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진기를 사는가?

2001. 10. 21. 07:44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왜 사진기를 사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 고 반문할 것이다. 사진기야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초등학생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사진기가 사진을 찍기 위해서만 사는 것인가? 하고 다시 묻는다면 조금 생각이 많아질 것이다.


요즘 사진기와 렌즈를 사고판다는 글이 가장 활발하게 오르내리는 곳이 "억불카메라" 장터일 것이다. 실제 사진기점에 들러서 사고 파는 사람도 많겠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사고 판다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휠씬 많은 것 같고, 특히 억불카메라의 장터에는 하루에도 수백에서 천이 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말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기와 렌즈를 사고 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기를 바꾸는 사람들은 다 그러저러하 이유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너무 낡아서, 수동이라 아이들 찍기엔 어려워서, 더 좋은 화질을 위해서.... 등등 자기 변명을 충실히 하면서 사진기를 바꾸려 애쓴다. 그러면서 보다 나은 사진기와 더 고급스런 렌즈를 사고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나도 똑 같기에 다른 누구를 폄하하기 위한 얘기가 아니지만...


요즘 종로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구형 수동 사진기을 신형 자동 사진기로 바꾸고, 깨끗한 구형 수동은 일본으로 다 나간다고 한다. 이미 일본도 사진기 제조원가가 너무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대부분 동남아나 중국으로 생산 라인을 옮겼고, 구형 수동 사진기는 만드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아주 깨끗한 것들은 일본에서 되사가는 것이다.


나야 원래부터 일제 중에 펜탁스만 써 왔기 때문에 뭐 수집해 놓을만한 명기가 없지만, 니콘 F3, F2, F 등과 캐논 F-1은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을듯 싶다. 어차피 펜탁스LX는 서울서 구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제외하고... 예전에 우리가 비싸게 사서 잘 모셔(?) 놓았던 고급 사진기를 신형으로 바꾸느라 헐값에 내어 놓으면 고스란히 일본으로 가는 이 사실, 누구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비싸게 팔았던 것, 다시 싸게 사가니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사진기를 바꾸는 것은 사진을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욕망이다. 이것도 남보다 더 좋은 것이나 남이 가진 것 만한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끊임없이 사고 파는 것이다. 사실 더 좋은 사진기가 더 좋은 사진을 보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이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엔 스웨덴에서 만들어 독일의 칼 짜이즈 렌즈를 장착한 핫셀블라드가 그렇게 선망의 대상이더니, 지금은 핫셀보다 일본의 콘탁스645를 더 치고 게다가 펜탁스645N이나 마미야645프로TL 등도 가격이 핫셀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니 정말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특정 사진기의 성공여부는 한국시장의 성공여부에 의해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진인들의 재력이 얼마나 높은지 좋다고 한국에서 좋은 사진기라고 소문만 나면 그것의 판매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일은 그런 사진기를 산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추어들이라는 점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아니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사고 바꾼다는 사진기를 부의 과시나, 폼으로 들고다니기 위해 하는 짓들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의 취미로 하는, 사진기 바꾸는 일이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