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4. 18:00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나는 벌과 지네를 두려워한다. 오히려 뱀은 그리 두렵지 않다. 시골에서 두려워할 것이 이것들밖에 더 있던가? 오서산엔 호랑이도 늑대도 사라진 지 오래이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뱀을 두려워할 것이지만 나는 뱀을 두려워한 적이 거의 없다. 아니 뱀 잡는 것을 좋아해서 뱀을 잡아 구워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다.
벌에 쏘이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이 붓는다. 얼굴에 쏘이면 눈을 뜨지 못하게 붓고, 팔에 쏘이면 팔을 움직이지 못할 만큼 부었다. 무슨 말벌이나 옷바시가 아니라도 벌에 쏘이면 많이 붓고 통증이 심해서 벌만 보면 겁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참뱅이 꼭대기에서 오성리 넘어가는 경계쯤에 있는 이름 없는 절에 가서 벌에 쏘인 것이 며칠 동안 부기가 빠지지 않고 아파서 혼이 난 적이 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인데 초가로 되어 있고, 끝 방에 불단을 모시고 부처님을 안치해 놓은, 반만 절인 곳이었다. 오서산 아래에는 머리 깎은 스님이 아닌 반승(半僧) 반속(半俗)의 무속인(巫俗人)들이 이런 절을 모시고 있는 곳이 많았다. 나도 1년에 서너 차례씩 이 절에 심부름도 가고 불공드리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기도 했다. 외가 쪽으로 아주머니가 되시는 분이 거기 계셨고 그분이 나를 유달리 귀여워 하셔서 더 자주 갔던 거였다.
늦여름이라 개금이 다 여물어 절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잔뜩 따서 먹었고 주머니엔 집으로 가져 갈 것이 한 움큼 들어있었지만 조금 더 따려고 산신각 근처까지 갔다. 산신각은 제를 올린 뒤에 비는 제단이었다. 돌로 된 길을 따라 50미터쯤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산신각은 길쭉길쭉한 돌을 세워 울타리를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 안에 개금나무가 하나 있고 거기에 탐스러운 개금이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어린 마음에 ‘저기 것을 따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그리로 갔다. ‘여기에 와서 절을 많이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고 자위하면서 손을 내밀었더니 갑자기 윙- 소리가 들리더니 아주 작은 노란 벌 하나가 어디서 날아와 오른 쪽 이마 위에 침을 박았다. 얼마나 아프고 놀랐는지……. 이마가 퉁퉁 부어 며칠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산신님이 노하신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때부터 어디서 벌 소리만 나면 소름이 끼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싸리나무 씨를 받아오라는 과제를 준 적이 있었다. 6학년은 중학교 입시 준비로 제외되었지만 1-5학년은 다 해당되었다. 벼가 누렇게 익은 가을 들판을 지나서 용배 우리 산으로 또래, 또래 짝을 이루어 싸리나무 씨를 훑으러 갔다. 우리 산 쪽으로 가다가 누군가가 만중이 형네 산에 참나무가 많으니 상수리를 따자고 하여 그쪽으로 들어섰다. 참나무 근처에 가기도 전에 누가 옷바시집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옷바시다"하는 소리를 듣고는 뒤도 안 보고 달렸으나 우리 집까지 와보니 여남은 군데도 넘게 쏘여 온 몸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두드러기가 일었다. 독감에 걸린 것처럼 열이 나고 헛소리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할머니가 기동이네 변소 지붕 짚을 빼다가 태워 연기를 쏘이고 타던 짚으로 등을 쓸어내리면서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셨다. 그리고는 꿀물을 마셔야 된다고 한 대접 타 주셨다. 어떻게 두어 시간 지난 뒤에 겨우 가라앉았다.
이러다보니 벌이라면 나는 늘 쫄기 마련이다. 벌에 강한 사람은 바다리에 쏘여서는 붓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난 바다리에 쏘여도 퉁퉁 붓는다. 아마 벌에 약한 특이체질인 것 같다.
바다리는 표준말로 하면 '쌍살벌'이다. 이 벌은 나뭇잎 뒤에 집을 짓는데 벌집이 아기들 주먹 만한 크기로 많아야 대여섯 마리가 함께 산다. 벌의 크기는 2센티미터 정도로 옷바시보다는 많이 크지만 별로 독하지는 않다. 건드리지 않으면 크게 대들지도 않아서 바다리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옷바시는 표준말이 땅벌이다. ‘옷바시’라는 말은 우리 충청도 방언이고 충북이나 강원도에서는 '땡삐'라고 부른다. 몸의 크기는 바다리보다 훨씬 작지만 수백에서 수천 마리가 한 집에서 산다. 옷바시는 집을 땅 속에 짓는데 무척 크고 다층 형식이다. 사람들이 짓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바로 이 옷바시가 지은 벌집을 보고 착안한 것이 아닌가 싶다. 벌이 활동하는 계절엔 누구도 이 벌집을 건드리지 못한다. 간혹 벌이 드나드는 구멍에 농약을 뿌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할 뿐이지 벌집 자체를 파괴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실수로 건드리면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쏘아대기 때문이다.
가을에 벌이 드나드는 구멍을 잘 봐두었다가 추운 겨울에 파내면 그 고층 아파트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썰매를 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벌집을 캐러 간다. 한쪽에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놓고 벌이 드나들던 구멍을 중심으로 파 내려가면 7-10층의 다층으로 된 벌집 속에 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벌은 추위에 약해서 겨울에는 날지도 못한다. 더러 용기(?) 있는 벌들은 불 속으로 날아들었다가 타 죽기도 하지만…….
언젠가 한번은 벌집 한 층을 얻어서 집 옷장 서랍 속에 넣어둔 적이 있었다. 한참 잊었다가 어느 날 열어보니 벌이 득시글거렸다. 얼마나 놀랐던지……. 요즘 서울 종로나 경동시장 같은 곳에 가보면 벌 애벌레나 벌집을 신경통 약이라고 팔던데 이게 바로 옷바시의 집이다. 이것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시골에서도 예전에 약으로 썼다는 말은 들었다. 어느 글에서 보니까 이 옷바시 집이 해소 천식에 아주 좋다고 나와 있어서 나도 하나 구해 먹을까 생각 중이다.
충청도 지방에서 동동주를 옷바시라고 부르는 것은 그 빛깔이 서로 닮은 데서 나온 말이다. 옷바시는 노란 색을 띠고 동동주도 약간 노란 빛이 돈다. 이 동동주는 맛이 좋다고 계속 앉아서 마시다가 일어나지 못하게 취한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하지만 실상 옷바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 어릴 땐 큰 벌을 왕텡이, 더 큰 벌을 쇠왕텡이라고 불렀다. 왕텡이는 주로 호박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쇠왕텡이가 말벌이다. 호박꽃이 한창 필 때 보면 왕텡이들이 꽃 속을 넘나들면서 꽃가루를 날라 수정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을 고무신발로 채여 빙빙 돌리다가 놓으면 벌이 기절하거나 기진맥진하여 비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벌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말벌이다. 이 말벌에 쏘여 죽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머리에 쏘이니 머리가 수박 갈라지듯 했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다. 내가 알기론 이 말벌은 천적이 없다.
양봉하는 집에 말벌이 하나 나타나면 벌통 하나가 다 결단날 정도였다. 말벌이 그 큰 입으로 꿀벌을 한 번에 두 동강이를 내고 만다. 꿀벌을 잡아 꿀을 빼어 먹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양봉하는 곳에 한번 나타나면 꿀벌의 시체가 가을날 바람에 낙엽이 지듯 떨어지곤 했다. 같은 벌끼리인데도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으나 이 말벌 때문에 결단이 난 벌통을 여럿 보았다. 한봉(韓蜂)은 어떤지 모르지만 양봉의 천적이 같은 벌인 말벌이라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말벌보다 더 무서운 거는 장수말벌이라고 들었다.
나야 깔 베러 다니거나 풀 깎을 일이 없었으니 벌에 쏘일 일도 드물었지만 그런 일을 하다보면 벌에 쏘이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벌에 쏘여도 조금 붓거나 부르트고 말지만 나는 어쩌다가 한번 쏘이면 아주 혼이 났다. 남들이 우습게 생각하는 벌에 쏘여도 퉁퉁 부어 며칠씩 고생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사진 찍다가 벌을 만나면 정말 벌벌 떨어서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난 누가 벌에 쏘였다는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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