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마구리만 먹었다

2012. 2. 24. 18:04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나는 미식가라고 자처하지는 않지만 내심으로는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고 자신한다. 요즘 소위 '미식가'라는 사람들을 보니까, 어디에 무엇을 잘 하는 집이 있다면 이리저리 물어서 꼭 가보고, 직접 먹어서 맛을 확인하는 게 자랑이다. 나는 그런 부류까지는 아니다. 다만 맛을 조금 아는, 맛있는 것을 즐겨 먹는 음식 애호가일 뿐이다.

 

내 기억에 목구멍을 넘어가는 음식 중에 가장 미묘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경칩(개구리 알)이다. 식초와 고춧가루, 간장으로 양념을 한 경칩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는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주 어려서 경칩을 전후한 시기가 되면 새벽에 일어나 이 개구리 알을 뜨려고 용배 산 아래 논들을 찾아다녔다. 이것은 당일 것만 먹을 수 있지 하루만 지나면 알이 자라고 분열이 되어 처음엔 한 입 거리 밖에 안 되던 것들이 손바닥만큼씩 커진다. 어른들은 신경통에 좋다고 하여 이 경칩을 먹었지만 나는 순전히 그 목구멍 넘어가는 맛 때문에 이것을 먹고자 했었다.

 

맛은 혀끝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미식가가 아니다. 맛을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몸 전체로 느낄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 미식가라 할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맛을 느끼는 세포는 혀끝에만 있다고 하나 그것은 재미없는 얘기다. ‘미식가라고 하면 어디에 맛있는 집이 있다는 얘기가 늘 들려와야 하고,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말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맛을 찾아내고 느끼는 수준이 되어야 반열에 들 수 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식용 개구리라는 것을 보고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 식용 개구리라는 것을 보니 우리가 어려서 먹던 그 개구리가 아니었다. 비쩍 마르고 길쭉한 것이 우리가 구워먹던 '왕마구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식용 개구리는 경칩을 낳던 산 밑의 그 개구리였다. 예전엔 겨울이 되면 절 아래 산간 마을의 수족관을 채우고 있는 못 생긴 그 개구리들을 볼 수 있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이 개구리를 먹을 기회가 있어 봤더니 그 깡마른 몸통을 통째로 먹는 것이었다. 남들이 하도 권하기에 두어 마리 다리만 떼어 먹었으나 영 입맛이 당기질 않았다. 어려서 우리가 먹던 개구리가 아니어서 안 당겼던 거다.

우리 어릴 때는 개구리, , 메뚜기, 우렁이 등 동물성 단백질원이 많았고, 우린 그것들을 잡아먹으면서 자랐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되고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면서 배우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먹은 것이 개구리였다.

 

초가을 쯤 되면 애들끼리 모여 놀다가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되면 개구리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그 중에서도 아주 큰놈을 왕마구리라고 불렀다. 왕마구리를 잡아 뒷다리만 끊어낸 뒤에 다리 껍질을 벗기고 나뭇가지에 걸어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구웠다. 다리를 잘라낼 때 허리 부근을 돌로 찧었다. 개구리를 불에 구우면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피식피식 연기가 나며 익는데 그때는 소금도 없이 그냥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기에 소금까지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럿이 먹으니까 많이 잡아도 늘 부족했고, 서로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했다. 개구리를 다 먹은 뒤엔 그냥 일어서기가 그래서 개구리 구워먹은 자리에 논두렁의 두렁 콩을 뽑아다가 얹어놓으면 지지직 소리가 나면서 콩깍지가 벌어진다.

 

다른 사람이 먹을까봐 덜 익은, 비린내가 물씬 나는 콩도 먹었다. 이것이 소위 콩서리인 셈인데 주인이 있는 콩이니 많이 뽑아올 수는 없고 그것도 역시 늘 적은 양이어서 입가에 껌정 칠만 잔뜩 하고는 아쉽게 일어설 때가 많았다.

 

시골 아이들은 먹어서는 안 될 것과 먹어도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개구리 중에도 먹어서는 안 되는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런 것들은 아예 잡지도 않았다. 어느 책에서 보니 인디언들이 꼭 필요한 것만 잡고 먹는다고 하던데 우리도 예전엔 다 그렇게 살았다.

 

어려서 침을 흘리는 아이들은 늘 옷 앞자락에 침이 떨어져 지저분했다. 그때야 런닝셔츠 하나만 입고 다닐 때 아닌가? 침이 덕지덕지 붙는 아이들은 커다란 미꾸라지를 구워서 먹으면 침을 흘리지 않는다 하여 누가 물고기를 잡아오면 얻으러 오는 어른들이 있었다. 아마 그 미꾸라지는 아궁이 남은 불에 올려놓고 구웠을 거였다.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의 미꾸라지라면 한 마리만 구워도 먹을 만했다. 그렇다고 한 마리만 줄 수는 없는 것이라 누가 얻으러 오면 탐탁해 하지 않았다. 미꾸라지가 흔할 때도 그랬는데 요즘은 오서산 아래에서 미꾸라지 구경이 어렵다고 하니 남이 잡은 것을 얻지는 못할 거다.

 

어떤 아이들은 밥 탐을 많이 했다. 세 끼니를 다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 보챘다. 이런 아이들에겐 쥐를 구워 먹이면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구워 먹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그런 때는 쥐덫을 놓아 잡은 쥐를 구해야 했다. 이런 것들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미꾸라지를 구워 먹었는지, 쥐를 구워 먹었는지는 금방 소문이 퍼졌다. 두더지는 그런 처방으로 먹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보약이 아니었나 싶다. 두더지는 잡으면 어느 집에서나 푹 과서 먹었던 것으로 미루어 몸에 좋으니까 먹은 거였다.

 

나는 뱀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내가 잡은 뱀의 숫자는 꽤 많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뱀을 많이 잡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때문이다. 선생님이 무슨 임파선 결핵인가가 있어 뱀이 몸에 좋다고 나더러 뱀을 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이때부터 선생님께 잡아다 드린 것도 꽤 되고 친구들과 구워 먹은 것도 꽤 된다.

 

뱀을 구워 먹었다고 하면 마치 못 먹을 것이나 먹은 것처럼 야단을 떠는 사람들이 많지만 껍질만 벗겨 놓고 보면 뱀인지 장어인지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맛도 그렇다. 난 품위를 지키느라 물뱀이나 누룩뱀같은 것은 먹지도 않고 잡지도 않았다. 최하 독사 정도는 되어야 잡았으니까…….

 

동네에 돼지를 잡을 때 가서 구경하면 돼지고기 몇 점을 날 것으로 얻어먹을 수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쇠고기는 날로 먹어도 돼지고기 날로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잡을 때에 한 해서 돼지고기도 날로 먹는 부위가 있었다. 난 사실 그 때에 제일 먹어보고 싶은 것이 선지피였다. 돼지 멱을 따면 피가 한 양푼 가까이 나오는데 어른들은 이것을 그냥 들고 마시면서도 애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닭을 잡으면 똥집이라 부르는 모래주머니는 거의 다 날로 먹었다. 이것은 잡는 사람이 먹는 것이어서 나도 닭을 잡을 때에 꼭 내가 챙겨 먹었던 거다. 지금은 고기를 날로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무척 밝혔다. 아는 분이 사슴피를 먹으러 가자고 여러 번 말씀을 주셨지만 그것은 싫었다. 그렇게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이다.

 

'혐오식품'이란 얘기를 듣고 있으나 식품 중에 '혐오'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난 보신 식품은 밝히지 않는다. 다만 먹는 것은 가리지 않을 뿐이다. 어려서 잡아먹던 개구리, 미꾸라지 등은 이제 잡을 사람도 없을 거다. 요즘 애들이 징그럽다고 잡기나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