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8. 17:56ㆍ시우 수필집/개갈 안 나고 뜬금없는(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다.고향, 추억)
내가 여자에 대해 이상형을 생각을 하게 된 거는 김광주 님의 『정협지(情俠志)』에 나오는 ‘감욱형’이라는 여주인공을 보면서이다. 거기에 나오는 두 여자가 감욱형과 연자심인데 둘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빼어난 미인이었다.
5학년 때에 읽었으니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당시에 감욱형에 대한 나의 동경은 대단했었다. 아버지를 무림고수로 둔 욱형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자랐지만 빼어난 미모에 무공(武功)을 제대로 닦은 소녀교수였고 무엇보다 마음이 착해서 내가 좋아했다. 내가 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순전히 감욱형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나오는 여자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예쁘고 착하다는 거는 누구나 다 알지만 중국 무협소설에 나오는 여자주인공들은 무공까지 갖추어 웬만한 악당들은 상대가 뒬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착하고 대부분 효녀에다가 일편단심 한 남자만 섬기는 걸로 나오니 누구도 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였다. 그러나 나는 감욱형과 같은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성질이 괄괄한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머니 성격이 워낙 조선시대 여자 같으셨기도 했지만 여자가 남자 앞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양성평등에 위반된다고 애기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여자를 좋아한다.
내가 4학년이 되던 해에 광천에서 ‘은’이가 전학을 왔다.
광천은 큰 도시는 아니었어도 우리 오서산 아래보다는 나은 곳인데 집안 사정으로 인해 시골로 들어온 거다. 은이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자 은이네는 외가가 있던 성벌에 가게를 사서 이사했다. 은이는 그 전에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은이가 처음 우리 반에 왔을 때는 아주 수줍어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이 내 곁에 앉으라고 해서 우리는 같이 앉게 되었다.
그 때는 번호라고 하는 것이 가나다순도 아니고 키순도 아니었다. 또 번호와 관계없이 담임선생님이 대충 남자를 키순으로 앉혀 놓고 여자애들 자리를 지명해서 앉혔다. 우리 반은 남자가 많아서 여자와 짝을 이루지 못하는 남자애들이 여남은이 넘어 나도 늘 남자하고만 앉다가 은이가 내 옆자리에 와서 처음으로 여자와 앉게 된 거였다.
광천에서 왔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었고 나는 그냥 반장으로 내 일만 할 뿐이라 곁에 앉은 은이를 괴롭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때 우리 반은 남자애들이 얼마나 드셌는지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여자애들이 교실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도록 들볶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여자애들에게 짓궂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냥 담임선생님 대신으로 자습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을 혼냈을 뿐이다. 그 때의 학급반장은 대단한 권세를 부릴 때여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처럼 담임선생님의 일을 많이 돕고 세도도 부렸다.
내가 은이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괴롭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은이는 늘 고마워했다. 그리고 은이네가 교문 앞에서 가게를 한다는 것이 상당한 힘이 돼서 다른 애들도 은이를 괴롭히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은이는 동네에서나 학교에서 조금 특별한 대우를 받은 셈이다.
은이와 달리 은이 엄마는 다소곳한 성격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혼자되어서 어린 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호락호락하다가는 죽도 밤도 안 될 거라 그랬을 거다. 친정이 우리 동네라 무시할 사람도 없었지만 원래 연약한 성격은 아니었다.
은이네는 학교 앞에서 가게를 하면서 집을 늘려 선생님들 하숙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이는 학교 선생님들 심부름도 도맡아했고 장사를 하는 일에도 엄마를 도와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그 때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도 은이를 불러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은이가 공부를 잘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내 기억에 은이는 공부를 잘한 편은 아니었다. 나중에 5학년을 마칠 때에는 우등상을 탈 정도가 되었지만 집에서 엄마 일을 돕느라 공부에 많이 신경을 쓰지는 못했다.
그때 기억으로는 은이가 예쁜 편은 아니었다. 우리 동창들이 다 은이를 좋아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솔직히 그게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은이가 착하였다는 거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예뻤다는 거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적에 은이는 집에 있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진학하기가 어려웠던 거였다. 그 때는 여자애 중에서 중학교에 간 것이 다섯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까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여자를 가르치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가게에 가면 은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은이네 가게에 무엇을 사러 가서 은이가 있으면 무척 어색해 했다. 은이는 나를 보면 언제나 반가워했지만 나는 부끄러워했다. 그 때 어쩌면 은이가 내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전학을 왔을 때 내가 잘 해주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고 하니까 그런 감정이 있었던 것도 같다.
은이는 우리보다 2년쯤 뒤에 광천여중으로 진학을 했다. 나는 길에서 은이를 만나면 늘 외면하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아는 여자들을 보면 쑥스러워서 말을 걸지도 못했고 인사를 하는 것도 어색해 차라리 외면하거나 피해 다녔다.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은이를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내가 아니라 경후가 은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경후는 내가 은이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각하고 좋아했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 때 은이에게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늘 아쉽다. 내가 무디고 둔한 거야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그 때가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은이를 다시 만난 것은 은이가 아이 엄마가 된 뒤였다. 은이는 자기 집에서 하숙을 하던 선생님과 결혼을 하고 대전으로 갔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먼저 결혼하기 때문에 동창들 결혼할 때에 연락이 쉽지 않는데 은이도 그랬다. 내가 군에 다녀오고 학교에 다닌다고 정신없이 돌아다닐 때에 풍문으로 은이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는 못 갔을 거고 경후하고 라면 같이 갈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은이는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하기는 초등학교 동창들의 소식을 굳이 알려고 애 쓸 일도 아니고 몰라도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대전에 큰 당숙이 사셔서 집안 행사가 있으면 가끔 내려갔는데 어느 날 우연히, 정말 우연히 당숙 댁 근처 공원에서 아이를 업은 은이를 만났다. 나는 쑥스러워서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는데 은이는 계속 웃으면서 반가워하는 거였다. 나 혼자 있던 것이 아니고 6촌 아우와 함께 있었는데 대략 난감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서둘러 떴다. 그런 나를 보고 은이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참 바보였다. 반가워하면서 그동안 사는 이야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왜 그리 촌티를 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 만난 것이 초등학교 은사님 회갑연에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도 더 지나서 우리를 4~6학년 때 담임하셨던 은사님을 뵈었고 몇 번 찾아뵙다가 선생님 회갑연을 우리가 열었다. 그때도 경후가 가장 애를 많이 썼다. 나와 경후는 이왕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이게 하려고 사방에 연락을 취하고 찾아다니고 하였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의 반도 안 모였다.
그래도 그날 모였던 친구들과 2회 동창회를 구성한 셈이니 수확이 적었던 거는 아니다. 그 모임에 나왔던 은이는 우리 동창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왔다. 내가 은이는 만나면서 느낀 거는 은이처럼 순수하고 착한 여자는 본적이 없다는 거다. 내가 그렇게 찾았던 ‘감욱형’이가 은이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화살이 시위를 떠난 뒤였다.
우리 집에서 은이를 이야기할 때는 은이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다. 내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 은이와 통화를 할 적에 집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서 내가 대답한 말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고 한 게 그렇게 굳어버렸다. 우리 집사람이 질투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은이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감욱형이가 닦았던 무공이 은이에게는 순수함이었다.
몇 년 전에 은이가 내게 복권을 한 장 보낸 적이 있었다. 지금 같은 로또가 아니고 주택복권이었다. 그 복권은 편지 속에 들어 있었는데 편지에는 ‘영주 씨, 동창회 일을 하느라 수고가 많은데 이 복권이 당첨되면 경후 씨하고 맛있는 거 사먹어’라고 적었다. 그 복권이 당첨되었더라면 실컷 먹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꽝이었다.
내가 대전에 전화를 걸 때에 은이네 선생님이 받으면 정말 당황스럽다. 무슨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는 자체가 어색해서이다. 그렇지만 동창회 일을 맡고 있을 때는 자주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하면 그 낭랑한 웃음소리……, 세파에 물들지 않은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반가운지 그러면서 여자의 웃음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라고 생각했다. 단지 몇 마디, 내가 하는 말, 이번 모임에 올 수 있나? 은이 대답, 그럼 가야지 가서 만나, 이 말만 들어도 행복했다.
내가 은이에게 그런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나는 그런 자랑할 만한 친구가 있다는 게 흐뭇한 일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한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람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한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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