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참외도 임자가 있었다

2012. 2. 24. 18:11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요즘 구경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개똥참외이다.

개똥참외는 누가 심어서 난 것이 아니라 길가에 씨가 떨어져서 스스로 자란 거였다. 개똥참외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개가 참외 씨를 주워 먹고 눈 개똥에서 싹이 튼 것이라고 해서 된 것이지만 실제 개똥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참외 씨가 길가에 떨어진다고 해서 다 싹이 난다면 말이 되지 않지만 우연히 잡초 속에서 참외가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이른 참외를 먹고 버린 것에서 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시골의 웬만한 길도 대부분 시멘트로 포장이 되었고 길가에 아예 제초제를 뿌려 잡초가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지만 나 어렸을 때는 시멘트 포장길은 상상도 못 했으며 길가에 풀이 무성해 소를 매어 놓거나 소에게 풀을 뜯기러 나가곤 했었다. 그런 길가 아무 곳에서나 다 참외가 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사는 가까운 곳에서 흔히 개똥참외를 볼 수 있었다.

 

개똥참외 넝쿨에 꽃이 피고 참외가 달리는 것은 보았지만 익은 것을 따 먹은 기억은 없다. 그냥 자라다가 죽거나 아니면 누가 덜 익은 것을 먼저 따가서 그랬을 거다. 익을 때까지 놔두면 누군가가 먼저 따 먹을까봐 조금 덜 익었을 때라도 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참외 덜 익은 것은 써서 먹을 수가 없었으니 그냥 한 입 베어 물고는 버렸을 거였다.

 

개똥참외는 임자 없는 길가에 자라는 것이니 주인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임자가 있었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저거 내꺼하면 그 사람 것으로 인정해 줬다. 지금 같으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 같지만 그 때는 그랬었다. 개똥참외 넝쿨 자체를 인정하기도 했고 거기 열린 참외를 인정하기도 했었지만 개똥참외는 그 크기가 탱자보다 조금 커서 사실 먹잘 것도 없었다.

 

길을 가다가 이런 개똥참외를 먼저 발견하면 무슨 횡재나 한 것처럼 좋아했다. 또 다른 아이들은 먼저 발견한 아이를 부러워하곤 했었다. 그게 먹을 만큼 자랄지 아니면 언제 소에게 먹혀 없어질지 모르지만 보는 것만으로, 자기 것이라고 소리치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일이었다. 나야 이런 일에 늘 뒷전이었지만 나와 좀 더 친한 아이가 발견한 것만으로도 내가 찾은 것처럼 좋았다.

 

개똥참외라고 하면 듣기가 좀 거북해서 그랬는지 개똥참외를 방울참외라고도 불렀다. 개똥참외가 정확히 방울참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참외밭 한구석에 방울참외라고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 방울참외는 종자가 그런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탱자보다 조금 크고 과육이 너무 얇아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노랗게 익은 것은 보기에는 그럴 듯 했지만 먹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그래도 먼저 본 사람의 것이라고 인정해 주던 그 시절의 인정이 좋았다.

 

어릴 때에 동네에서 같은 또래의 예쁜 아이를 보고 그 애를 자기가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샘이 나는 아이들은 그 아이가 무슨 개똥참외냐고 비아냥거렸다. 개똥참외처럼 먼저 말했다고 해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였을 거다. 그러니까 개똥참외는 먼저 점찍는 자가 임자지만 사람은 그렇게 인정할 수 없다는 불만이었다.

 

우리 어릴 때는 나이롱참외가 아주 유행이었다. 요즘은 참외도 금싸라기참외가 실세이지만 예전에는 나이롱참외였다. 노랗게 익고 줄이 길게 흠처럼 나 있던 나이롱참외. 이것은 말로만 듣고 보기만 했지 실컷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도시이든 시골이든 참외를 사 먹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우리 어려서는 무슨 행사나 있어야 먹는 귀한 거였다.

 

라디오에서 들으면 참외 먹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그 시절에는 그냥 서울 사람들이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나이롱참외를 먹을 때에 우리는 길가에 임자 없이 자라던 개똥참외라도 먹을 수 있으면 흐뭇한 일이었다.

충남 성환 지방에서만 난다고 했던 개구리참외는 요즘에 보는 개구리참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거였다. 요즘 국도나 지방도로를 지나다보면 개구리참외라고 써 붙여놓고 파는 푸르뎅뎅한 참외들이 있지만 이것은 내가 어려서 본 개구리참외가 아니다. 개구리참외는 무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골이 패여 울퉁불퉁했었다. 이 참외는 약용으로 쓰여 가격이 더 비쌌다고 들었으나 먹어 본 기억은 없다.

 

광성리 고랑은 참외나 수박을 심는 집이 별로 없었다. 얘기 듣기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집도 참외를 심어 팔았다고 하나 내 기억에는 없다. 우리들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인가에 정혁이네가 참뱅이 아래 외진 곳에다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그 집 뒤가 아주 야트막한 작은 산이었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 같았지만 작은 소나무가 몇 그루 있어 명색이 산이라고 불렀다. 이 집 뒷산에다가 정혁이 아버지가 구덩이를 파고 참외와 수박을 심었었다.

 

그 시절에는 시골서 여느 때에 과일을 사다 먹는다는 것은 꿈에도 없었고, 무슨 잔치나 제사가 있어야 여름철 수박이나 참외를 구경하던 때라 동네에 참외밭이 있어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어쩌다 가서 얻어먹기도 했지만 정혁이네도 어려운 살림에 보탬을 하려고 심은 것이라 우리가 놀러가도 선뜻 따 주기가 어려웠고, 또 자주 가면 서로 난처한 일이라 자주 가지는 않았다.

 

정혁이네 참외밭에 누구 짓인지 자꾸 서리해간다는 얘기가 들렸다. 주로 늦은 밤에 따 가니까 우리 같은 조무래기들은 의심받을 군번도 아니어서 그런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참외와 수박을 서리하다가 들킨 것이 선장이 형 또래였다. 우리보다 5, 6년 선배가 되는 형들이 따러 갔다가 잡힌 거였다. 자기들은 처음이라고 우겼지만 그런다고 조용히 끝날 일은 아니었다. 아마 한 사람당 쌀 몇 말 값을 물었을 거다. 그동안 본 손해를 전부 배상하게 한 거였다. 그때는 그런 일로 경찰서에 가지는 않았고 어른들끼리 상의하여 적정한 선에서 해결했었다.

 

내건너 용환이 형네도 집 옆의 밭에 참외를 심었었다. 광천 장에 내다 팔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팔기 위해 심은 거였다. 여기서는 더러 참외를 얻어먹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파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 자주 가지는 않았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참외 넝쿨이 시드는데 이 때쯤 되면 마을 사람들에게 와서 참외를 따 가라고 하였다. 이미 철이 지난 터라 참외는 노랗게 익은 것도 아무 맛이 없어, 어른들은 익은 것보다 덜 익은 파란 것들을 따가서 장아찌를 담았다.

 

다른 과일들은 산에도 있고 집에도 있었지만 과일이라 말할 수도 없는 참외, 수박, 토마토는 우리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사과나무나 배나무 같은 과일나무가 잘 되지 않는다고는 들었지만 수박이나 참외는 바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인데도 심지 않았다. 밭에는 그저 보리나 심었을 뿐이다. 그러니 그 시절에는 길가의 개똥참외를 보고도 반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똥참외는 보살펴주는 이도 없었다.

외진 곳에 가만히 소문 없이 살았다.

우연히 들여다본 속살은 뜻밖이었다.

손 타지 않은 맛깔이 나쁘지 않았다.

개똥참외를 눈여겨보는 이가 생겼다.

 

강세화. 개똥참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