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도

2004. 2. 6. 21:35사람과 사진과 사진기/사진기와 렌즈

 마음에 드는 렌즈를 발견하는 것은 무척 흐뭇한 일입니다.

그것도 가격이 저렴하게 나온 렌즈를 보면 서둘러 사고 싶어집니다. 렌즈는 사진기 마운트에 맞아야 쓸 수 있어, 렌즈가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저는 가끔 무모한 짓을 하곤 했습니다.

 

 일본제 렌즈를 사서 마운트를 개조한 적은 거의 없지만 독일제나 러시아제 렌즈를 사서 제가 가진 펜탁스 사진기에 맞도록 개조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을 할 일이지만 어떤 때는 흡족한 적도 있고 어떤 때는 불만스런 적도 있었습니다.

 

 렌즈 마운트를 개조하는 것은 예지동에 있는 김카메라에서 합니다.

제가 주로 개조해서 쓴 것은 중형판에 쓰는 렌즈였지만 135사진기에도 해서 써 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렌즈 마운트를 개조하면 조리개 연동이 안 되어 조리개를 개방하여 초점을 맞추고, 다시 조여서 노출을 조절하는 번거로움이 따르는 것입니다. 예전에 렌즈 가격이 저렴한 동독제 프렉티카 135/3.5렌즈를 펜탁스 K마운트로 개조하여 썼습니다. 135mm라면 주로 인물 사진에 쓰기 때문에 조리개를 개방하여 찍어도 별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렌즈 가격이 10만원, 조리개 개조비용이 3만원 정도 들었으니까 별로 비싸지 않다는 점에 바꾼 것입니다. 그러면서 29/2.4 렌즈도 펜탁스로 바꿨는데 이것은 거의 쓴 적이 없이 가지고 있다가 다시 라이카로 바꾸느라 5만원이 더 들었습니다. 135/3.5 렌즈는 거의 쓰지 않고 집에 있다가 10만원에 팔았는데 라이카로 마운트를 바꾼 29/2.4프렉티카 렌즈는 내어 놔도 팔리지 않아 그냥 가방에서 놀고 있습니다.

 

 잘 쓰지 않는 렌즈를 팔려고 할 때, 이렇게 마운트를 개조한 것들은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135사진기에서는 마운트 개조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중형에 쓰는 렌즈도 여럿 개조했다가 팔리지 않아 낭패를 본 적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펜탁스 67사진기의 렌즈에 30/3.5 어안렌즈가 러시아제를 마운트 개조한 것이고, 50/4.0디스타곤 렌즈, 80/2.8 플래너, 180/2.8 자이스예나, 200/4.0 라이츠 텔렛, 300/4.0 자이스예나, 500/5.6 러시아제 반사 망원 등이 전부 마운트를 개조한 것들입니다. 펜탁스 오리지널 렌즈는 135/4.0마크로 하나 뿐인데 67에서는마운트를 개조한 것들도  그런대로 사용하기에 큰 문제가 없어 만족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개조했다가 가보카메라에 내어 놓은 렌즈 중의 몇 개는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스크류 마운트 렌즈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마음에 들어 구입을 하려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M42스크류 마운트를 가진 사진기를 하나 살 것인가? 이 렌즈 마운트를 개조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거듭했는데 그렇다고 바디를 또 하나 산다면 그 바디에 맞는 광각 렌즈를 구입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구색을 갖추느라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 렌즈 마운트를 개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렌즈를 사가지고 김카메라에 갔는데 거기 사장님이 렌즈가 성능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주 잘 만든 것이라고 하는 말에 고무되어 펜탁스로 하지 않고 라이카 마운트로 개조했습니다. 엑젝타 오토바리오 78-205/3.5 라는 보기 드문 렌즈인데 이 렌즈 마운트를 개조한다는 것은 렌즈 하나를 못 쓰게 만드는 것이라는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바꿨습니다.

 

 그저께 필름을 한 롤 찍었는데 제 마음에는 아주 흡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렌즈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필름을 맡기고 한 시간을 걱정스런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생각 만큼 잘 나와서 아주 흐뭇했습니다.

 이번이 정말 렌즈 마운트를 개조하는 마지막 시도라고 확신합니다.

'사람과 사진과 사진기 > 사진기와 렌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산하  (0) 2004.02.28
강화도 해넘이  (0) 2004.02.15
또 일을 저질러 놓고...  (0) 2004.01.31
긴 휴일, 짧은 고민  (0) 2004.01.26
그래도 어쩔 수 없지만  (0) 200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