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자와 팥빙수

2012. 2. 28. 17:14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며칠 전에 TV를 잠깐 보니까 검정 고무신이라는 만화가 나오고 있었다. 그 만화의 배경이 60년대와 70년대를 아우르는 것이어서 눈에 띄면 나도 즐겨보는 프로이다. 그 날 내가 본 내용은 아이스케키에 관한 것이었다.

 

주인공인 기철이가 동네 아이들과 아이스케키를 사 먹고는 배탈이 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조금 과장이 된 것 같아 아쉬웠다. 아이들이 폐품을 수집하여 사 먹다가 나중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릇이나 병들을 가져다가 쭈그리거나 못 쓰게 만들어 아이스케키와 바꾸어 먹고 있었다.

 

한 번에 아이스케키를 100여 개씩이나 먹었다고 내레이션이 나오던데 그게 사실이라고 우긴다고 해도 어찌 백 개를 먹을 수 있으랴? 아무리 많이 먹었다 해도 한 번에 10개 이상은 먹지 못했을 거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흔치는 않을지 몰라도 예전에 광천에도 아이스케키 공장이 있었다. 향미당과 진미당이다. 우리가 거기 가서 사먹은 기억은 전혀 없지만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스케키 장수들이 마을로 찾아왔었다. 보통 광천에서 중학교 저학년이거나,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들이 아이스케키통을 메고 다니면서 아이스케키나 얼음과자를 외치며 돌아다녔고 마을 아이들은 그것을 사먹기 위해 몰려들었다.

 

우리 어릴 때는 용돈을 주거나 받는 집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장사가 와도 사 먹을 돈이 없었지만 그 아이스케키는 돈만 받은 것이 아니라 헌 고무신, 빈 병, 깨어진 보습, 찌그러진 양은 그릇, 심지어 마늘에 달걀까지도 받아서 그런 것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아이스케키는 하나에 1원이었고, 앙꼬는 2원이었다. 아이스케키는 그냥 색소와 단맛을 넣어 얼린 아이스바였는데 나무젓가락 같은 막대기에 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앙꼬는 팥이 들어 있고 색상도 조금 고급스러웠다.

 

마늘 두 통에 아이스케키를 하나 주었고, 마늘이 네 통이면 앙꼬가 하나였다. 집에 마늘을 접으로 묶어 계산하여 걸어둔 데서 마늘을 한, 두 통씩 뽑아다가 사먹곤 했다.

 

우리 집은 쟁기보습 깨진 것이 많아서 이런 아이스케키를 사 먹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마늘도 굵은 것은 한 접씩 엮어 매달았으나 좀 자잘한 것은 그냥 광에 두고 먹었기 때문에 몇 개 집어낸다 해도 표가 나지 않았다. 달걀은 이럴 때에 큰 가격이 나갔다. 달걀 하나 가지면 적어도 7, 8원은 쳐줘서 다른 아이들에게 선심을 쓸 수가 있었는데 닭장이 따로 없어도 닭 둥주리에 가면 하나 정도는 몰래 꺼내올 수가 있었다.

 

더러 광천에 나가면 팥빙수를 파는 곳을 보았는데 광천에서 사먹은 기억은 없다. 돈도 없었겠지만 팥빙수라고 하는 것이 생소해서였다. 나중에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여름방학에 서울 외삼촌댁에 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 외사촌 동생인 창호가 나를 구멍가게에 데려가 팥빙수를 사주어 처음 먹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줘도 안 먹을 것인데 그 때는 잘 몰라서 사주는 것이니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그 팥빙수에 혐오감을 갖느냐면, 가게에 설치해 놓은 기계에다 얼음을 갈아서 색소를 뿌려 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 5원 미만인 가격이었던 것 같은데 나 같은 촌사람이 봐도 불량식품이 분명했다. 더구나 그 팥빙수를 먹기 전에 라디오에선가 시판하고 팥빙수에 대장균이 많이 들어 있다고 들어서 더더욱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을 자주 사주는 동생 때문에 억지로 먹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급스런 아이스크림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였을 거다. 서울 외삼촌댁에 왔던 여름방학에 TV광고에서 해태 빙고아이스 바 선전을 본 기억이 있다. 그게 당시 가격으로 20원이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일반 아이스케키가 당시 5원 미만이었으니 20원이라면 놀라운 가격이었다.

 

나도 서울에서 그거 하나인가 사먹었던 기억이 있다. 길쭉하고 둥근 모습이었는데 반은 노란색이고 반은 초콜릿색으로 아래, 위가 투톤으로 되어 있었다. 이 해태 아이스바가 나온 뒤로 빙그레나 삼강, 오륜유업 등이 등장하여 지방에 있던 영세 아이스케키공장을 다 몰아내고 말았다.

 

해태는 많이 비싼 제품이라 지방에서는 쉽게 먹을 수가 없었고, 조금 싼 오륜이라는 회사 것이 많이 유통되었다. 이것들도 비닐포장에 들어있는 고급품에 가까운 거였다. 10원 정도하는 것이 주류였는데 나중에 삼강이 오륜을 흡수하였고, 다시 삼강은 롯데에 흡수된 것으로 기억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지방에도 이미 해태나, 빙그레, 롯데삼강 등이 진출하여 군소업체는 완전히 퇴출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에 가장 쌌던 것이 빙그레의 산딸기바로 하나에 30원을 했다. 그 당시에 브라보콘은 100원이나 하는 고가품이어서 쉽게 먹을 수가 없었고, 우리는 산딸기바를 하나 사면 여럿이서 돌려가며 빨아먹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우리 학교에 부임하신 명수일 선생님은 수학과목을 가르치는 분으로 3학년 수업은 들어오지 않은 분이다. 명 선생님이 처음 부임하던 날, 내가 본관 현관에서 교련 조회를 준비하다가 선생님을 교무실로 안내를 해 드린 것이 인연이 되어 수업을 받지 않았어도 선생님을 자주 괴롭혔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 선생님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같이 가자고 하시어 나와 가까운 친구들 여덟이 함께 따라 갔다. 내 생각으로는 200원하는 브라보콘도 황송한 것이었지만 선생님은 학교 앞 가게를 지나 홍성읍내로 가시는 것이었다.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졸졸 따라갔더니 해태 아이스크림대리점으로 데리고 가서는 거기 진열장에 있는 비싼 것들을 잔뜩 꺼내놓고는 먹으라고 하셨다.

 

우린 그날 브라보콘뿐이 아니라 통에 든 것도 먹었다. 정말 아이스크림을 배터지게 먹었다. 같이 먹은 친구 중에서 배탈이 안 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너무 고맙고 죄송했는데 나중에도 명 선생님께 그런 신세를 많이 졌다.

 

내가 팥빙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우습게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지난 뒤였다. 대전 엑스포에 견학을 갔다가 거기서 만난 예산 아이 승연이가 팥빙수를 좋아해서 나도 자주 먹으면서 즐겨 먹게 되었던 거다. 대학에 다닐 때도 팥빙수라고 하면 불량식품처럼 인식이 되어 누가 팥빙수를 먹자고 하면 고개를 돌렸지만 한 번에 그 맛에 길들여지니 자주 먹게 되었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여름에 시원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집에서 팥빙수를 자주 해달라고 해서 먹고 있다. 게다가 식탐이 있어서 한 번에 큰 대접으로 하나 가득 먹어야 마음이 놓인다. 또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도 무척 많이 먹는 편이다.

 

아직 촌티를 벗지 못해서인지 아이스콘보다는 지금도 예전에 먹던 빙그레 비비빅, 삼강 아맛나바를 즐겨 먹는다. 여름에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집 근처 편의점에서 비비빅을 사서 물고 나오니까 편의점 직원이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교사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서 내가 놀랐다. 집이 학교 근처가 아닌 것이 큰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