에서 그 사건을 폭로하고는 고문 후유증으로 얼마 더 못 살고 죽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세규님이 고문을 당한 것은 그 사건의 제보자가 누구인가를 밝히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국방장관이 정래혁 예비역 장군이었는데 국방장관에게 그 사건이 보고가 된 것은 사건 발생 8시간 후였고, 내용도 북괴의 무장공비 침투로 되어 있어, 국회에 나가 그렇게 보고했다가 이세규 의원의 폭로로 사표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국방부장관 경호장교였던 분이 지금 저와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이신데 ROTC 3기로 헌병 장교였습니다. 그 분에게서도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에 이야기를 들어 나름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는 같이 보신 분들과 저녁 식사를 했는데 나오면서 한 분이 디지털카메라용 삼각대를 하나 사시겠다고 해서, 길가에 있던 신광카메라에 들어가 허접한 플라스틱 삼각대를 하나 샀습니다. 그러면서 보니까 진열장이 아닌 후미진 곳에 멋진 렌즈가 하나 있길래 보여 달라고 했더니 78-205/3.5인 드문 화각의 렌즈였습니다. 마운트가 M42스크류 마운트였는데 렌즈는 어디서 만든 것인지도 안 나와 있었지만 엑젝타 오토바리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만듬새가 라이카 보다도 훨씬 멋지게 되어 있어 제 마음을 끌어 당겼습니다. 값을 물었더니 8만원에 주겠다고 하여 그 저렴함에 놀랐고, 나중에 다시 올 테니 받을 금만 얘기하라고 했더니 7만원에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가서 그 렌즈를 사서 마운트를 라이카로 개조하려고 김카메라에 맡겼습니다. 김카메라에서 하는 얘기가 가장 멋지게 만든 렌즈라고 하는데 성능은 어떨런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 렌즈를 가지고 김카메라에 갔다가 잠깐 예지동을 한바퀴 돌았는데 이번에는 탐론 SP 300/5.6 렌즈가 보였습니다. 가격을 물으니 20만원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운트가 오림프스 아답톨이 끼어져 있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제가 이 렌즈를 탐하게 된 것은 어느 잡지에 소개된 서드파트 렌즈 중에서 샤프하고 가벼워 손으로 들고 찍어도 무난한 렌즈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텔레마크로여서 1: 32 정도의 근접 촬영이 가능하다기에 그 정도라면 반사 렌즈에 필적할 정도라 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가서 사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저는 이 렌즈를 사기 위해 그 동안 잘 쓰던 마키논 반사 300/5.6렌즈와 미놀타 하이메틱 7s11 사진기를 각각 10만원에 넘겼습니다. 2004년에는 더 이상 렌즈 구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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