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T를 뿌려댔다

2012. 2. 21. 18:14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내가 지금도 궁금한 것 중의 하나는 이와 빈대가 사라진 이유이다.

어느 글에서 보니까 이런 얘기가 나와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과학자들은 지구상에서 생물 다양성(지구상에서 서식하는 생물 종류의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아주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놀랐다…… 이 모두는 결국 세계 인구가 너무 급격하게 증가한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와 빈대, 벼룩이 사라진 것이 인구 증가가 급격해서라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또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어떻게든 인류의 삶에 이익을 준다는 말은 믿고 싶어도, 이와 빈대, 벼룩이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일이지만 세상의 어떤 생명체도 다 유익하다는 얘기도 나는 믿지 않는다.

 

내게는 빈대나 벼룩보다 이가 가장 처절하게 와 닿는 해충이다. 이나 빈대가 정말 멸종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다고 믿는다. 몇 년 전에 아이들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발견됐다고 보도된 적이 있지만 요즘 애들이 어떻게 이를 알 수 있으랴…….

 

이나 빈대나 벼룩은 모두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해충이다. 빈대나 벼룩은 직접 사람 몸에 붙어살지는 않았지만, 이는 사람이 입는 옷 속에 숨어 시도 때도 없이 피를 빨았다. 특히 겨울철에 실로 짠 옷이나 속옷에 숨어 사람의 몸을 안식처로 삼았다. 이가 피를 빨면 가려워서 긁느라 피가 날 지경이었다. 거지들이 양지쪽에 앉아 옷을 벗어들고 이를 잡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비단 거지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군인들조차도 이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거다.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말아야할 때에 이가 피를 빨면 누구도 꿈틀거리지 않을 수가 없어, 움직이다 얻어맞은 얘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때문에 작전에 차질을 주고 전력을 약화시킨다고 하여 군인들이 옷에다가 이약 주머니를 달고 다녔을 정도이다. 내가 군에 갔을 때만 해도 이는 옷을 삶아야 죽는다며 부대마다 드럼통에 옷을 삶을 수 있게 만들어 놓고 거기에 살슬통(殺蝨熥)이라 써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철에는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고 옷도 자주 빨아 입지 않았으니 이가 서식하기엔 안성맞춤 아닌가. 옷을 벗어 추운 곳에 내어 놓으면 이들이 나와 기어 다닌다고 했으니 그 시절 시골에서는 어느 집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공부 시간에 앞자리에 앉은 아이의 등을 보면 이가 기어 다니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때는 이약 장사가 많았다. 광천 장날 장에 가 보면 이약이나 쥐약을 외치고 다니는 장사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약은 요즘말로 하면 강력 살충제였다. 살갗에 닿지 않도록 하라고 했고 옷에 묻혀서 밖에 내 놓았다가 입으라고 한 것을 보면 인체에 유해했던 게 분명하다.

 

이를 잡을 때는 약을 쓰기도 했지만 옷을 벗어 손으로 잡기도 했다. 이의 새끼를 서캐라고 했는데 옷을 벗어보면 이 서캐가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것들은 아직 피를 빨아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에 기어 다니니 그 느낌이 상상이 갈 거다. 옷의 연결부위에 이 서캐가 하얗게 붙어 있는 것을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것들은 잡아내기도 힘들었다. 너무 작아서 잘 잡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피를 빨아먹어 커다랗게 자란 이를 잡아 양 손톱으로 누르면 이가 터지면서 피가 튀었다. 이것은 모기를 잡아 죽였을 때 피가 나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지만 작은 것들은 죽여도 피가 나오진 않았다. 아주 작은 것들은 잘 잡히지도 않아서 내가 즐겨 쓰던 방법은 양초에 불을 붙여 그 촛농을 떨어뜨려 이와 함께 떼어 내는 거였다. 옷 섶 이어진 부분에 촛농을 길게 떨어뜨려 굳은 다음 그것을 떼어내면 거기에 이도 함께 묻어 나왔다.

 

남자애들은 머리를 짧게 깎아서인지 머리에 이가 없었지만 여자애들은 머리에도 이가 있었다. 이 머리에 있는 이는 옷에 있는 이와 종류가 다른 거라고 들었다. 머릿니를 잡기 위한 것으로 참빗이 있었다. 달력 같은 종이를 깔아놓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면 그 위에 이가 떨어져 꼼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화로에 털어 넣으면 이가 툭툭 튀면서 타 죽는데 그 냄새가 이상했다.

 

빈대는 주로 방의 흙벽 틈이나 천장 위에 있었다. 낮에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다가 밤에 자려고 불을 끄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였다. 이보다 두세 배는 컸고 가렵기도 이보다 훨씬 더 했다. 예전 시골집은 거의가 다 흙벽이었고 거기에 마분지를 바르고 벽지대신 신문지 등으로 도배한 집이 흔해, 그 갈라진 벽 틈에 숨어 살았다.

 

빈대는 밤이 되면 서식지에서 기어 나와 사람의 피를 빨아 먹었다.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지만 사람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으니 그 가려움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떤 사람이 군용 야전 침대에서 잘 때에 빈대가 너무 많아 침대 다리 네 곳에 살충제를 묶어 놨더니 빈대들이 천장으로 올라가서 몸 위로 떨어지더라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빈대는 아래에서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어떤 집에 가보면 벽에 빈대를 잡아 죽인 흔적으로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와 빈대에 대해서는 아주 실감나게 많이 당했고 잡기도 했지만 벼룩은 그 둘보다 상대적으로 덜 겪었다. 이것도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해충으로 악명이 높았다. 벼룩은 이보다는 훨씬 더 컸다. 그러니 사람 몸에 기생하지는 못했지만 기어 다닐 뿐만 아니라 뛰기까지 하여 멀리 도망갈 때 보면 단숨에 10센티미터 정도는 도약했다. 흔히 뛰어봐야 벼룩이라고 말하지만 그냥 기는 것보다는 잡기가 어려웠다. 벼룩은 사람에게 페스트와 발진열 같은 병균을 옮기기도 하여 어느 모로 보나 잡아 죽여야 했다.

 

다른 것들도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이 많았지만 이와 빈대, 벼룩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 모기는 여

름에만 있는 것이라 그래도 이것들에 비해서 나은 편이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농촌에서는 강력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에 많이 쓰던 DDT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미 그것을 한참 사용했던 뒤의 일이다. 그 살충제들이 어떻게 해를 줬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예전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많이 짧았던 것도 그런 것들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기승을 부리던 이와 빈대, 벼룩이 어느 날 소리도 없이 사라져서 정말 신기하다. 무슨 특효약이 나온 것도 아닌데 조용히 없어지고 말았다. 확인되지 않은 말로는 연탄을 때면서 다 사라졌다고 하나 이 말은 신뢰감이 떨어진다. 농촌에도 연탄을 때는 집이 있기는 했지만 어느 집이나 다 그랬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주변 환경이 위생적으로 바뀐 것에 힘을 입기는 한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 이가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이가 사라지면서 빈대와 벼룩도 같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끔 TV에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애들에게 하얀 가루를 뿌리며 소독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없어진 이가 그런 쪽에는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