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8. 17:51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교감 선생님이 새로 전근오시면서 그 가족이 전부 이사를 왔다. 그 시절에는 학교 사택이라는 것이 있어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사택에서 사시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당시 학교 사택은 영중이 형님네가 살던 집으로 이미 다른 선생님이 사시고 있어, 교감 선생님 가족은 홈다리 넘어가는 길가에 있던 형수 형네 집으로 들어갔다.
오래 된 일이고 어릴 적 얘기라 자세한 상황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교감 선생님이 이사를 오실 적에 짐을 날라 준다고 돌아다녔기에 여기까지는 분명하다.
교감 선생님은 이마가 시원하게 넘어갔고 안경을 쓰신 분으로 먼저 오셨던 이철재 교감 선생님이나 강철운 교감 선생님보다는 선이 굵으셨다. 학교가 분교에서 독립을 하여 완전한 초등학교가 된 뒤에 교감 선생님이 해마다 바뀌시어 세 번째로 오신 분이다. 교감 선생님 댁은 사모님과 우리보다 위인 형과 누나, 그리고 1년 선배인 규상이, 재상이, 1년 후배인 현옥이, 그 아래로 한참 차이가 나는 승상이 등 대가족이었다.
시골이 텃세가 더 심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동네 최고기관인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신데 텃세를 부릴 이유가 없었다. 규상이와 재상이는 연년생으로, 학교를 같이 들어가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둘이 이란성 쌍둥이인줄로 혼동했다. 둘은 우리보다 1년 선배로 다 광천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규상이는 광천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1년 선배들과 가깝게 지냈으나 재상이는 자기보다 1년 후배인 우리들과 잘 어울렸다.
학교에 가면 1년 선후배가 큰 차이가 나지만 동네서야 같이 노는 사이였고, 또 우리 동네의 아이들은 동네 1년 선배를 친구로 생각해서 별로 따지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성격이 원만한 재상이와는 아무 불편한 관계가 없었으나 규상이는 조금 따지는 편이어서 잘 어울려 지내지 않았던 거였다.
재상이와 친하게 지내면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우리보다 한 해 후배인 현옥이였다. 나는 그 시절에 우리 반이나 동네 여자애들하고는 말도 못하고 지내는 수줍은 성격이어서 누가 대신 말을 해주거나 내 의사를 전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통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누구를 좋아해도 속으로만 생각할 때다.
그렇다고 재상이에게 내가 스스로 네 동생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니 내가 현옥이에 대해 알고 있는 거는 다른 곳에서 전학을 온 아이라는 것과 교감 선생님 딸이라는 것 외에도 예뻤다는 거였다.
지금 현옥이의 얼굴은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이마가 반듯하고 얼굴이 희고 고왔다. 그 시절에 우리 시골 아이들은 날마다 밭에 나가 농사일을 돕느라 얼굴이 검게 타고 잘 먹지 못해 뽀얀 피부를 가진 애가 없었다. 옷가지라도 변변하게 입었으면 그래도 훨씬 나았을 것이나 너나 할 것 없이 그럴 형편도 못 되다보니 말 그대로 촌티가 줄줄 흘렀다. 그런 시골에서 얼굴이 희고 고운 애를 보니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읽었던 『소공녀』의 주인공처럼 생각되었다.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곧바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속으로 그리움을 키웠을 뿐이다. 내가 현옥이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면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 터이니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시절에는 남녀가 유별했던 때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애들이 좋아하고 어쩌고 하는 것을 귀엽게 봐주기 보다는 구설수에 오를 일이었다.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아마 방학이었을지도 모르겠고 혹은 무슨 휴일인지도 기억이 잘 안 나나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안 보이고 집안이 조용했다. 들어가서 마루에 앉기 전에 무슨 인기척이 있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텃밭에서 현옥이가 상추를 뜯고 있는 거였다.
경후네와 덤불을 사이에 둔 아래에 텃밭이 있어 상추와 고추 등 채소를 심어 먹었는데 거기서 현옥이가 상추를 뜯고 있었던 거다. 분홍색 블라우스에 약간 짧은 치마를 입었고 머리는 두 갈래로 땋은 모습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정한 옷차림이 그 시절 시골아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상추를 뜯느라 내가 온 줄을 몰랐는지 나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허리를 폈다 굽혔다 하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으나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아마 어머니가 뜯어가라고 하셨거나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가서 뜯으면 된다고 알려줘서 왔을 텐데 내가 불쑥 나타나면 놀라고 부끄러워할까봐 자리를 피한 거였다. 그러면서도 4학년의 어린 나이에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조용 일을 하는 모습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시골에서 4학년이면 밥도 짓고 작은 빨래도 하고 어머니들 일손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얘기할 거리가 안 되지만 남의 집에 혼자 와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 현옥이가 또 와서 상추를 뜯었는지는 모른다. 집에 늘 채소를 많이 심었고, 식구는 적으니까 다른 집들과 나눠 먹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으니 누가 와서 뜯어간 것이 얘깃거리는 안 될 때였다.
나는 언제나 모범 학생으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6학년 때는 아니다. 우리를 4학년 때부터 담임하셨던 선생님이 6학년 2학기에 전근을 가시고 젊은 선생님이 새로 담임을 하실 때는 우리 반 악동들은 거의 통제 불능이었다. 게다가 중학교 진학이 우리부터 무시험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부담도 그만큼 줄어 제멋대로 놀았다.
툭하면 일을 저지르고 교무실에 불려가서 맞거나 기합을 받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한 번도 빠지지 못 하고 꼭 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반장이었고, 나를 앞세워야 일이 커져도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거를 애들이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번 불려가서 혼이 날 때에 늘 교감 선생님이 담당하셨다. 그전까지는 모든 선생님께 모범 학생으로 칭찬만 들었건만 새로 오신 교감 선생님께는 말썽꾸러기의 대표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작은 학교에서 이런 좋지 않은 소문이야 금방 퍼지는 것이고 현옥이도 알고 있을 것은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모범 학생이고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전부였으나 이 시기엔 이미 공부도 많이 떨어져 어디 가서 공부 1등 한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 했다. 이런 내가 현옥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부터 광천으로 나와서 둘째 누나와 자취를 해서 집에 자주 가지 못 했고, 그러면서 현옥이도 기억에서 잊혀 져 갔다. 교감 선생님은 뒤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고 가족들도 이사를 가서 소식이 끊기었다. 그 뒤에 내가 고등학교 시험을 치고 집으로 오던 중에 천안역에서 우연히 재상이를 만난 적이 있으나 그때는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뭐 주고받을 것도 없이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여 대학에 들어갈 무렵 천안에서 막내 당고모의 결혼식이 있어, 홍성에서 버스를 타고 천안으로 가다가 온양에서 현옥이를 보았다. 난 버스 안에 있었고 현옥이는 터미널에 있었지만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었지만, 나를 기억하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 번도 말을 붙여 본 사이도 아닌데 가서 말을 붙였다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쩌나 싶어 옛 기억만 떠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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