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12. 2. 21:53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135mm 렌즈를 구입하고자 하는데 펜탁스 SMC 135mm f/3.5와 폴라 135mm f/2.8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느냐? 가격은 펜탁스 것이 폴라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
여기에 대해 답변을 하신 분이 네 사람 정도인데 양쪽으로 반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진을 시작한 다음 해(1988년)에 롯데 백화점에서 폴라 렌즈를 할인판매할 때 135mm f/2.8 렌즈를 8만원에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그 무렵에 사진 잡지에 나온 국산 폴라렌즈의 광고를 보고 우연히 책에서 보았던 '홍순태 교수 사진 연구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국산 폴라 렌즈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을 사서 써도 되는지 알고 싶어서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거기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홍순태 교수가 아니고 아마 일을 돕던 학생이 아닌가 싶은데 대뜸 국산 렌즈 못 쓰니 사지 말라고 답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미 그 당시에 국산으로 알려진 폴라 렌즈가 세계 교환렌즈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의 저명한 사진가의 사무실에서 그것을 쓰지 말라고 하다니... 렌즈가 실망스러 것이 아니라 그 답변이 실망스러웠던 것입니다.
저는 폴라 렌즈를 8만원에 사서 한 2년 정도 잘 쓰다가 가보카메라에서 펜탁스 135mm f/2.5 렌즈로 바꾸어 올 봄 까지 쓰다가 지금은 내어 놓고 없습니다.
얘기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렀습니다만 제가 앞의 질문에 답변을 한다면 솔직히 폴라 렌즈로 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지금의 저라면 폴라 렌즈로 하겠습니다만 10년 전 쯤의 저라면 저도 펜탁스 렌즈로 샀겠지요...
보통 35mm 에서 135mm 정도의 렌즈는 어느 업체 것이나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APO도 필요없다고 하니까, 렌즈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일 것이니 굳이 비싼 렌즈를 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물론 밝은 렌즈가 더 좋겠지요. 초점 맞추기도 유리하고, 대구경으로 되니 폼도 나고.... 그러나 사진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고 믿습니다.
저는 좀 건방져진 탓인지 비싼 렌즈보다 가격이 더 저렴한 렌즈들이 더 끌리는 경지(?) 까지 왔습니다. 스스로도 아주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신품보다는 중고로, 오리지널보다는 잡표로 가는 것이 더 부담 없고 찍기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사진기 잡고 폼을 잡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라이카나 핫셀이 더 낫겠지요. 그러나 사진을 재미로 찍을 것이라면 가격이 싼 것이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 사진이 더 좋다는 말은 저도 믿지 않습니다. 사진기마다, 렌즈마다 특성이 달라서 조금씩 다른 것은 인정하지만, 그 다른 것을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근거로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진을 찍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어떤 다른 클럽의 아줌마 한 분이 "골프나 승마는 남는 것이 없지만 사진은 작품이 남지 않느냐?"고 하는 말을 듣고는 나도 그런 사치심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가 자문을 해보았지만 그런 고상한 활동이 아니라 그저 찍는 재미로도 사진은 찍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