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11. 20. 21:31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오랜 만에 1박 2일의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대부분 장거리 촬영이 무박 2일로 짜여지는데 이것은 관광버스를 타고 갈 때나 가능한 것이고,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운전하는 사람에게 너무 무리가 가기에 할 수 없이 1박을 하는 것입니다. 운전하는 사람도 피곤하지만 곁에서 길 안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무박 2일은 사실 상당한 위험과 피로를 동반하는 무리한 촬영인데도 경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박 촬영을 다니곤 합니다.
해남 고천암호의 갈대가 아주 인상적이어서 더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다녀오자고 팀을 짰습니다. 늘 같이 다니는 우리 서울포토클럽회원으로 7-8명은 될 줄알았고, 한 회원이 봉고차를 가져갈 수 있다고하여 계획을 세웠으나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원은 4명으로 줄고 차도 갤로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출발은 가급적 일찍하기로 했지만 어쩌다 보니 시내가 막히고 부천에서 합류하는 사람과 만나고 하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오후 다섯 시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만, 차는 계속 막히어 가다서다를 반복하느라 시간이 아주 늦어져 해남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여행 중, 특히 촬영 여행 중에는 술을 극히 절제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저를 내숭으로 보거나 겸양으로 생각해서 꼭 술을 권합니다. 저는 원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술을 곧잘 마시지만 절대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아서 오해가 자주 빚어집니다.
저는 혼자서는 술을 절대 마시지 않고, 집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부득이 손님이 오시면 접대하느라 한두 잔 마실 뿐이지 술이 좋아서, 술이 먹고 싶어서 마시지는 않습니다.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간이라 빨리 자고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한사코 술을 마셔야 된다고 해서, 한 회원이 가지고 온 매실주 1.5리터 페트병 한병과 포도주 2홉병 하나를 넷이 나누어 마시느라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저는 매실주라든가, 포도주, 청주 등을 마시는 것을 가급적 피하는데 가져온 술이라고 자꾸 권해서 할 수 없이 마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전할 친구를 깨우니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일어나 간신히 샤워하고 땅끝으로 해돋이를 보러 갔는데 이미 해는 수평선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개가 끼어 일출 촬영은 별스럽지 않아 그냥 차를 돌려 바닷가에서 굴을 따는 아낙네들을 조금 찍고, 고천암호로 곧장 갔습니다.
거기 갈대는 순천만 만큼 넓지는 않지만 갈대는 훨씬 탐스러워 사진적 소재로는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주 즐겁게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속이 좋지 않아 상당히 힘이 들었는데 나보다 더 괴로워하는 것은 운전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계속 먹은 것을 토하고 배가 뒤틀린다고 괴로워해서 사진을 찍다말고 해남읍내로 나와 약을 사 먹였지만 무엇이든 마시면 다시 넘어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을 제외한 세 명은 아침겸 점심을 먹었지만 그 친구는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계속 괴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이 다른 사람이 운전을 대신하여 서둘러 서울로 올라왔지만 길이 막히어 분당 까지 아홉시간이나 걸리는 길고도 어려운 일정이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다고 술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술자리를 자주 가진다고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술 이야기만 나오면 저를 쳐다보고, 제가 안 마신다고 하면 무슨 잘못된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들 때문에 정말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저는 술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만, 사람을 만날 때 그 분위기 때문에 술을 마십니다. 그런데도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저를 애주가라고 생각을 하니 정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집에서 하루 쉰 친구는 다 나았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지만 촬영나가서 술판 부터 벌리는 사람들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 끝나고 한잔 나누는 것은 모르지만 촬영보다 술이 먼저인 그런 여행은 사진인이라면 누구나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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