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얼굴

2002. 2. 19. 09:06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지난 일요일에 용평에 갔습니다.
원래 계획은 무주로 가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는다고 갑자기 변경하여, 토요일 저녁 때 서울을 떠나 속사로 간 것입니다. 처음엔 여섯 명 정도로 인원이 잡혔는데 나중엔 놀러 가시는 분들 까지 해서 열두 명이 승용차 3대로 가서 속사의 포시즌 콘도에서 1박을 하고 용평으로 갔습니다.
스키장에, 카메라 배낭을 멘 사람들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라곤 우리 밖에 없었지만, 남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곤도라를 타고 발왕산 정상 부근 까지 갔습나다. 올 핸 눈이 적게 와서인지 횡계가 눈마을이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곳곳에 걸어 놓은 현수막 - 2010년 동계 올림픽은 강원도에서 - 와 유사한 글귀들만 초라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동네에서 동계 올림픽을 하겠다니? 너무 황당한 얘기로만 생각되었습니다. 아마 무주나 용평이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래도 한발 앞서는 용평이 이 모양이니 올림픽 어쩌구 하는 말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눈을 만들어서 스키장을 운영한다니 올림픽을 한다면 눈을 만들어 쓰면 되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용평에서 동계 올림픽을 한다는 것은 무리이고, 억지라고 생각됩니다. 꼭 무리해서 그런 것을 유치하고 또 애국심을 들먹거리며 국민들을 달달 볶아야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용평은 국내 대회나 치르기 좋은 곳이지 올림픽을 치르기엔 너무 문제가 많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은 저 뿐만 아니고 같이 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얼굴에 맞게 살면 좋을 텐데 분수에 맞지 않은 생각으로 엉뚱한 일을 저질러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고, 강원도가 올림픽을 유치한다니까 전북도 거기 뛰어든 모양인데 아니 무주에서 올림픽을 치르겠다구요?
아무리 생각을 좋게 하고 싶어도 용평이나 무주는 올림픽을 치룰 만한 얼굴이 아닙니다. 못난 얼굴에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다고 그것이 감춰지겠습니까?
어제 오랜 만에 만난 친구 얼굴을 찍으려하니까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절대 안된다구, 예전 같으면 모르지만 지금은 쪼글쪼글한데 어떻게 사진을 찍겠냐고 말합니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자기 얼굴에 연륜을 쌓아 살아 온 흔적을 담는데 그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사실 저도 머리가 자꾸 빠지는 것이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내 삶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드리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편치야 않습니다. 하지만 예쁜 얼굴은 예쁜 얼굴대로 못생긴 얼굴은 못생긴 얼굴대로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 아닐까요?
어느 잡지에서 보니까
"젊은 시절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안나 마니냐가 늙어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녀는 특별히 사진사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제 주름살은 수정하지 마세요. 그걸 얻는데 꽤 오래 걸렸거든요. 오케이?'"
이 글의 제목이 '우아한 여배우'였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한 말입니다. 남보다 고생한 사람의 얼굴은 덜 고생한 사람보다 더 늙어 보이고,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의 얼굴은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의 얼굴보다 삶의 흔적이 더 많이 나타납니다.
저는 그런 얼굴을 생각하면서 친구나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그 소중한 삶의 흔적이 보이는 얼굴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살아 온 흔적을 사진에 담고자 합니다.
잘 생긴 얼굴의 기준이 규정에 없는 것 처럼, 못 생긴 얼굴의 기준도 규정에 없습니다. 40억 사람의 얼굴은 다 다르지 않겠습니까?
다만 자신의 얼굴을 책임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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