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치지는 못했어도

2012. 2. 21. 17:59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어렸을 때 많이 하는 놀이가 딱지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자치기였다. 나는 이런 치는 것을 잘 하지 못했다. 지금도 고스톱이나 화투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런 걸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깊이 빠지지 않아서이다.

 

딱지는 종이를 접어서 만들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은 가게에서 파는 그림딱지였다. 많이 두꺼운 종이는 아니었지만 컬러로 인쇄한 운동선수 얼굴이나 군대 계급장, 만화에 등장한 로봇 같은 것들이 직사각형으로 그려져 있었고 등급을 표시하는 별이 하나에서 열까지 넣어져 있었다.

 

종이를 접는 것은 집에서 헌 책을 찢어 접으면 되었지만 이런 그림딱지는 돈을 주고 사는 거였다. 딱지는 상대편 것을 바닥에 놓고 자기 것으로 쳐서 뒤집어져야 먹는 것인데 나는 치는 것은 영 안 되었다. 그러니 치기를 하면 보나마나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딱지를 가지고 노는 것 중에 제일 많이 하는 것이 치는 거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불어먹기였다.

 

불어먹기는 여러 사람의 것을 쌓아 놓고 순서를 정해 입으로 불어 뒤집어지면 먹는 방식이다. 이것은 내가 상당히 잘 했었다. 네 명이 모여서 다섯 장씩을 내어서 쌓으면 스무 장이 되고 이것을 한 번에 다 먹을 수도 있었다. 불을 때 실수를 하면 한 장도 안 뒤집어지거나 아니면 위의 몇 장만 뒤집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뒤의 사람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나는 치기는 잘 못하였어도 부는 것에는 아주 자신이 있었다.

 

딱지를 따는 또 다른 방법은 조금 지저분하지만 침을 발라넘기는 것이다. 검지 끝에 살짝 침을 발라 그림딱지를 들어 올려 이것이 뒤집어지면 먹는 것이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침을 너무 조금 묻히면 딱지가 뒤집어지기 전에 떨어져서 실패하기 쉽고, 너무 많이 묻히면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흔들다가 실패한다. 나는 이 침 발라 먹기에도 상당한 능력을 보였다. 그러니 다른 애들은 치기를 원하지만 나는 불어먹기나 침 발라 먹기를 더 원할 수밖에 없었다.

 

구슬, 유리로 만든 구슬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중요한 놀이기구였다. 우리 어릴 때는 구슬을 다마라고 불렀으나 이 말은 일본말이어서 책에는 구슬치기로 나와 있었다. 이 구슬치기는 그냥 직접 치기로 먹는 것이 있었고, 구멍을 파서 그 구멍을 일정한 룰에 의해 먼저 통과한 사람이 먹는 방법도 있었다. 먼저 한 사람이 자기 구슬을 일정한 곳에 놓으면 다른 사람이 자기 구슬을 손으로 튕겨서 그 구슬을 맞히면 갖는 방식이다. 실수로 남의 구슬 앞에 까지만 튕겨 놓으면 보나마나 잃고 말았다. 나는 이것도 잘 하지 못해 하는 족족 잃기 때문에 누가 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았다.

 

구멍에 넣는 방법은 세로로 네 개의 구멍을 파고, 세 번째 구멍 좌우로 두 개를 더 파서 마치 십자가 모양을 만들고 여기를 일정한 순서로 통과시켜야 했다. 순서는 가위 바위 보로 정했다. 구멍과 구멍의 거리는 일정하고 구멍에 손끝을 대고 손으로 튕겨 다음 구멍에 넣어야만 계속 진행된다.

 

앞의 사람이 구멍에 넣지 못하면 다음 사람이 똑같은 순서로 시작해서 하고 먼저 이긴 사람이 상대 구슬을 갖게 된다. 나는 이것도 잘하지 못했다.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해봤자 잃는다는 얘기다. 잃을 것을 뻔히 알면서 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돈을 주고 산 것인데 잃는다는 것은 돈을 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구슬치기를 하다가 잘못 맞으면 유리가 깨어져 흠이 생긴다. 흠이 많이 생긴 구슬은 상품가치가 떨어져 아무도 가지려하지 않았다. 나는 구슬을 사기도 많이 샀지만 내 나름대로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구슬을 땅에서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손에서 가지고 노는 방법이었다.

 

먼저 1, 2, 3 세 개의 표식을 해 놓고 구슬을 손에 가진 사람이 양 손을 사용해서 구슬을 흔들다가 한 손에 잡고 내어 밀면 각 자가 그 사람이 가진 구슬의 개수를 짐작하여 세 표식 중의 하나를 택해 가는 것이다. 그럴 경우 1, 2, 3에 간 사람의 것을 확인한 뒤 손에 든 구슬을 내어 놓는다. 이때에 네 개를 쥐고 있으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1에 간 사람은 자기가 걸은 수만큼 먹게 되지만 23에 건 사람은 구슬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들이 걸었던 것을 다 주게 된다.

 

어떻게 보면 홀짝 먹기와 비슷하지만 홀짝 먹기는 하나의 선택만 가능하지만 이 방법은 세 개의 선택에다가 누구 하나는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 방법을 많이 했다. 이것도 일본에서 온 것인지 으찌, 두비, 이라고 했고 보통은 쌈 잡기라고 불렀다. 나는 이것에 아주 능해서 구슬을 잃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도박의 일종이라고 들었지만 항상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법이라야 통했다.

 

상대의 것을 직접 먹는 방법이 아닌, 게임으로 했던 것은 자치기와 비석치기였다. 자치기는 막대를 이용해서 하는 것이고, 비석치기는 돌을 가지고 하는 놀이였다.

 

자치기는 아주 작은 자를 이용해서 책상 위에서도 했고, 조금 큰 자를 이용해서 마당에서도 하고 어떤 것은 운동장에서 해야만 가능한 것도 있었다. 책상 위에서 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자를 튕기는 것이라 다칠 염려가 없었지만 밖에서 하는 것들은 큰 자(막대기)로 작은 자를 쳐내거나 튕겨내는 것이라 작은 자가 튕겨나가다가 수비하는 사람 머리에 맞거나 얼굴에 맞을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늘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리 쳐낼수록 게임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데다가 수비하는 팀이 나르는 자를 받으면 공수교대가 되기 때문에 자치기를 하는 것은 사실 위험한 놀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는 이런 자치기를 하는 일이 시나브로 없어져 갔다.

자치기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로 가을이나 겨울에 많이 했다. 벼를 베어낸 논에서 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비석치기는 여름에 많이 했다. 길에서도 할 수 있어 공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고 날이 차가우면 손이 시려 돌을 잡고 노는 것이 어려워서 그랬던 거다.

 

비석치기는 도시 아이들도 많이 했던 전래 놀이였다. 어렸을 때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같은 잡지에 비석치기 방법이 소개되기도 했었다.

 

비석치기는 조금 길쭉하고 넓적한 돌을 가지고 여러 코스를 거치면서 완성해나가는 놀이였다. 이것은 둘이서 하기보다 여러 명이 편을 짜서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편을 짜서 하면 못하는 사람이 끼어 있어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가 있어 어느 편이 이길 것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비하는 팀은 비석()을 한 줄로 세워 놓고, 공격하는 팀은 그 비석을 모두 넘어 뜨려야 다음 방식으로 넘어가고 하나라도 못 넘어뜨리면 공수교대가 된다.

 

나는 이런 놀이에 영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으니 더 안 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손발을 이용해서 재간을 부리는 것이라면 무엇 하나 잘 할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자신이 있는 것은 놀이가 아니라 먹는 거였다.

 

이제는 딱지 대신 카드로 바뀌었고 그 카드는 치기로 먹기보다 그냥 사서 가지고 노는 것이 되어 버렸다. 유리구슬도 요즘에는 구경하기 힘든 장난감이다. 그러니 밖에서 힘을 써가면서 하던 자치기나 비석치기가 없어지는 게 더 시류에 맞을 거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비석치기,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 요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무슨 얘기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할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