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8. 17:17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나는 고기 중에서 개고기가 제일 맛이 있다는 것에 조금도 이의가 없다. 지금도 여유만 있다면 개고기를 먹고 싶고, 언제 먹어도 개고기는 질리지 않는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내가 개를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개가 아니라 개고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 씁쓸하다. 나도 정말 개를 좋아하는데…….
우리가 살던 집은 지형적으로 개가 안 되는 집이라고 했다. 호랑이 형상을 한 뒷동산 발치에 있어서 개가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할아버지 계실 때나 아버지 계실 때는 아예 개를 키울 생각도 못했다. 집에 소나 돼지, 닭 등은 다 키우고 있었지만 개나 고양이는 없었다. 고양이는 지금도 싫어하지만 어릴 때도 싫었다.
그 당시에 성벌 마을에 개를 키우는 집이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개나 고양이에게 줄 음식이 없어서 그랬을 거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에 선교네가 어디서 포인터를 닮은 잡종 개를 하나 가져다 기르는 것을 보고, 나도 우리 집에 개를 키우고 싶어 어머니를 졸랐으나 사주질 않으셨다. 그 때 광천 고모네 집이 광천에서 식당을 할 때인데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었다. 한 마리는 포인터 잡종인 ‘가비’였고, 다른 한 마리는 스피츠의 먼 잡종인 검은 색 ‘해피’였다.
내가 개를 키우고 싶어 한다고 하니까 고모가 해피를 가져다가 키우라고 해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가져왔더니 묶어 놓으면 어떻게 빠져 나가는지 광천으로 가버리는 거였다. 내가 데리고 오면 광천에서 성벌까지 잘 따라와서는 그냥 두면 도망을 가버리고 묶어 놓으면 아주 슬프게 소릴 지르다가 목을 빼어 달아났다. 그렇게 몇 달을 하다가 해피는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우리 집에서 광천으로 갈 때, 누가 잡아먹은 것으로 추측하고 말았다.
내가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강아지 한 마리가 2,000원 정도 하던 때라 이게 적은 돈이 아니어서 어머니를 졸라대는 것은 솔직히 무리였다. 그런데 내가 자나 깨나 개를 노래하니까 어머니가 벼르고 별러서 개를 하나 사주셨다. 그 때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지금이야 다 애완견이고 이름이 있는 개지만 예전엔 다 잡종, 흔한 말로 똥개였다. 비록 똥개라 해도 폼이 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알아 볼 수가 있어 제법 괜찮은 것으로 사왔다고 좋아했던 그 강아지가 한 달도 안 되어 죽고 말았다.
그 때는 개의 천적이 쥐였다.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으면 쥐들이 그 약을 먹고 죽고, 그 쥐약 먹고 죽은 쥐를 개가 먹으면 거의 다 죽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죽은 쥐는 다 치워서 없지만 더러 담 구멍이나 마루 깊이 들어가서 죽은 것들은 알지 못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어 강아지들이 냄새를 맡고 들어가 그것들을 먹고는 잘 죽었다. 개가 쥐를 먹었을 때 일찍 발견하면 소금물이나 구정물을 억지로 떠 먹여 토하게 시켰다. 그럴 경우 살아나는 것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 주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서 죽고 마는 거였다.
개가 죽은 뒤에 내가 무척 의기소침해 하니까 이번에는 어머니가 큰 개를 사 주셨다. 가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진돗개 크기 정도가 된 누렁이였다. 누구네 집에 개를 사왔다고 하면 동네 아이들이 며칠씩 구경을 다니던 때라 우리 집에도 구경하러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품종을 알 수 없는 잡종이었지만 요즘 진돗개 사촌은 될 만큼 멋지게 생겨서 아주 흐뭇했으나 밤마다 늑대소리로 우는 것이 하나 흠이었다. 예전에는 금기가 많아서 개가 울면(즉 짖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잡아먹거나 팔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 혼자 걱정하다가 한 달쯤 뒤에 광천 장에 가서 팔고 강아지를 하나 사왔다.
내가 판 개는 그 날 장터에서 개장수가 잡아버려 그 개가 운 것이 자기 운명을 감지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집에 와서 어머니께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평소에 어떤 일을 해도 나무라지 않으시던 어머니였지만 큰 개를 팔고 강아지를 사왔으니 어찌 화가 안 나시었으랴? 한번 호되게 혼나고 그냥 강아지를 키웠는데 이 강아지도 두 달이 못 가 역시 쥐를 먹고는 죽었다. 이러니 다시는 개를 사달라고 할 수도 없고, 뒷동산 아래에 있어 개가 안 된다는 얘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 한동안 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광천 고모 댁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아 한 마리 얻어오게 되었다. 이 강아지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잡종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개였다. 순종이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하얀 바탕에 얼룩무늬가 마치 달마시안과 비슷한 셰터 종이었다. 정확히는 아일리쉬셰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귀의 겉 털이 곱슬인 게 이 개의 특징이었다. 이 개는 어릴 때부터 묶어 놓고 키워 어미가 되도록 탈이 없이 잘 자랐다. 이름을 ‘럭키’라고 지었고 어디 끌고 나가도 폼이 날 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이 개는 어머니가 팔아서 돈을 만드셨고 나에게는 강아지 한 마리 살 돈을 주셨다. 그래서 다시 강아지를 하나 사다가 키웠다. 이 강아지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똥개였다. 그래도 제법 말을 잘 알아들어 산에 갈 때면 늘 끌고 갔었다. 이름을 ‘바위’라고 지었고 우리 집에서 잘 자라 큰 개가 되었다.
시골에서는 개가 자라면 집에서 잡아먹거나 내다 파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굳이 오래 키울 일이 없었던 거다. 고등학교 친구인 용인이가 놀러 왔던 여름방학에 어머니가 잡아먹으라고 해서 내가 잡았다. 책에서 보면 자기네 집에서 기르던 개를 팔거나 잡아먹으려 하면 아이들이 울고불고 야단들이라 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 일이었다.
자형이랑 친구랑 셋이 개를 냇가로 데리고 나가서 개목에 올가미를 씌워 버드나무가지에 걸고 당겼다. 개가 공중에 떠서 바동바동 떠는 그 와중에도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빨리 고통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닥에 있던 돌을 들어 개머리를 몇 번 때렸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잔인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잡는 순간에 고통이라도 덜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렇게 잡아서는 맛있게 아주 잘 먹었다. 그것이 내가 잡은 유일한 개였다. 나는 지금도 개는 먹기 위해 기른다고 생각하는 터라 사람들이 개를 기르며 방에서 재우거나 안고 다니는 것에 혐오감을 갖고 있다. 개는 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의 입장에서 본다면 언제든 죽을 것이니 이왕이면 키워준 주인에게 먹히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 다음에 사온 강아지는 광천 고모네 창구에게서 산 세퍼트 잡종이었다. 창구가 이 강아지를 분명 광천 장에서 샀을 것이나 처음엔 아주 볼품이 없던 것이 조금 자라니까 세퍼트 사촌 정도의 모습이 되어서 다들 놀랐다. 그래서 내가 사기로 하고 가져왔다. 아마 5,000원쯤 주고 가져왔을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강아지는 크면서 정말 세퍼트의 모습이었다. 덩치도 엄청 커서 동네에서 제일 큰 개가 되었고 균형 잡힌 몸통도 아주 의젓하였다.
이 개가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개였다. 내가 크면서 이제 개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되었을 때, 어머니가 개장수에게 파신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개를 키우고 하는 것에 관심도 멀어졌고 계속 학교에 다닌다고 집을 떠나 있다 보니 집에 개가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거였다.
나는 지금도 개를 좋아한다. 무슨 방안에서 기르는 애완견이 아니라 덩치가 크고 잘 생긴, 그래서 끌고 다니기에 폼 나는 진돗개나 풍산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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