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2. 10. 11:52ㆍ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모레가 설입니다.
다들 좋은 명절되시고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지난 1년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핑계처럼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제가 몸 담고 있는 서울포토클럽의 붕괴였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필요하지 않지만 어찌 됬든 수 많은 회원이 빠져 나가고 몇 안되는 회원만 남아 있다보니 사진 찍는 일에 열중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혼자 나갈 수도 없고 해서 늘 경복궁이나 기웃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매주 일요일에 종로 세운 상가 앞에서 모여, 설악산으로, 춘천으로, 양수리로 돌아다녔을 것인데 그런 매주 모임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라, 아니 면허가 없어 혼자는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심하다가 차라리 내가 면허를 받아 혼자라도 다니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2월 초 부터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면허 시험을 보게 됬습니다.
남들은 책을 안 보고도 합격한다는 학과 시험에 98점이 자신 있다고 내기 까지 걸고 봤는데 망신스럽게도 68점을 맞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황당했습니다. 학원에서 준 문제집을 세 번 이나 풀어봤고, 당일에는 어느 예상 문제를 풀어도 100점 만점에 90정 이상이 나왔는데 시험에서는 그렇게 안된 것입니다. 1주일 뒤에 다시 응시 92점으로 합격을 했고, 기능시험은 두번이나 떨어지고 세번 째에 간신히 합격을 했습니다.
학원에 가서 한시간만 배우면 다 아는 기능인데 그것을 두번 씩이나 떨어졌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원에 나가 강사선생님들 보기가 민망스러웠습니다. 엊그제 주행시험을 봤는데 또 떨어졌습니다. 별 무리없이 제대로 한것 같은데 시험관이 '조금 더 연습하시고 한번 더 오십시오' 하더군요.
남들이 다 하는 운전이고, 사실 면허만 없지 그것을 누가 못하랴 생각했는데 무려 석달 째 거기에 매달려 있는 제가 참 한심스럽습니다.
2월 1일자 "대한사진영상신문"에 다사모 대표이신 김채영 님께서 올린 '지적 거품'에 대한 이야기가 공감이 가서 제가 몇 자 올립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며, 나도 저기에 가면 저렇게 찍을 수 있어. 나도 그런 렌즈만 있으면 저렇게 찍을 수 있어. 하는 것들이 지적 거품이란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남의 전시회에 가서 감탄하기 보다는 나도 저만큼은 찍는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없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그렇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지적 거품입니다. 물론 어느 사진이든 누구나 다 찍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사진하는 사람으로서 남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 사람이 그 사진을 찍느라고 흘린 노력은 생각지도 않으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운전하는 것이야 누구나 다하는 것인데 나라고 못할 것이 뭐 있나? 면허만 없을 뿐이지 생각한 것과 똑 같은 얘기 아니겠습니까?
전 새해에는 더 겸손해지고 더 부지런해져서 더 많은 사진을 찍겠습니다. 우리 좋은 사진을 더 많이 찍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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