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 다녀 왔습니다

2002. 1. 6. 21:40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오늘은 경복궁으로 촬영을 나갔습니다.

지난 가을에 가보고는 한참 만에 나갔는데 많이 변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전엔 매점 옆에 매표소가 있고 거기로 들어갔는데 이젠 광화문 안쪽으로 매표소가 옮겨져 있었고 총독부 청사가 있던 자리에 복원된 문으로 들어 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 문 이름을 보고도 기억을 못해서 씁쓸한데 아마 홍례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직 근정전은 보수 중이어서 제 모습이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새로 복원되어 경복궁이 제 모습을 찾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하였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총독부 건물을 철거해서 어디든 옮겨 놓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철거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경회루와 향원정 뒤 편으로 청와대 경비를 맡은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서 경복궁이 제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제 그 부대들이 다 철수하고 그 자리에 멀리서 옮겨온 금강송을 심어 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아직 일반에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경복궁 숲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경복궁이 명실상부한 조선의 정궁 모습을 찾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향원정 뒤 편에 있던 일본식 건물도 벌써 철거되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뒤로 보이는 청와대 부속 건물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북악 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자못 시원하였습니다.


늘 슬라이드필름만 쓰다가 오늘은 컬러네가필름을 가지고 갔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한 펜탁스 70-210mm 자동 초점 렌즈를 가지고 이것 저것 많이 찍으면서 한바퀴 돌았는데 기분이 아주 상쾌하였습니다. 서울 하늘로는 보기 드물게 파란 하늘과 쌀쌀한 공기가 겨울임을 실감케 하였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유쾌한 이야기가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일요일날 경복궁은 우리 나라 사람들보다 일본이나 중국계 단체 관광객이 더 많이 눈에 보이는데 오늘은 우리 국민이 더 많은 것 같아 그것도 기분이 좋은 일이었습니다.


향원정 가에서 보니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자기 아들처럼 보이는 중학생(확실하지는 않지만...)과 사진을 찍으며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어디 가나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보면 먼저 눈이 가는 것이 그 사람이 무슨 사진기를 가졌나여서 그 모자의 사진기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습니다.


어머니는 라이카 R8을 쓰고 있고, 아이는 캐논 EOS5를 쓰고 있는데 어머니는 짓죠 삼각대를, 아이는 맨프로트 190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냥 취미로 한다면 굳이 그런 삼각대를 사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사진인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이에게 사진을제대로 가르치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저도 사진을 취미로 하지만 아이들에게 사진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아직이란 말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우리 나라에서 사진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술로서의 사진도 어렵고, 직업으로서의 사진도 어렵기 때문에 그냥 취미라면 몰라도 장래의 희망을 사진에 걸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지는 모르지만 저는 사진이 취미이고 여가이지 본업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진이 예술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제가 하는, 사진에 관한 일들이 무슨 예술이라고 거창한 생각을 가져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냥 좋아서 사진을 찍고, 사진기를 만질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사진은 충분히 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야든 10년 이상을 한길로만 파고든다면 그 분야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에 공감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진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10년의 세월을 사진에만 쏟다가는 굶어죽기 딱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진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 거기 까지 오기에 흘린 땀과 눈물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그냥 사진기를 만지는 것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 것이 좋아서, 사진으로 인연을 맺고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서 사진을 가까이 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 모자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과에 간다는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진을 시작하던데 저렇게 미리부터 사진을 공부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한 방법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이들에게 취미라면 몰라도 사진 공부는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사진을 좋아해서 저와 같이 촬영을 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그 길을 가야겠다면 말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 길을 뒷받침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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