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즐거움

2002. 2. 28. 22:36사,사,사(예전 다음 칼럼에 올렸던 글)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즐겁다' 라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나만 만족스러우면 될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진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고 얘기하고, 또 자기가 찍은 사진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런 모습인가?' 하고 반성한 적도 많습니다. 제 스스로는 제 사진을 가지고 거창하게 작품운운하는 것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누구나 다, 사진이 좋아서, 취미로 하니까, 라고 말하다가도 조금 사진에 대해서 알게 되면 자신이 예술을 한다고 자만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기록을 남기는 것이니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사진을 찍는 일이 가치있는 일인가?'라는 의문에 봉착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가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사진을 찍는 일이 단순히 그냥 '내가 좋으니까 찍는다'로만 생각하기엔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그러나 사진 찍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선뜻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사진 찍는 일 때문에 고민에 빠져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고, 그냥 좋아서 찍는 것만으로도 할만한 것이다 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소시민 님이 걱정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왕이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니, 내가 좋아서만이 아니라 무엇인가 사회나,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겠지요... 저도 그런 생각 때문에 걱정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일제 사진기에, 미제나 일제 필름과 그 부자재들... 어떻게 생각하면 국가적 낭비이고 생산성 없는 소비 중에 제일이 사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위해서만이라도 만족할만 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진은 충분히 찍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지난 일요일에 사진을 처음 시작하는 제자를 데리고 창경궁과 종묘에 갔습니다. 아주 기초부터 차근히 가르치고 싶어서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사진을 찍도록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수업만이 아니라 사진도 가르쳐야 제대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초를 튼튼히 다져주려고 열심히 설명하였습니다.
비록 값 비싼 사진기는 아니지만 낡은 수동 사진기를 다루면서 제자가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하였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사진 찍는 즐거움 중의 또 다른 하나입니다.
처음 사진기나 렌즈를 장만하면 그것으로 사진 찍고 싶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처럼, 처음 사진을 배우는 사람을 보면 제가 시행착오을 겪었던 것을 밟지 않도록 하려고 많은 관심을 쏟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의 작은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종묘와 창경궁을 걸으면서 혹 정배 님이 나오셨나 기웃거렸습니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67사진기를 들고 나이 지긋이 먹은 사람이면 물어봐야지 생각했는데 대부분 나이 어린 사람들 뿐이고 캐논이나 니콘 자동초점 사진기를 가진 사람 뿐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나 서로 확인하여 맞다면 그것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겠습니까?
저, 지난 20일에 드디어 면허를 취득하였습니다. 1종 보통으로 했는데 아직 차를 끌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시작이 반이라니까 곧 운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1종으로 한 것은 언젠가 15인승 봉고를 빌려 사진 찍으러 다니려고 이왕이면 더 큰 차를 운전할 수 있는 1종으로 한 것입니다.
제가 면허를 생각한 것은 순전히 사진 때문인데 이런 것들이 사진 찍으면서 얻는 작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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