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4. 17:58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산에 가면 먹을 것이 많았다. 봄에는 진달래꽃, 아카시아꽃을 먹었고 멍가도 먹었다. 떫은맛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입에 넣고 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가을이 되면 뽀루수, 아그배, 머루, 으름, 밤 등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먹을 게 사방에 있었다.
오서산에서 '다래'를 따 본 기억이 없지만 오서산에 다래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책에서 읽었던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는 구절만 떠올리면 '다래'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다래가 '목화다래'인 줄로 잘못 알았다.
목화다래는 목화의 열매로 이 열매가 아직 여물기 전인, 상수리 만할 때 몰래 따서 먹었다. 길가 밭에 목화를 심으면 지나는 애들이 목화다래를 다 따먹어 길가의 몇 그루는 아예 열매가 없었다. 그 달착지근하고 부드럽던 맛 때문에 아무리 따지 말라고 해도 딸 수밖에 없었고 어른들도 목화다래를 보면 아이들 모르게 따먹곤 했다.
내가 목화다래가 아닌 진짜 다래를 처음 본 것은 군에 가서다. 오서산에서 자주 봤던 넝쿨나무가 다래나무라는 것을 강원도 화천에서 알게 되었다. 다래도 종류에 따라 여러 모양이었지만 맛은 거의 한 가지다. 다래는 요즘 시중에서 파는 키위(양다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맛이다. 키위는 주로 뉴질랜드에서 나오고 다래와 같은 종이라고 한다. 마치 포도와 머루처럼 재래종과 외래종의 차이라고 하나 다래가 크기는 작아도 맛은 훨씬 좋다. 다래는 정말 먹을 만 했다. 제대로 익은 다래는 향도 좋을 뿐 아니라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나는 군에 있는 동안 다래와 머루를 무척 많이 먹었지만 머루는 내게 낯이 익은 것이었다. 머루는 옻밭들 담불에도 많았고 오서산 아래 야산에도 많은 것이어서 내게 색다른 것은 못되었다. 광제 살던 광삼이는 어디서 따오는지 머루보다는 알이 훨씬 굵어, 거의 포도 알만한 산포도를 자주 가져왔다. 그것을 어디서 따오는 것이냐고 물어도 가르쳐 주질 않았다. 어느 해인가 하도 여러 번 묻고 또 물었더니 시우나뭇골 위에 있는 오서산 끝이라고 가르쳐 주어 대식이를 데리고 갔다가 찾지도 못하고 벌레에만 잔뜩 쏘이고 온 적이 있다.
머루와 다래는 좀 깊은 산이라면 다 볼 수 있지만 으름은 추운 지방에서는 보지 못했다. 강화도에선 봤지만 경기 북부나 강원도 위쪽에선 으름넝쿨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기후가 변한 탓인지 서울에서도 으름넝쿨을 키우는 집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으름은 분재로도 많이 키우는데 겨울에도 그 잎이 지지 않고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산에 안 다니다보니 오서산 골짜기마다 으름이 넘쳐도 따 가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에 집에 으름넝쿨이 많아 가을이 되면 많이 먹을 수가 있던 나는 그 맛을 아직 잊지 못한다. 으름을 흔히 그 생긴 것 때문에 한국산 바나나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르다. 바나나는 열대 과일이고 으름은 한국 토종이다. 모양은 길쭉한 것이 비슷해서 사촌처럼 얘기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종이다. 으름이 크기는 작아도 맛은 훨씬 낫다. 억지로 익힌 것이 아닌 제대로 익어 벌어진 것은 그 맛을 어찌 물컹한 바나나와 비교할 수 있으랴?
난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어릴 때는 이름만 들었지 보지도 못했고, 20년 전에는 한 다발이 아닌 가지 하나에 2-3천 원씩이나 하던 바나나……. 한 때는 비싸서 못 먹었고, 한 때는 수입 농산물이라 안 먹었고, 지금은 물컹거리는 억지 단맛이어서 먹지 않는다. 그러나 으름은 그 맛이 독특해서 언제나 환영이다. 씨가 많아서 뱉기가 귀찮다고 하지만 그래서 더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지 않던가?
아그배도 그 독특한 맛이 가끔 기억난다. 다른 지역에서는 뭐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오서산 아래서 '아그배'라고 하면 은행 알만한 돌배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말 딱딱하고 떫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서리{霜}가 내리면 말랑말랑해지고 떫은맛이 많이 가셔 입에 넣으면 씹을 것도 없이 녹는다. 이 아그배는 다른 지역에서 본 적이 없다.
뽀루수는 그 크기가 작아 한 주먹은 따야 씹는 맛이 나지만 나뭇가지가 뾰족뾰족한 가시와 같아 손으로 훑을 수 없다는 것이 성가셨다. 그냥 한 알, 한 알 따서 씹는데 특별히 단맛은 없지만 산에서 목마른 아이들에게 군입거리는 되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 보리수라고 부르는 게 이거 아닌가 싶다.
뱀
딸기는 먹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산딸기는 서로 먼저 먹으려 했다. 뱀딸기라는 이름도 기분이 좋지 않지만 사실 아무 맛도 없는 것이 뱀딸기다. 그러나 산딸기는 땅 가까이 열리는 것이 아니고 맛도 괜찮았다. 산딸기는 종류가 여럿 있는데 내원사 아래로 매우 넓은 나무 딸기밭이 있어 여기에 딸기가 여는지 늘 궁금했다.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에 가면 복분자술이 유명한데 이것이 산딸기로 담근 술이다. 선운사에 갈 때마다 거기 있는 산딸기나무를 보면서 내원사 아래 산딸기나무를 떠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거다. 무르익어 농염한 산딸기는 먹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탐스러웠다. 마치 흘러내릴 것 같은 그 붉은 열매…….
우리가 어려서 '개복숭아'라고 부르던 것은 알고 보니 '산복숭아'였다. 경기도 복숭아 과수원에서 보니 개복숭아도 그 크기가 어른 주먹만큼이나 하고 빛깔이 너무 고왔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처럼 보기만 좋지 맛은 전혀 아니라고 한다. 우리 오서산 아래는 복숭아 과수원이 없어 개복숭아도 보지 못했으니 산복숭아를 개복숭아로 알 수밖에…….
꽃이 아름답게 피던 산골짜기의 산복숭아나무, 지금은 그것을 먹으려고 따는 사람은 없을 거다. 우리 어릴 때는 그 산복숭아, 다 커야 겨우 호두알 크기인데 그것을 먹겠다고 한 움큼씩 따서 가지고 다니느라 주머니가 불룩했고, 게다가 그 가느다란 껄 때문에 가려웠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밤은 어느 곳이나 많은 것이어서 오서산 아래라고 특별히 다른 것이야 없지만 우리 어릴 때는 밤 서리를 많이 다녔다. ‘서리’가 우리 고유어인지 일본말에서 온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예전에는 장난삼아 서리를 많이 다녔다. 일본말로 남의 돈을 훔치는 것을 쓰리라고 하니 이 두 말이 서로 다르다 해도 같은 어원일지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연습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진 무렵에 광석이와 둘이서 광제 뒷산으로 밤 서리를 간 적이 있었다. 나야 따라만 다닐 뿐이고 모든 것을 광석이가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기에 광석이만 믿고 자주 다닌 거였다. 뭐 밤 서리래야 바구니에 하나 가득 따 가지고 와서 발라내면 되는 것이고, 밤이야 그래도 흔한 것이어서 크게 욕될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산을 지키고 있던 주인에게 들켜 내가 붙잡히는 사건이 생겼다. 눈치가 빠른 광석이는 산에 사람이 있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내게 눈짓을 했지만 나는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올라갔다. 광석이가 잡아채는 바람에 그때서야 알았지만 서로 아래위로 길을 나누어 도망간다는 것이 그만 내 신발이 벗어져 나는 몇 걸음도 못 옮겨 잡히고 말았다.
얻어맞지는 않았고 거기서 딴 밤을 모두 들고 산 주인집까지 가져다주고 풀려났는데 광석이는 멀리 도망가서 나타나질 않았다. 별 수 없이 싸움에 진 개꼴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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