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8. 16:41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나는 먹는 것은 좋아해도 잡는 것엔 소질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잡을 때의 기분으로 물고기를 잡는다고 하나 나는 절대 아니다.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그저 먹을 때만 불러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상하게도 우리 동네 냇가에는 물고기의 종류가 드물었다. 그냥 눈에 띄는 것은 가장 흔한 것이 중고기라 불리는 버들치였고, 새우, 송사리, 미꾸라지가 전부였다. 보이지 않는 돌 속에 뱀장어가 있었지만 그것은 쉽게 잡히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우리 동네에서 아래쪽으로 500미터만 내려가면 새뜸이다. 새뜸 냇가에는 붕어도 흔하고 피라미, 모래무지, 갈겨니 같은 것들이 있었고 고개 하나 넘어 상풍 냇가에는 구구리, 쉬리, 치리, 가물치 등이 있지만 유독 우리 동네 냇가에는 물고기 종류가 적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성벌 냇가에서 새우가 사라진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냇가에 새우가 지천으로 많아 그물이 없이 조리만 가지고도 새우를 잡을 수 있었다. 이 새우가 토하(土蝦)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엄청 많아서 눈으로 봐도 떠다니는 것이 보였고 그냥 맨 손으로도 잡을 수 있어 그것을 조리로 떠다가 무를 넣고 지져 먹었다. 맛이야 크게 좋을 리가 없었지만 자주 먹었다.
이 새우는 크기가 1센티미터-1.5센티미터 정도여서 요즘 저수지에서 잡히는 새우보다는 훨씬 작았다. 그렇게 흔했던 새우가 지금은 완전히 멸종이 되어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다른 것들이 사라진 것은 크게 아쉽지 않으나 냇가에 새우가 사라진 것은 정말 의문이고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새우는 지금 어디를 가도 볼 수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냇가나 논에서 잡는 물고기의 주종은 미꾸라지와 중고기였다. 송사리는 풀잎을 뜯어먹어서 그 맛이 쌉쌀하다고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거라도 많이만 잡을 수 있으면 환영이었다. 이것은 우리 동네 냇가에 그만큼 다른 물고기가 없었다는 증거다. 송사리라도 한 냄비거리를 잡으면 고추장 넣고 바짝 졸여서 먹었다.
중고기는 송사리보다 커서 어른 가운데 손가락만큼씩은 했고 주로 산 아래 도랑에 많았다. 물이 맑은 곳에서만 자라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무척 날쌔게 움직여 잡기가 쉽지 않았다. 큰 것은 한 뼘 가까이 되는 것도 있어 먹을 만큼 살이 많았다. 물고기를 잡으러 가서 중고기를 잡으면 좋아했던 것은 붕어와 달리 배를 따지 않고 먹었기 때문이다.
간혹 큰 비가 오고 나면 앞 냇가에 손바닥만큼이나 되는 붕어들이 올라왔다가 잡히곤 했으나 붕어는 보기에는 좋아도 가시만 많았고 배를 따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먹는 데에는 별로 각광받지 못했다.
오서산 아래에서 물속에 가장 흔한 것이 가재와 다슬기라고 말하겠지만 예전에는 미꾸라지와 미꾸리도 아주 흔했었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같은 말 같아도 다른 종이다. 미꾸라지는 수염이 길고 몸통이 납작하며 꼬리 가장자리가 날카롭다. 미꾸리는 수염이 아주 짧으며 몸통이 둥글둥글한 편이고 꼬리 가장자리가 평평하다. 그 때는 어른들이나 애들이나 물고기 잡으러 간다면 이 미꾸라지나 미꾸리 잡으러 가는 거였다.
성벌 동네가 가난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산골이라 필요가 없어서 그랬는지 우리 동네엔 그물을 가진 집이 없었다. 그저 얼멩이(얼레미?) 하나만 가지면 고기 잡는 장비는 더 필요가 없었다. 얼멩이는 가루를 내리는 체와 똑같이 생긴 것으로 둥근 틀 바닥에 철망을 댄 거다. 가루를 내리는 체는 천으로 되어 있어 물이 잘 빠져 나가지 못하지만 얼멩이는 구멍이 송송 뚫린 철망이라 물속에 집어넣어도 물이 그대로 흘러간다. 이 얼멩이를 물 속 가장자리나 수초에 대고 발로 흙이나 풀을 자작자작 밟으며 고기를 몰아서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잡았다. 상당히 원시적인 방법 같지만 이 얼멩이는 오서산 아래에서 물고기 잡을 때 상당히 유용하게 쓰였다.
여름철이면 멱 감기 겸해서 자주 나갔지만 봄철에 비가 온 뒤 작은 도랑이나 물꼬를 뒤지면 미꾸라지를 한 사발 가까이 잡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봄,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 어디서 올라왔는지 미꾸라지가 길 위에 마당가에도 돌아다니곤 했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지붕 위에서도 떨어져 내려왔다고 하고, 빗줄기에 같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들었다. 이것은 우리 마을에서만 들은 얘기가 아니다. 다른 곳에 가서도 미꾸라지가 하늘로 오르려다 떨어졌다고 들었으나 왜 이런 현상이 있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미꾸리는 ‘구레논’이라고 하는 ‘수렁논’에 많았다. 수렁논은 논 자체에서 물이 나는 곳이라 사철 물이 일정량 고여 있어 미꾸리의 서식처로 알맞았다. 가을에 벼를 베어 내려면 이런 논은 도랑을 쳐서 물을 빠지게 해야 하는데 우리 아주개 논이 수렁논이라 여기 도랑을 칠 때면 어른 손가락 굵기의 미꾸리를 반 양동이 정도씩 잡을 수 있었다.
이 미꾸리를 집에 가져와 소금을 한 주먹 뿌리고 호박잎으로 덮어 놓으면 자기들끼리 움직이고 엉키면서 뱃속의 흙 염을 다 뱉어 놓는다. 그렇게 10분만 지나면 다 깨끗해지고 힘이 빠져 맑은 물에 몇 번 헹구어 내면 더 손 볼 것도 없었다. 여기다가 국수를 넣고 끓이면 마을 사람들이 다 와서 잔치판이 벌어지곤 했다.
늦가을에는 논가에 있는 듬벙 물을 품어내서 그 안에 있는 물고기를 다 건져 내오는 일도 했다. 지금이야 듬벙도 다 없어지고 물 푸던 기구도 다 없어졌지만 그때는 봄철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듬벙이 많았고 듬벙에서 물을 논으로 퍼 올리는 데 쓰던 용과 쫄대가 있었다.
용은 함석으로 만든 직육면체를 비스듬히 잘라 내어 뚜껑이 달린 쓰레받기처럼 생긴 것으로, 그 끝에 줄을 맬 수 있는 고리가 있어 네 곳에 줄을 매어 두 사람이 양쪽에서 마주 서 물을 퍼 올리던 기구다. 서로 호흡만 맞으면 물을 하나 가득 채워서 올릴 수 있었지만 상당한 노력과 힘을 필요로 하는 기구였다. 이 용은 책을 찾아보니 이름이 맞두레로 나와 있었다.
쫄대는 직경이 15-20센티미터쯤 되는 쇠 파이프로 길이가 4-5미터쯤 되었다. 물에 들어가는 끝부분을 나무로 막고는 옆으로 구멍을 뚫어 물이 통하게 되어 있었다. 반대쪽 끝부분에 티(T)자 형으로 생긴 긴 기구를 집어넣어 그 속으로 밀었다 당겼다 하면 물이 따라 올라오게 되는 장비였다.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만들어 쓰던 물총을 생각하면 그 원리를 알 수 있을 거다.
듬벙은 물이 많이 나는 곳이어야 했다. 한번 품어내고 나면 다시 금방 물이 차야 쓸모가 있다. 이 듬벙을 다 품어내면 거기에 있는 물고기는 씨가 마르게 다 잡아낼 수 있었으나 아주 작은 것들은 그냥 거기에 놓아 주어야 다음에 다시 잡을 수 있어 판단을 잘 해야 했다.
물고기를 잡으면 거의 매번 우리 집으로 가져와 끓여 먹었다. 어머니가 다른 말씀 안 하시고 끓여 주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늘 국수가 떨어지지 않고 있던 집도 드물어 다른 집에 가져가서는 해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이른 봄에 얼음이 다 녹을 무렵 행길가 논에 가면 논 표면에 아주 작은 구멍들이 보인다. 이 구멍을 삽으로 푹 떠내면 대부분 미꾸리가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겨울잠은 아니더라도 겨우내 활동을 않고 땅 속에 들어있던 거였다. 낙지를 잡으려면 50센티미터가 넘게 파야 한다고 들었지만 미꾸리는 삽으로 한 번만 퍼내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약의 남용으로 논에서 미꾸리가 사라졌고 냇가에도 미꾸라지가 다 없어졌다. 얼마 전에 들으니까 성벌 냇가에 기름종개인가 하는 미꾸라지 사촌만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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