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1. 13. 08:17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진기는 사진기일 뿐입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묻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요술 상자로 생각하는 것 같아 하는 얘기입니다.
제게도 열이 넘는 사진기가 있습니다. 저는 엊그제 종로에 있는 가보 카메라에 나갔다가 거기서 오림프스 35DC라는 구형 레인지파인더 형식의 사진기를 7만원에 샀습니다.
요즘 구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여서 중학교에 들어가는 용범이에게 선물로 주려고 산 것입니다. 아이들이 쓰기엔 자동 초점의 똑딱이 사진기가 더 낫겠지만 반 자동(거리는 거리계로 조절하고 노출은 사진기가 알아서 하는...)을 써보는 것도 아이에게 특별한 재미가 될것 같아서 선뜻 산 것입니다.
작년에 거기서 야시카 일렉트로라는 비슷한 형식의 사진기를 5만원에 사서 혜경이에게 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쓰길래 아들에게도 그런 효과가 있을거라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요즘 펜탁스 클럽에 '장비병'에 관한 많은 얘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가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걱정되는 부분도 있지만 간섭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야경을 찍기 위한 플래시를 구입하겠다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고, 어떤 분들은 사진기 점의 추천 상품란에 나온 구형 플래시를 구입할 의사가 있는 것처럼 보여 제가 몇 자 올려 놓기도 했습니다만 처음에 생기는 병이 꼭 자기가 가진 사진기와 같은 오리지널 상표의 액세서리를 쓰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래시의 경우 독일제의 메츠를 제외한다면 오리지널 상표보다 플래시 업체의 제품이 가격이 훨씬 싼데 꼭 비싼 것을 구입하려는 마음에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저는 다행이 이런 것에는 초연했기 때문에 플래시로 손해를 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은 렌즈에서 오리지널로 더 밝은 렌즈를 사려고 하다가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제가 우연한 기회에 라이카클럽 홈 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그 분들은 라이카의 렌즈들이 비싼 이유를 자신들이 애써 변명해주기에 정신이 없더군요...
제가 들은 얘기론 오리지널 프라다, 구찌 등이나 국내에서 모조품으로 나온 것이나 구별이 안간다고 하던데 오리지널이 비싼 이유는 상표값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프라다 본사에서 일하는 기술자의 임금이 우리 나라 동대문에서 몰래 만드는 기술자보다 몇 배는 높겠지요. 그렇다고 본사의 기술자가 동대문 기술자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똑 같은 재료로 만드는데 가격이 더 비싸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비싼 공정을 한다든가, 더 많은 연구를 한다던가, 광고비가 많이 들어갔다던가... 등등의.
지금은 제가 잘 모르겠는데 한때 소니에서 나온 동등한 규격의 TV이가 삼성이나 LG에서 나온 것보다 두 배 이상 비싸게 거래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품질이 그만큼 낫다는 얘기인것 같은데 제 생각으론 우리 나라에서만 그랬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외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좋아하다보니 객관적 비교도 없이 그냥 막 사고보니까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단 몇 달러의 가격 때문에 경쟁이 된다는 얘기 많이 듣습니다. 500$하는 삼성 TV보다 495$하는 소니가 경쟁력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 얘기하면 당연히 소니가 더 좋으니까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것이 아니랍니다. 비슷한 수준이면 가격이 싼 것이 더 유리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비싼 것을 사면서 애써 비싼 이유를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가 궁색하게 설명해주는 얘기는 아마 우리 나라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니콘이나 캐논을 쓰는 사람들이 펜탁스를 쓰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싸구려(?), 또는 형편 없는 것을 쓰느냐고 묻는다니 제가 무슨 말을 해드리겠습니까?
세탁기나 냉장고, TV 등을 쓰면서 삼성이 나으냐, 엘지가 나으냐, 대우가 나으냐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심심할 때 하는 얘기입니다. 물론 미세한 차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차이가 다른 것으로 바꿀 만큼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맞는 비유를 대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성의 SM5, 현대의 EF소나타, 기아의 옵티마를 놓고 어느 것이 더 나으냐 하는 비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여기에다 비슷한 급의 BMW, 벤츠를 가져다 놓는다면 그것들이 서로 비교 대상이 될지 의문입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대부분 외제 차를 선호할 것이고 가격 차이가 나도 당연히 그 가격만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로에 나갔을 때, 외제차는 사고가 안 납니까? 시속 80Km로 가다가 부딪힐 때, BMW에 탄 사람은 안전할까요? 기분 상으로는 더 안전하고 쾌적할 지 모르지만 큰 차이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사진기, 더 좋은 렌즈를 갖고자 하는 것, 사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욕망이지요. 정말 기계에 아무 욕심이 없다면 그런 사진인은 도사가 된 분이거나 사진을 전혀 모르는 사진인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적절한(?) 욕망은 사람을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더 좋은 렌즈와 더 좋은 사진기가 더 좋은 사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잊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사진을 찍는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도 좋고, 그냥 심심해서 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것은 각자가 자기 취향에 따라 생각할 일이니까요. 또 누구도 거기에 간섭할 일도 아닙니다.
저도 돈만 많이 있다면 제일 좋다는 사진기 팍팍 살 것입니다. 하지만 제일 좋다는 사진기로 제일 좋은 사진을 찍지는 못한다는 것을 제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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