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향을 생각하면서

2012. 2. 21. 17:57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랴.

 

정지용. 향수(鄕愁)

 

 

새를 잡겠다는 욕망은 어쩌면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를 잡을 도구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봄철에 새 새끼를 새집에서 꺼내오거나 겨울철에 약을 놓아서 잡는 것이라면 몰라도 맨 손으로 새를 잡을 수는 없었다. 중국소설수호지에 나오는 낭자 연청은 돌팔매로 백발백중의 실력을 보였다지만 요즘 어떤 새가 돌팔매를 맞고 떨어지겠는가?

 

팔매질을 잘하는 사람들은 꽤 잘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송아지 뒷발질에 개구리를 잡는 격이었지만 돌을 던져서 감이나 밤송이를 맞추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날아가는 새를 돌팔매로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얘기였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맞추기가 힘든데 어떻게 날아가는 것을 맞춘단 말인가?

 

팔매질도 어떤 감이 있어야 잘 하는 것 같다. 동네에서 팔매질을 잘하기는 영세 형이었다. 형은 새도 잘 잡았지만 팔매질도 잘 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아이들끼리 모여서 누가 더 멀리, 누가 어떤 목표에 근접하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하는 시합을 할 때가 많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내가 자신하는 것은 두 발로 걷는 것 하나 뿐이다. 그것도 산에 올라가는 것은 안 되고 그저 평지를 걷는 것, 이거 하나는 지금도 자신이 있으나 손으로 무엇을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넓은 물가에 가서 작은 돌을 주워 옆으로 던지면 물이 수면을 차고 날아올랐다가,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고 다시 날아오른다. 이런 것을 물수제비를 뜬다고 하였다. 나는 이것도 고작 잘 해야 두 번 정도였다. 잘 하는 아이들은 다섯 번 정도를 뜨게 만들지만 나는 아무리 잘 해보려 해도 두 번 이상은 넘기 힘들었다. 그러니 팔매질로 새를 잡는다는 것은 아예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가을이 되면 새총을 만드는 것도 연례행사였다. 아이들 새끼손가락 굵기의 나무가 Y자로 된 것을 잘라다가 그 양 끝에 노란 고무줄을 매어 그 가운데에 가죽으로 돌을 쌀 수 있게 만든 것이 새총이다. 새총을 만들려면 우선 좋은 나무를 구해야 했다. 가장 좋기는 쥐똥나무였으나 단풍나무나 시우나무도 고급에 속했고 나처럼 둔한 아이들은 밤나무를 구해서도 썼다.

 

나무가 Y자와 같은 거라고 했지만 윗부분은 U자처럼 둥근 것이 훨씬 고급에 속했다. 이렇게 U자형은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Y자형 나무를 불에 구워서(?) U자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했다.

 

고무줄은 아기들 기저귀를 맬 때 쓰는 노란 둥근 줄을 사서 썼다. 둥근 것이 아니면 탄력이 떨어져서 총으로 쓰기에는 알맞지 않았다. 나무는 구하기가 어려웠어도 어떻게든 구하면 되었지만 제일 구하기 힘든 것이 가죽이었다. 돌을 감쌀 가죽은 군화의 가운데 라고 하는 부분이 가장 좋았지만 군화도 보기 힘든 시골에서 그런 것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그래서 대부분 그 대용으로

다 떨어진 고무신의 고무를 오려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영 폼이 나지 않았다.

 

나도 다른 것은 다 구할 수 있었지만 그 가죽만은 구하지 못해 늘 고무신을 잘라서 만들었다. 이런 새총은 조금 위험한 거였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이 새총을 쏘다가 남의 집 유리창을 잘 깼다고 들었다. 시골에서는 유리창이 없어 그렇지는 않았으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출 수가 있어 가지고 노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였다.

 

더러 짓궂은 아이들은 아주머니들이 물동이를 이고 갈 때 몰래 쏘아서 동이를 깨뜨렸다고 하나 우리 마을에서는 그랬다가는 아주 혼이 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고 그저 새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새총보다 대나무로 만든 활을 더 좋아했다. 다른 것은 다 영주 형이 만들어 줘야했지만 대나무로 만드는 활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었다. 뒷동산에 들어가 대나무를 하나 살짝 잘라만 오면 다른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대나무도 아주 큰 것이면 곤란하였겠지만 어른들 새끼손가락만한 것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잘라 올 수가 있었다. 120센티미터 정도가 되게 대나무를 자른 다음 빨래 줄로 쓰는 나일론 줄을 잘라 양 쪽을 휘어서 묶으면 되는 것이니 나 혼자서도 만들 수 있었던 거다.

 

이 활에는 화살이 필요한데 활을 만들고 남은 대나무를 2센티미터 정도로 자르고 그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다음 수수대의 윗부분을 50센티미터 정도가 되게 잘라 끼우면 되었다. 이런 화살로 새를 잡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가을이 되어 추수가 끝나면 논에 나가 활을 쏘며 즐거워하였다.

 

아마 새가 이 화살을 맞는다면 간지럽다고 웃으며 날아갔을 거다. 새를 잡아서 어떻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잡고 싶었고 누가 새를 잡았다고 하면 그저 부러웠다. 지금도 산에 가다가 Y형으로 멋진 나무를 보면 새총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어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